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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차 기억하시지요?
소독차라고도 부르고 방구차, 모기차… 그러고 보니 이름도 참 많았네요.
여름해가 서산에 걸리고 저녁 땅거미가 슬금슬금 골목으로 스며들 무렵, 방역차가 나타납니다.
아, 방역차보다는 소리가 먼저 달려오지요.
부릉 부릉이나 부웅 부웅~이 아니고 방․방․방 바아앙~ 에 가까운 그 요란한 소리.
그 소리 뒤에는 뭉게구름처럼 쏟아지는 연무와 특유의 냄새 -석유? 소독약? 그 무엇도 아닌- 가 뒤를 따라오지요.
멀리서 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아이들의 귀가 쫑긋 세워지고 지금까지 하던 모든 동작을 멈추게 됩니다.
골목에서 놀던 아이도,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다녀오던 아이도, 방바닥에 엎드려 숙제를 하던 아이도 미친 듯이 소리 나는 곳을 향해 달려갑니다.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그저 달리고 봅니다.
이른 저녁을 먹던 아이도 수저를 내동댕이치고 뛰쳐나갑니다.
어른들이 고래고래 소리 질러 봐도 소용없습니다.
그렇게 모여든 아이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연무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그리고 차를 따라 무작정 달려가는 것이지요.
손을 마구 휘저으며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를 꽥꽥 지르기는 아이도 있습니다.
차 꽁무니에서 내뿜은 흰색 연무가 순식간에 아이들과 동네를 지워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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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방역이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니 그 이후 성장한 사람들은 방역차에 대한 추억을 어딘가에 조금씩 숨겨놓고 있을 겁니다.
주위 몇 사람에게 넌지시 화두처럼 던졌더니 별별 사연이 쏟아져 나옵니다.
누구는 연무 속을 달리다가 전봇대에 부딪혀 별을 몇 개 봤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에 누워 있더라나요.
누구는 짐을 잔뜩 실은 자전거와 부딪혀서 물건 값을 몽땅 물어주기도 했고요.
또 누구는 정신없이 달리다 돌아보니 아무도 없고, 날은 어두워져서 울면서 돌아왔다지요.
다른 동네까지 따라가는 바람에 아예 길을 잃었던 한 중년 사내는 방역차 말만 꺼내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군요.
그런데, 어느 집 엄마는 방역차 소리만 나면 아이들을 일부러 내보내기도 했답니다.
소독약으로 전신을 흠뻑 적시면 이도 없어지고, 실컷 들이마시면 뱃속의 회충까지 전멸시킬 수 있다나요.
참 어처구니없는 믿음이었지요.
그렇게 골목마다 방역을 한 이유는 모기나 파리를 잡기 위해서인데요.
경유나 석유에 살충제를 섞어 방역기로 가열하면, 점화되면서 연기모양으로 쏟아져나가는 원리를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방역차의 소독효과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랍니다.
방역에 쓰이는 살충제는 농도를 무척 옅게 하기 때문에(짙게 하면 여럿 잡겠지요) 모기가 맞아도 잠시 기절하거나 행동이 둔하게 되는데 그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옷 속의 이나 뱃속의 회충까지 잡는다는 터무니없는 믿음은 어디서 왔을까요.
구충제를 사는 것조차 쉽지 않아 학교에서 나눠주던 어려운 시절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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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아이들은 방역차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걸 왜 그리 좋아했을까요?
멀리서 바앙~ 바앙~ 하는 소리만 들려도 왜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졌을까요.
냄새가 좋아서? 그 냄새를 아련한 기억 속에 ‘향기’ 쯤으로 간직한 사람도 제법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좋을 리는 없습니다.
차라리 역하다는 표현이 더 가깝겠지요.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요.
좀 엉터리 같지만 저는 환상이나 익명성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잠시 동안이라도 짙은 안개 속으로, 아니 구름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환상에 빠지게 해주거든요.
밤도 아닌데 앞이 캄캄하고,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쳐도 누군지 구별도 안 되고.
그렇지요.
세상의 눈에서 자신을 잠시 숨길 수 있는… 본능적으로 추구하게 마련인 익명의 바다에 잠시 풍덩 빠질 수 있는….
옆에서 달리고 있는 친구가 보이지 않을 때, 그에게도 내가 보이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부터 오는 해방감.
쓸데없이 심각한 해석 붙일 필요 없다고요?
그 시절엔 별로 놀고 즐길 거리가 없어서 신기한 마음에 따라다닌 가지고 별 시답잖은 소릴 늘어놓는다는 말씀이지요?
뭐, 그것도 옳은 말씀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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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성장과정을 함께했던 방역차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영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대단위아파트촌은 자체 방역을 하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지요.
기회는 우연히 왔습니다.
남녘 땅 어느 자그마한 동네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떠나려는 순간 느닷없이 방역차와 만난 것입니다.
차 백미러로 뭉글뭉글한 연무덩어리가 들어오는 순간, 생각이고 뭐고 할 틈 없이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집어 들었지요.
아, 방역차!
차도 세련되게 바뀌고 소리도 달라졌지만, 꽁무니에서 짙은 연기를 뿜어내는 건 똑같았습니다.
연무가 구멍가게와 미장원과 기름집의 간판을 쓱쓱 지워버렸습니다.
금세 추억 속으로 달려 들어갈 수 있었지요.
헌데, 다른 건 똑같은데 결정적인 게 하나 달라졌더라고요.
시골이라 아이들이 없어서 그런지, 모두 학원에 갔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서 그런지, 소리를 지르며 꽁무니를 따라가는 꼬마들은 없었습니다.
하릴 없이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배회하던 조그만 여자아이 하나가 페달을 힘차게 밟아 연무 속으로 뛰어드는 게 전부였습니다.
한 여자아이는 용기가 없었는지 멀거니 바라보기만 하고요.
연무 속으로 사라진 아이의 뒷모습이 오랫동안 눈에 고여 있어서 그랬던지, 석양을 머리에 인 마을 풍경이 갑자기 쓸쓸하게 다가왔습니다.
혼자 방역차를 쫓아간 그 아이도 익명의 해방감을 누리고 있을까?
방역차도 아이도 사라진 골목은 적막 속으로 깊게 가라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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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niLab 2010/08/30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들어서 조금 잦아들긴 했는데 그래도 가~끔씩 돌아다니긴 하더라구요..^^

    • sagang 2010/08/30 0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니까요. 저만 못봤다는 거 아닙니까. 세상이 발달하고 자꾸 회색상자(아파트)가 늘어날수록 적어지고 사라지겠지요.

  2. 정암 2010/08/30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리운데요, 저 휘발유 냄새. ㅎㅎㅎ

    저 차가 지나갈때면 동네 할머님들이 친구들을 골목으로 몰아내셨었지요. '저그 한번 뛰고 온나, 횟배 안앓고로..' 하며 집안에서 놀던 친구와 저를 대문밖으로 몰아내셔서 옥수수 문 채로 길가에 나앉아?본 기억이 나네요. 지금에야 낭설이란 것을 알지만 그당시 할머님들은 정말 굳건히도 믿으셨지요. 동네 할머님 모두 다.

    오랫만에 인사드립니다. 건강 유의하고 건필하십시오!

    • sagang 2010/08/30 1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주 리얼한 기억을 갖고 계시는군요. 옥수수를 문채로 길가에 나앉은... 맞아요. 그땐 왜 그걸 그리도 믿었는지.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3. wheelbug 2010/08/30 1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그립습니다. 휘발유 냄새.
    제가 살았던 종암동 달동네 점빵 아저씨 소독차 지나갈 때면 비상 걸렸습니다.동네 형들이랑 소독차 연무로 가게가 잘 안보일 때 콜라,사이다,과자봉다리 등 슬쩍해서 함께 나눠먹었거든요. 지금은 그런 구멍가게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 sagang 2010/08/30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점빵 아저씨의 비극이라니. 저 얘긴 몰랐는데요. 나중에 책 낼 때 한 줄 보태야겠습니다. 지재권 요구 안 하셔야됩니다. 구멍가게 많이 사라졌지요. 대기업들이 동네까지 다 차지했는 걸요.

  4. 지나가는이 2010/08/31 1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방구차다 방구차!

  5. 전경미 2010/08/31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역차만 오면 신이 나게 꽁무니 쫓아다니며 소리 지르던 꼬마에
    저도 포함되네요. ^^
    8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유난히 뜨거웠던 2010년의 여름의 끝자락에서
    서서히 와 닿는 가을을 반가운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왠지 가을을 많이 타실 거 같은 가을의 남자.
    가을맞이, 가을 앓이 준비되셨는지요? ^^

    • sagang 2010/09/01 0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여자임에도...^^
      맞아요. 여자애들도 많이 따라다니더라고요.

      가을앓이, 전에는 참 심하게도 앓았는데 이젠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네요. 너무 바빠요. 아픈 것도 조금의 틈이 있어야 가능한가봐요. 올 가을 풍성 만빵이길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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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을 땐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응칠아저씨가 둘도 없는 뻥쟁이라는 건 석 달 된 강아지까지 다 알고 있었거든요.
더구나 내용도 얼마나 구질구질 한지, 모두 밥 먹던 중에 입에 파리라도 들어간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요.
아저씨 말에 의하면, 제주도에 가면 돼지가 사람 똥을 먹고 산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특히 남자들은 조심해야 한다고, 입에 침을 튀겨가며 강조하는 거 있지요.
돼지란 놈이 떨어진 똥을 얌전히 주워 먹는 게 아니라, 학교 운동회 때 줄에 매달린 과자 따먹듯 점프를 해서 받아먹는다는 거지요.
문제는 돼지란 놈의 시력이 별로였는지, 남자의 거시기가 떨어지는 똥인 줄 알고 덥석 물어버린답니다.
그래서 거시기를 통째로 잃어버린 사람도 제법 된다고, 직접 본 것처럼 늘어놓는 겁니다.
그곳 사람들은 뒷간에 갈 때 돼지를 쫓을 수 있는 작대기를 필수적으로 지참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고요.
여자들도 안전한 건 아니랍니다.
섬사람들이야 작대기라도 들고 가지만, 뭍에서 구경 간 사람들은 뒷간에 돼지가 살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하겠지요.
볼 일을 보다 갑자기 나타나 꿀꿀거리는 시커먼 놈 때문에 아예 정신 줄 놓은 여자도 한 둘이 아니라고 또 입에 침을 튀기더라고요.
지도책에서나 제주도를 본 아이들이야, 그런 험한 곳에 갈 일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냔 듯 한숨까지 포옥 쉬었지만, 사실 대부분 아이들은 그저 뻥 치는 거 하나 또 들었으려니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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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참 신기하지요.
훗날 들어 보니, 그 거짓말 같던 얘기가 상당 부분 사실이더라고요.
제주도에서는 뒷간을 통새 또는 통시라고 부른다지요?
그 통시는 돼지막인 돗통과 사람의 공간인 뒷간으로 구성됩니다.
돗통은 돼지의 공간만큼 돌로 담장을 두르고 그 위에 지붕을 덮어 주는 것입니다.
뒷간은 다른 쪽의 약간 높은 곳에 디딤돌 두 개를 놓고 사람이 앉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높이로 담장을 두릅니다.
비 가릴 지붕? 돼지에게는 있지만 사람은 없습니다.
비오는 날은 작대기 들고 우산 쓰고 가서 담배까지 한 대 피워 물려니 절차가 제법 복잡했겠지요.
그런 마당에 문짝인들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문짝도 없이 대충 만드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지요?
외적의 침입이 잦았던 곳이라, 볼일 보면서도 늘 경계를 하다가 적이 나타나면 후다닥 도망치기 위해서 그랬답니다.
또 볼일을 볼 땐 자주 헛기침을 해야 된답니다.
그래야 지나가던 사람이 적당히 외면해준다나요.
통시의 바닥은 마당보다 낮게 만들어 오수가 흘러나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와 같은 통시는 반드시 안거리 정지(부엌)와 반대쪽 큰 구들의 황벽 옆 또는 멀리 떨어진 밖거리 옆 울담에 덧붙여 만들었답니다.
제주도의 ‘남선비 설화’에 의하면 조황신과 측간신은 처첩 사이로 사이가 좋지 않아서 부엌과  통시 멀리 떨어질수록 좋다고 믿었기 때문이라지요.
제주에서는 가장 무서운 동티를 측간 동티라 부르고, 측간의 돌멩이 하나라도 함부로 옮기지 못하게 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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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통시라고 해서 돼지를 똥만으로 키우는 것은 아닙니다.
돗통 한쪽에 먹이통을 놓아두고 거기에 음식물 찌꺼기 같은 걸 넣어주었습니다.
사실은 그게 주식인 셈이지요.
하지만 가족이 많은 집에서는 오로지 사람의 배설물로만 키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돼지란 녀석은 시력은 좀 떨어져도 후각과 청각은 무척 발달한 모양입니다.
오밤중에 조용히 볼 일을 보려고 살금살금 통시에 가도 어느 틈엔가 먹을 게 왔다는 걸 알아차리고 재빨리 달려 나온답니다.
그리고 제법 깔끔을 떨어서 몸에 오물이 묻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지요.
그래서 뭔가 묻은 느낌이 들면 정신없이 털어댑니다.
여기서 또 낭패를 보는 사람이 허다하게 등장하지요.
큰일을 보는 중에 배설물이 돼지 입으로 안착하지 못하고 몸에 떨어지면 인정사정없이 털어대는 겁니다.
그때 흘러가는 구름이나 감상하면서, 가만히 앉아있으면 어찌 되겠습니까?
오물을 뒤집어쓰지 않으려면 괴춤이고 뭐고 챙길 새 없이 후다닥 도망치는 게 장땡입니다.
통시 바닥에는 보리 짚이나 볏짚을 깔아줍니다.
돼지는 먹거나 잠잘 때를 빼고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분뇨를 배설하고 짚을 다집니다.
그렇게 돼지분뇨와 적당히 섞인 짚이 쌓이고 발효해서 질 좋은 거름이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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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긴 세월 자리 잡고 살던 재래돼지는 오래 전 만주지역에서 소형종이 들어온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들이 제주도까지 유입돼 토착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제주도에는 뱀이 많았는데, 뱀을 잡아먹는 돼지의 특성을 활용하기 위해서 집집마다 길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제주도의 토종돼지는 검은 색 털로 완전히 덮여있으며 얼굴이 좁고 주둥이가 길다고 합니다.
또 몸집이 작고 엉덩이와 배 부분이 좁지만 가슴은 상대적으로 넓은 편입니다.
다리는 짧고 균형이 잘 잡혀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다른 종의 돼지보다 육질과 맛이 좋다는 것이고요.
보통 한꺼번에 5~8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새끼는 개량종들보다 성장이 느린 편입니다.
체질이 강건해서 전염병 등에 강하며 환경변화에도 잘 적응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1930년대 이후 번식력이 좋고 덩치가 큰 외국 개량종들이 대량 유입 되고, 또 토종돼지와 교잡되는 바람에 순수 혈통이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고 하지요.
지금은 제주도에도 순수한 토종 돼지는 없다고 합니다.
단지 그 혈통이 섞여있는 흑돼지가 남아 있을 뿐이지요.
물론 이 흑돼지들도 똥을 먹이는 게 아니라 보통 돼지처럼 사료를 줘 사육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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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돼지가 제주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뭍에도 인분을 돼지먹이로 삼은 곳이 꽤 있었다고 합니다.
지리산 깊은 산골에서는 최근까지도 똥돼지를 키웠다고 하지요.
하지만 노인들만 사는 그 골짜기에 돼지 먹을 인분인들 제대로 생산되려고요.
게다가 그런 식으로 돼지를 기를만한 뒷간이 어디 남아있나요.
제주도에서도 민속마을이나 가야 똥돼지의 잔재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느닷없이 거시기를 물리는 남자나 오밤중에 놀라자빠지는 여자를 볼 일은 없어진 셈이지요.
도시에서 가끔 길을 걷다보면 ‘제주도 똥돼지’라고 버젓이 달아놓은 간판을 봅니다.
‘제주 직송’이란 선전문구도 빠지지 않고요.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지만, 그야말로 과장광고일 뿐이지요.
하긴 찾아가 먹는 사람이라고 진짜 똥돼지인 줄 알고 먹겠습니까?
어느덧 전설이 되어버린 똥돼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옛날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던 응칠아저씨가 그리워지네요.
그 양반도 오래 전에 이 세상을 떠나셨지요.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가보지도 않은 제주도 이야기 한 자락 깔아놓으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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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경미 2010/08/26 0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똥돼지 제목을 보니..
    똥개 워리의 독백을 너무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
    응칠아저씨의 구수한 입담처럼 작가님의 이야기는
    신기하고, 재미나면서도 아련하고 눈물나기도 합니다.
    불과 며칠전만 해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처서도 지났고, 오늘 내린 비는 제법 가을 정취를 물씬 풍기네요.
    올가을에는 더더욱 좋은 일 가득하길 바랍니다.

    • sagang 2010/08/26 1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름 잘 났지요? 덥고 비도 많이 오고... 하지만 뭔가 뜻이 있을 겁니다. 무엇 하나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거든요. 올 가을 풍성하고 아름답기 바랍니다. 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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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땅거미를 동반한 산들바람이 산모롱이를 돌아오면서 들판에 저녁 이내가 깔리기 시작한다. 그제야 장 주사네 마당에 장기판만큼 작아진 몸피로 미적거리고 있던 저녁햇살이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킨다. 하지만 느티나무 아래에 퍼질러 앉은 아이들은 움직일 기미가 없다. ‘무찌르자 오랑캐~’ 하늘까지 오를 것 같던 고무줄놀이는 언제부턴가 내팽개치고 공기놀이에 푹 빠져버렸다. 꺾기에 들어가는 순님이의 얼굴이 신대 잡은 무당만큼이나 엄숙하다.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 손등에 얹힌 돌이 떨어질세라, 채어 잡기 좋게 모으느라고 숨조차 아낀다. 잠시 뒤 손등위의 공깃돌을 던지듯 띄우더니, 병아리 덮치는 솔개마냥 잽싸게 낚아챈다. 성공이다!! 기쁨의 환호가 채 가시기도 전, 째질 듯 날카로운 목소리가 광자네 탱자나무 울타리를 넘어 마당으로 들이닥친다. 돌아보지 않아도 광자 엄마의 목소리다. 밭에 나갔다가 막 돌아온 모양이다. 등에서 잠든 동생을 추스르며 순님이의 현란한 손동작에 넋을 놓고 있던 광자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난다.
“야, 이년아. 애기 잠들면 물도 길어놓고 마루도 좀 훔쳐놓으라고 했더니 여지껏 거기 퍼질러 앉았냐? 내 이년의 다리몽댕이를 분질러버려야지. 말 만한 년이 맨날 쳐 먹고 놀기만 하니….”

광자 엄마의 푸닥거리가 시작되나 싶더니, 공기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후다닥 일어나 뿔뿔이 흩어진다. 모두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와 허겁지겁 정신을 차린 얼굴이다. 부뚜막 부지깽이라도 심부름을 보내야 할 계절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으니 집에 돌아가면 경칠 일만 남았다. 고무줄에서 끝냈어야하는데…. 공기놀이를 하자고 꼬드겼던 명자를 쳐다보는 눈초리에 가시들이 박혀있다. 하지만 누구를 원망하랴. 아이들의 발걸음이 추라도 달린 듯 무겁다. 그만큼 시간 가는 줄 모르도록 만드는 게 공기놀이였다. 여자아이들은 어디든 모여 앉았다 하면 공기놀이를 했다. 마당은 물론 교실, 방안…. 가릴 게 없었다. 특별한 도구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돌멩이 다섯 개면 모든 게 해결되니 그럴 수밖에. 그래서 한번 시작하면 제 시간에 일어나지 못하고 혼나기를 밥 먹듯 했다. 다른 놀이가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학교에서도 공부시작 종소리를 듣지 못하고 공기놀이에 빠졌다가 벌서는 아이들도 있었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도 숟가락 들 정도만 되면 여자아이들의 손에는 공기가 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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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깃돌은 보통 작은 새알만하다. 쓰이지 않는 돌은 없었지만, 특히 하얀 차돌이 인기가 있었다. 알맞은 돌을 주워서 사용하거나 기왓장 같은 것을 손에 맞게 갈아서 쓰기도 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는 말은 여기서도 통했다. 예쁜 공깃돌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공기놀이에도 제법 복잡한 순서와 규칙이 있는데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도 했다. 이름도 제각각이었다. 경상북도에서는 ‘짜게 받기’, 경상남도에서는 ‘살구’, 전라북도에서는 ‘공기 따먹기’, 전라남도에서는 ‘닷짝걸이 등으로 불렀고 그 밖에 ’좌돌리기‘, ’조개질‘, ’좌질‘이라고는 이름도 있었다. 용어도 다양했다. ‘콩’은 공기를 받다가 떨어트렸을 때 콩! 하고 얼른 외치면 다시 주울 수 있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미친년’은 공기알을 바닥에 던졌는데 한 개가 비스듬히 서있는 것 가리킨다. 또 ‘반지’는 꺾기를 하는데 공기알 하나가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에 끼는 것을 말하고 ‘피아노’는 꺾기를 위해 공기알을 손등 위에 잘 놓으려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데서 나온 말이다. 이밖에도 집어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교묘하게 집는 것을 ‘간빼먹기’라고 하고 공깃돌 하나가 다른 돌에 딱 붙어있는 것은 ‘밥풀’이라고 한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인 순서는 대개 비슷했다. 맨 먼저 ‘초집기’를 하는데 다섯 개의 공깃돌을 손바닥에 쥐어 바닥에 뿌려 놓는다. 그 가운데 한 알을 집어 던져 올리는 동시에 나머지 네 알 중 한 알을 얼른 집고 내려오는 돌과 같이 쥔다. 나머지도 같은 방법으로 하나씩 집는다. 돌을 집을 때 옆의 돌을 건드리거나 던진 돌을 잡지 못하면 실격이 되어 순서는 다음 사람에게 넘어간다. ‘두집기’는 공기알을 두 알씩 집으면 되고, ‘세집기’는 한 번에 세 알을 집은 다음 한 알을 집던가, 반대로 한 알을 먼저 집은 후 세 알을 집는다. ‘막집기’는 손에 다섯 알을 쥐고 한 알을 위로 던지면서 나머지 돌을 바닥에 놓은 다음 떨어지는 돌을 받는다. 이어 받은 돌을 위로 던지면서 바닥에 놓인 네 개의 돌을 한꺼번에 쓸어 쥐는 것과 동시에 떨어지는 돌을 받는다. 이렇게 네 알 집기까지 끝나면 ‘꺾기’에 들어가는데, 먼저 다섯 개의 공깃돌을 던져 손등으로 받는다. 이 때 손등에 얹힌 돌이 셋이면 3년, 다섯이면 5년으로 계산하는데 손등에 얹힌 돌을 그대로 띄운 다음 공증에서 낚아챈다. 손등에 공깃돌이 하나도 얹히지 않거나 던진 돌을 모두 잡지 못하면 실격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정한 점수를 먼저 난 사람이 이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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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놀이의 기원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시작된 시기가 무척 오래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가축의 뼈로 만든 둥근 알들을 점치는 도구로 사용했는데, 훗날 놀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증언하듯 그 시대에 만들어진 도자기에서 공기놀이를 하는 신들과 남자들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이 땅에서도 꽤 오래 전부터 즐겨 왔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 학자 이규경(李圭景)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둥근 돌알을 가지고 노는 놀이가 있어 ‘공기’라고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공기놀이는 무척 성행했다. 그러다 1980년대 이후 TV가 집집마다 보급되고 각종 장난감이 쏟아지면서 전래돼 오던 놀이들은 하나 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된 놀이 중 대표적인 것이 공기놀이다. 요즘도 학교 앞 문방구에서 플라스틱 공깃돌을 판다고 한다. 물론 공기놀이를 즐기는 아이들도 여전히 있을 테고. 하지만 아무래도 옛날의 그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 시절이 그리워 어느 날 순님이, 광자, 명자가 퍼질러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장 주사네 마당을 찾아가보본다. 하지만 느티나무 아래엔 잡초만 무성하고 허리 굽은 노파 하나 먼 하늘에 고단한 시선을 두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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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경미 2010/08/09 1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국민학교 다닐적에도 하교후에 고무줄아니면 공기놀이 했었지요.
    돌멩이보다는 문방구에서 파는 플라스틱 공깃돌로 했지만요. ^^
    참 재미있었는데.....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던 기억이 새롭네요.
    작년엔 쌍둥이 조카들이 집에 놀러올때마다 공기를 가지고와서
    같이 하곤 했는데 유행이 지났는지 요즘은 시큰둥하네요.
    요즘 아이들이 하는 공기는 얼마나 법칙도 많고, 어려운지요. ㅎㅎ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네요.
    건강 잘 챙기시고, 남은 여름 즐겁게 보내시길요. ^^

    • sagang 2010/08/10 0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대가 복잡해지니까 놀이도 복잡해지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요즘 아이들이 공기놀이를 하고 있다니 기분은 좋네요. 나름대로 손재주 형성에 되움이 될 거 같거든요.

      여전히 더워요. 하늘 보니 비도 올 것 같고...하지만 아무리 무서운 것도 가겠지요. 플라타너스 잎에 벌써 가을이 숨겨져 있는 걸요. 잘 지내시길.

  2. recovery data 2010/08/12 16: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좋은 것들이 끝이 있기 마련

    • sagang 2010/08/19 0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럼요. 그래서 끝이 있음을 슬퍼하는 게 아니라 기억조차 희미해짐을 슬퍼하는 거지요. 그나저나 공평하게도 좋지않은 것들도 끝이 있답니다.

  3. 탄이엄마 2010/08/18 16: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까맣게 잊고 있었던 놀이와 명칭들을 어쩜 그렇게 세세히도 잘 알고 계시는지요? ㅎㅎ
    우리 동네에선 살구받기라 그랬었는데,
    어렸을땐 고무줄놀이 아니면 살구받기, 시마차기(땅에 일정한 모양의 금을 그어놓고 한발로 돌을 옮겨놓는 놀이요,,아시죠?)
    세가지의 놀이만으로도 어린시절을 다 보낸듯 한데 말입니다.
    오늘 퇴근길에 문방구에 들러 살구 다섯알 사서 집에가서 한번 해볼까,,싶은 생각도 드네요..
    무쟈게 땡깁니다. ^_____^

    • sagang 2010/08/19 0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살구받기... 그 이름이 가장 맘에 듭니다. 더구나 공깃돌을 살구알이라... 입에 신침이 고일정도^^ 시마차기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네요. 제가 살던 동네에서는 사방치기라고 한 것 같아요. 이 나라가 넓다보니 같은 놀이도 참 이름이 다르지요.

      살구알 사서 탄이하고 같이 해보세요. 저는 전혀 못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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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 애인과, 친구라고 해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동해바다 피서를 도모해본 적 있으십니까?
이왕이면 폼 나게 가야지 대중교통이 웬일이냐고, 졸부가 된 오촌 당숙을 혀가 닳도록 설득한 끝에 차를 빌리는 데 성공하지요.
그렇게 떠나는 길, 하늘의 구름 따위는 우습게 보일 만큼 온몸이 둥둥 떴을 겁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꿈은, 곧잘 끔찍한 현실을 동반하기도 하지요.
막히는 길이야 애당초 각오했던 일이고, 애인의 솜사탕 같은 수다도 있으니 별 문제될 건 없습니다.
한숨 쉴 일은 인제를 지나 미시령 초입에 접어들어서면서 시작됩니다.
이까지 갈며 잠들어버린 철없는 애인 때문이냐고요?
그건 아니고…, 아찔한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급경사, 급커브 길 때문이지요.
숙달된 운전사도 천지신명, 조상님 찾으며 납작 엎드려야 통과시켜준다는 길이 미시령 아닙니까.
하물며 지갑 속에서 잠만 자던 면허증 소지자가 남의 차 빌려 타고 길을 나섰으니, 지옥문으로 발 하나 들여놓은 셈이지요.
하지만 자존심 하나로 험한 세상 버텨온 몸, 사랑하는 그녀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나요.
등이 축축해지고 이가 뽀득뽀득 갈리지만, 여유 있는 척 해가며 부득부득 올라가는 길, 그게 바로 미시령입니다.
하지만 지옥길이 언제까지 계속되는 건 아닙니다.
미시령 정상에 거의 다가갈 무렵, 차는 어느 순간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새벽녘의 들개들처럼 우우~ 소리치며 몰려다니는 그 구름을 드디어 만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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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에서 고성(古城)처럼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미시령 휴게소.
지금까지 어디서도 보지 못하던 풍경에 당신의 입은 함지박 만하게 벌어졌을 겁니다.
어떻게 이 높은 고갯마루에 저리 넓은 곳을 숨겨뒀을까 싶은 광장과, 조금은 이국적 양식의 휴게소 건물.
그리고 축축한 몸을 이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구름 또는 안개.
혹시 꿈을 꾸는 건 아닌가 싶어서 꼬집어본 사람인들 없었겠습니까.
갑자기 엄마 품에라도 안긴 것 같은 안도감에, 눈물까지 찔끔거린 마음 약한 사람도 있었을 테고요.
맑은 날에 만나는 미시령 정상도 천상의 후원처럼 아름답습니다.
주차장 난간에 기대어 동쪽을 바라보면 속초 시내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습니다.
그리고 눈이 부실 정도로 푸르게 펼쳐진 동해바다.
쓔웅! 하고 몸을 날리면 바다로 풍덩 빠져들 것 같은, 그 터무니없는 거리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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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때문에 곧잘 통제되긴 했지만, 겨울이면 겨울대로 독특한 ‘맛’이 있었습니다.
흰 눈을 가득 이고 서 있는 설악의 줄기, 봉우리들… 하얀 이를 드러내고 으르릉 거리는 바다….
눈 때문에 휴게소에서 오도가도 못 한, 끔찍한 추억을 가진 분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요.
휴게소는 꽤 큰지라 대형식당은 물론이고 간이음식점, 특산물 매점, 기념품가게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 넓은 곳이 늘 인파로 북적거렸습니다.
밥을 먹으며 차를 마시며, 그저 담배 한 대 태우며 이국적 풍경을 만끽하고는 했지요.
한계령, 진부령과 함께 동해로 가는 세 개의 고개 중 하나이자, 속초로 가기 위한 유일한 관문.
그곳, 미시령 휴게소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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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을 얼마 전에 다녀왔습니다.
결론부터 전해드리면 참담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때 당당함을 자랑했지만 이젠 죽음을 코앞에 둔, 늙은 짐승을 보고 온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직장동료들과 동해안으로 워크숍을 떠나는 길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미시령옛길을 기억해내는 순간 모두가 신이 났지요.
오가는 차로 가로 가득했던 길은 왕조가 버리고 간 옛 수도처럼 쓸쓸했습니다.
덕분에 느긋함과 게으름을 한껏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휘파람이 나올 정도로 행복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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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 정상에 올라서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짙은 구름은 여전히 달려와 반기고, 그 속에 잠겨 있는 휴게소도 옛 모습으로 손짓했습니다.
눈물이 찔끔 솟을 만큼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터널이 개통된 뒤에는 나 몰라라 하고 외면하던 무심한 사람인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다람쥐가 숨겨둔 도토리 찾아먹 듯, 추억을 하나씩 꺼내들었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휴게소에 들어가면서부터 일어났습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눈보다 몸이 먼저 감지했습니다.
오가는 사람이 드문 거야 그러려니 했지만, 활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 큰 식당을 할머니 한 분이 지키고 있었는데 손에는 파리채 하나만 달랑 쥐어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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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건 화장실을 가다가 본 풍경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게 텅 비어서 폐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각종 젓갈을 진열했던 냉장고에는 먼지가 가득하고, 특산물을 팔던 가게는 할 일 없는 선반만 남았습니다.
감자수제비, 우동, 해물라면… 분식점의 조리기구는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탁자와 여기저기 올라선 의자들은 더 이상 음식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절망을 웅변하고 있었고요.
세월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은 건물 밖이라고 다를 게 없었습니다.
나무 기둥과 계단은 삐걱삐걱 비명이라도 지를 듯 낡았고, 지붕 역시 손을 보지 못한 지 오래인 것 같았습니다.
뒤로 돌아가 보니 더욱 참혹했습니다.
사람 손길이 닿은 지 오래인 듯, 곳곳이 잡초가 무성했고, 한 때 화려함을 자랑했던 많은 것들이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외출중’이라는 팻말이 걸린 ‘만남의 집’ 녹슨 자물쇠는 주인이 영원히 외출했음을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한 때 화려했던 것들이 안개 속에서 하릴없이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건 고통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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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무섭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터널이 뚫린 게 2006년5월이니 5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 젊고 화려했던 휴게소가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이 되어 있다니….
‘빠르고 편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도 절감했습니다.
내려가던 중에 울산바위가 코앞에 보이는 길에서 잠시 서성거렸습니다.
울산바위를 모르는 분들은 없겠지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던 그 울산바위.
뭐랄까, 집 채? 어림도 없지요.
마치 커다란 산 하나가 서 있는 것 같은 위용을 자랑하던 그 울산바위도 터널이 생긴 뒤 쓸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 앞에 서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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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바람이나 새들만 넘는 고개, 미시령.
그 곳에 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람결에 전하는 부탁이 고작이었습니다.
‘동해에 갈 사람은 구경삼아서라도, 운전이 조금 부담스럽더라도 미시령 옛길로 가 보세요. 그리고 정상에 도착하면 꼭 휴게소에 들르세요. 화장실만 가지 말고 차라도 한 잔 사드세요. 밥을 먹으면 더욱 좋겠지요. 혹시 알아요? 그렇게 해서 그 추억의 장소가 조금 더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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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리마오 2010/07/26 1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시령,
    추억의 이 고갯길 휴게소도 이제는 사라지는 것들이 되어가나 봅니다.

    1994년쯤 한 겨울에 정태련 부부와 같이 미시령을 넘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땐 아이들하고 아이들 엄마하고 다같이 갔었지요.
    그때 미시령을 넘으며 무릎팍까지 빠지는 눈속에서 길가에 매달린 고드름을 따서 아이들 주던 생각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또 어느해 겨울에는 업무상 눈오는 미시령 길을 넘다가 차가 미끄러지면서 두어바퀴 도는 바람에 정말 이승과 저승을 오락가락하기도 했었던 추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길이더랍니다.

    얼마 전 속초에서 서울로 넘어오면서도 이 옛길로 가보고 싶었습니다만 시간관계상 터널로 직행했었는데, 이제 별로 바쁠 일도 없으니 추억을 캐러라도 한 번 이 길을 가봐야겠습니다.

    한결같은 발걸음, 늘 건강하시고 보람있으시길^^

    • sagang 2010/07/26 15: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단한' 추억을 가지셨군요. 목숨을 걸었던 추억. 그런데 그런 분이 만만찮게 많더라고요. 좋은 일만 뼈에 각인되는 건 아니지요. 힘들고 슬펐던 일도...더구나 가족과 함께 가셨으니 감회가 남다르겠습니다.

      언제 사라질지, 조금은 더 버텨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세는 '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간되면 꼭 한번 들러보세요. 추억들 만나셔야지요.

  2. 저건마치 2010/07/26 14: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일런트힐..

  3. 김만석 2010/07/26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아쉽네요.
    오늘도 설악에 다녀왔습니다. 새벽에 출발했기에 이 글을 보지 못했네요, 봤더라면 올 때는 미시령을 넘었을 것을......

    • sagang 2010/07/26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그러셨군요. 설악산에... 하지만 걱정마세요. 금방이야 어찌되려고요. 다음에 갈 때 꼭 들러보세요. 눈에 마음에 담아둘만한 가치가 있어요.

  4. 전경미 2010/07/26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이 엄청~ 많이 왔을 때(통제도 되었던 때..)
    식구들이 모두 아빠차타고 작은오빠 군대면회를 다녀오다가
    미시령에서 사고난 적이 있었어요.
    아찔한 사고였는데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고,
    서울까지 견인차에 끌려 달달달달 왔더랬죠.

    속수무책 변화하는 문명에 새삼 또 놀라게됩니다.
    불과 5년도 지나지 않아 그렇게 변하다니요...
    미시령 고개 넘을 때의 짜릿함?과
    아름다웠던 미시령 정상모습,
    맛나고 정겨웠던 휴게소 모습도 떠올려봅니다.

    여름휴가 계획은 세우셨는지요? ^^
    저는 바쁜 일이 끝나 뭐처럼 여유부리며 놀고 있습니다.

    • sagang 2010/07/26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대단한 추억을 가진 분이 또 있었네요. 미시령 정말 무서웠어요. 곳곳에 사고난 차들이 꼼짝 못하고 있기도 하고... 그것조차 추억이 되네요.

      여름휴가랄 게 없어요. 그저 시간 나는대로 떠나는 거지요. 일하러...

  5. 매헌 2010/07/26 1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향이 속초라, 어렸을땐 서울로 가기위해선 무조건 저길로
    다녀야 했죠..
    초딩시절엔 아버지 차 타고 가면서 미시령만 오르면 무서워 눈이
    저절로 감기곤 했는데.. 옛날생각이 나네요.
    요즘엔 굳이 저길로 가지 않아도 터널이 뚤려있으니 20분이면 속초
    진입하지만.. 가끔은 저 길이 그립기도 합니다.
    근데 자주다니고 길도 어느만큼 외우고 하면 미시령길도 시속80km 주파 가능합니다 ㅎㅎㅎ

    • sagang 2010/07/26 1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셨군요. 그런데 저 길을 시속 80km로... 상상이 안 갑니다. 전 지금도 그리 못갑니다. 으으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6. 탄이엄마 2010/07/27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산 사람한테는 단어만으로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강원도.
    제가 저길 다녀온것도 20년이 넘었네요.
    고등학교 수학여행때였는데요.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사진을 보니 저 둥그런 건물의 모습만 얼핏얼핏 기억을 스칩니다.
    뒹구는 낙엽만으로도 웃음이 나던 시절,
    재잘재잘대며 군것질거리 하나 입에 물고 저 곳에 있었겠지요.
    그때는 깊은 강원도 산골의 웅장한 명물이었었던것 같은데
    지금은 저리도 스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 sagang 2010/07/27 1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재잘대는 여고생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네요. 그 여고생들은 이미 엄마가 돼 있고, 그때 화려하던 건물은 저렇게 낡아가고 있고... 세월의 무심함을 어제 오늘 안 것은 아니지만...가끔 손꼽아보면 기가 막힐 때가 많습니다.

  7. 고마마 2010/07/28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시령 휴게소가 저렇게 변했네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구름을 보며
    신기해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에요.
    낡아버린 휴게소를 보며 씁쓸하셨겠습니다.
    저리 쓸쓸하게 낡아버린 휴게소를 보면서도
    바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그래도 나네요 ^^;

    • sagang 2010/07/28 14:0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럼, 그래도 바다에는 가야지. 가다가 한 번 들려봐. 사라지는 것들이 해주는 이야기는 쓸쓸하지만 가슴에 담을만도 하거든.

      소식 고맙다. 넌 반드시 될거야. 실력과 의지와 미모를 겸비했으니까^^ 오늘부터 기도 모드로 들어간다. 방송은 으음... 부끄럽구나. 뭐든지 최선을 다해야지.

  8. 백 련 2010/08/07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입추입니다...^^*
    미시령에 가고 싶은 마음을 가져다 주신
    사강님,고맙습니다.
    결혼 초에 가고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주변의 풍광에 감탄사를 연발 하던 옛 추억이
    떠 오릅니다.
    사강님,내일 생신 미리 축하드립니다...^^*
    날마다 건강하시고 해피하셔서 사라지는 것들의
    소중한 보물들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소중한
    선물로 안겨주실 것을 염치 없게도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8월 8일은 포도,파파데이 입니다.포도와
    함께 아드님들과 생신파티 하시면 어떠실런지요)

    • sagang 2010/08/09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제 생일을 기억해준 몇 분 중의 하나입니다. 연식이 오래되다보니 생일이란 게 참 거시기 합니다. 그렇다고 아주 잊어지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늘 주변에서 바라봐주시는 분들 덕분에 배낭 메고 길을 떠나게됩니다. 그게 저를 지탱해주고요.

  9. 송파아재 2010/08/30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토요일 아침 먹고 TV 채널 이리 저리 돌리다가 늘어지게 한잠 자고 일어나니 오후 2시. 인스턴트 메밀국수 한 그릇 먹고 나니 세시 좀 못 됐는데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더군요. 그래. 바다를, 동해바다를 보러 가잣!!그때부터 주섬주섬 챙겨 나선 시각이 대략 4시 좀 못됐죠. 아내와 작은 아이 이렇게 셋이서 속초를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6번 국도를 경유하여 미시령을 통과하는 여정. 백담사 입구를 지나 미시령터널을 향해 가다 문득 눈에 띈 미시령옛길 표지판. 언젠가 여름 자동차 문을 열기 힘들 정도로 바람 몹시 불던 날을 기억하며 미시령 휴게소에 들어섰습니다. 과연 글 쓴 님의 표현대로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의 모습이 거기에 전개됐지요. 십전대보탕 한 잔과 구은 감자 한 접시를 샀습니다. 그리고 울산바위 뒤태를 감상했지요. 아,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우리는 너무 쉽게 그런 것들을 보내버리는군요. 하물며 관광을 간다는 사람들마저 옛길을 버린다면 다른 사람이야 일러 무엇하겠습니까. 속초해수욕장의 바닷물과 발밑을 간지르던 모래의 감촉을 뒤로 한 채 밤 10시. 우리는 다시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터널을 이용해서인지 훨씬 가까웠습니다.

    • sagang 2010/08/31 0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도 이렇게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하겠지요. 빠르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옛것을 모두 버린다면 사람도 마찬가지가 돼야겠지요. 가끔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듯, 가끔은 오래된 인연들을 찾아나섰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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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문제였어…. 작살질이라면 똥을 누다가도 뛰어나가는 영표 형의 작살만큼이나 날카로운 햇살. 아이는 걸어가면서도 자신이 더위를 먹는 바람에 이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나와 면사무소 옆 비석거리를 지날 때, 평소처럼 집으로 갔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왜 거기서 장터거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지. 장터입구에서 만난 동네사람, 풍월아저씨를 만났을 때라도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풍월아저씨가 “석두 아니냐? 집에 안 가고 어딜 가는 게냐?”하고 물었을 때가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개백정과 눈을 마주친 똥개마냥 꼬리를 말고 비실비실 비켜서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지 않았던가. 햇살을 한 아름 등에 진 풍월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길을 재촉할 때까지 아이는 그냥 그러고 있었다. 아니, 돌아서야 한다고 잠깐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 순간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날카로운 통증이 가슴을 훑었다. 엄마…. 그래, 엄마가 죽어가고 있잖아. 엄마라는 이름은 아이의 모든 힘줄을 부풀어 오르게 했다. 아이는 빠른 걸음으로 장터거리를 가로질렀다. 장터가 끝난 모퉁이에 그 집이 있었다. 장날이면 성시를 이루는 그 집, 평일의 한낮에는 적막만 배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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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손을 눈 위에 가리고 턱없이 높게 매달린 간판을 올려봤다. 말이 간판이지 양철판에 삐뚤빼뚤 써 갈긴 글씨 세자가 전부였다. 해당옥. 미닫이문 유리창에도 국밥, 탁주, 안주일체, 외상사절 등의 글씨가 들쭉날쭉한 씌어 있었다. 하지만 허술하다고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니었다. 장날이면 떠돌이 장돌뱅이서부터 쓸데없이 친구를 따라 장 구경나선 농투성이까지 생쥐 풀방구리 드나들 듯 한다는 게 해당옥이었다. 사람들은 해당옥보다는 설화네라고 불렀다. 주인의 이름이 설화인 모양이었다. 국밥도 팔고 술도 파는 집이었다. 장날이야 국밥집에 가까웠지만, 평소에는 간단하게 막걸리 한 두 사발로 목만 축이고 가는 사람이 많으니 선술집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구색 갖춘 안주에 색시들이 권주가로 동백아가씨나 댄서의 순정을 불러대는 비석거리의 삼월옥과는 근본부터 달랐다. 한참 서 있었지만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여름이면 늘 활짝 열어 부치고 주렴이 대신하는 미닫이문도 꽁꽁 닫혔다. 아이는 뙤약볕을 그대로 맞으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정말 저 곳에 아버지가 있을까? 있다면 대체 저기서 무엇을 하는 걸까?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따라 나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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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무너질 것처럼 허름한 그 집이, 아이에게는 난공불락의 성 같았다. 아무나 들여보내지 않는…. 다가서서 문을 두드릴 수도 그냥 돌아설 수도 없었다. 햇볕 아래 오래 서 있어서일까. 열에 들뜬 엄마의 신음이 이명처럼 아이의 귓전에 맴돌았다. 엄마는 지금 아프다. 한 여름이 무색할 만큼 기침과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은 지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아이가 학교에 간 사이에 가끔 와서 옷을 갈아입고 나가는 모양이었지만 직접 마주친 적은 없었다. 어제 저녁에는 엄마가 위험한 고비를 간신히 넘겼다. 기어 다니다시피 아이의 저녁밥을 차려준 뒤 자리에 누웠는데, 한밤중에 열이 치솟고 기침이 쏟아지더니 결국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잠시 뒤에는 온 몸에서 기운을 놓아버렸다. 아이는 겨우 중학교 1학년이었다. 뭘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엉엉 울며 발만 구르던 아이가 이웃집으로 달려갔다. 잠자리에 든 명구할머니의 손을 끌어당기다시피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다행히 엄마가 정신을 되찾은 뒤였다. 명구할머니는 먼 친척이었다. 친정어머니도 시어머니도 없는 엄마가 유일하게 기대고 마음을 털어놓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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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구할머니를 본 엄마의 눈에서 하염없이 흘렀다. 얼굴은 여전히 파리했고 숨결은 미약했다. 끊어질듯 이어질듯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가 벌을 받는 거쥬. 지은 죄가 많어놓으니. 얼른 가야는디, 저것이 눈에 밟혀서….”
“자네가 뭔 죄를 졌다는 겨. 집안 핏줄 찾어다 대를 이은 것두 죄여? 그나저나 이 사람이 워찌 이리 무심할 수가 있는겨. 마누라가 숨이 넘어가는디두…. 천벌을 받지. 천벌을…. 내일은 장터거리 쫓어가서 해당옥인지 해당환지 불을 싸지르구 말텨….”
엄마의 황급한 눈짓에 말을 중동무이한 명구할머니의 눈도 개진개진 젖어있었다. 아이는 최근 두어 달 새 벌어진 일들을 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집에 드문드문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늦은 봄부터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집안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더니, 그날 밤 아버지를 볼 수 없었다. 단 세 식구가 살다가 한 사람, 그것도 가장이 빠져나간 집안은 공포에 가까운 적막만 맴돌았다. 아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엄마는 쓸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엄마가 자주 자리에 눕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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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여전히 황금빛 작살을 쏘아내리고 아이는 자꾸 어지러웠다. 한참이나 서 있던 아이가 비척비척 걸음을 옮길 무렵, 드르륵 소리와 함께 해당옥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긴 그림자를 앞세우고 한 여자가 나왔다. 유리창 안에서 오랫동안 아이를 바라보았던 듯 여자는 곧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가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넌… 누구니? 누굴 찾아온 거니?”
부드럽고 간지럽기도 한 서울 말씨가 귓전을 맴돌았다. 아이는 마음을 들키기라도 할세라 황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여자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작은 소읍에는 이질적일 정도로 해끔한 얼굴이었다. 집에 누워 있는 까맣게 탄 얼굴의 엄마가 생각났다. 여자는 우물처럼 깊은 눈을 깜박이지도 않은 채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길을 피하기라도 하려는 듯 아이가 조금씩 발을 뒤로 뺐다.
“그러지 말고 잠깐 들어와 봐”
여자가 아이의 손을 잡더니 살짝 당겼다. 아이는 돌아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 저항도 못하고 따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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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바람에도 무너질 것 같은 겉모습에 비해 술집 안은 깔끔했다. 파란색 비닐커버가 씌워진 탁자가 세 개, 그리고 나무로 짠 걸상이 두 줄씩 여섯 개. 찬장에는 노란 주전자가 네 개, 검게 빛나는 투가리들, 그리고 술잔으로 쓰이는 막사발과 그보다 작은 보시기들이 말끔하게 닦인 채 올려져 있었다. 
“여기 좀 앉아봐. 아줌마가 시원한 거 가져올게.”
아이가 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여자는 입가에 수밀도 같은 웃음을 베문 채 주방으로 들어갔다. 뜻밖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 순간이었다.
“어이, 누가 왔남? 이 더위에 뭔 낮손님이여~”
아무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엔 환청인가 했다. 하지만 방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제야 아이의 눈에 낡은 구두 한 켤레가 들어왔다. 아! 아버지 구두였다. 안에서 구시렁거리며 문을 미는 기척이 들리는 순간, 아이가 후닥닥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햇살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아이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끊어진 목걸이에서 빠져나온 진주알처럼 산산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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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엄마가 하늘로 떠난 날 밤에 돌아왔다. 앞산에 엄마를 묻고 온 아버지가 아이를 불렀다.
“아버지하고 서울 가서 살자.”
아이는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서울이라니…. 더구나 엄마를 그렇게 만든 여자와…. 불쌍한 엄마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몸부림치면서 싫다는 아이를 끝내 못 이긴 아버지는 주소를 적은 종이 한 장과 얼마간의 돈만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해당옥 여자 사이에 얽힌 악연을 꿈결인 듯 들을 수 있었다.
“그때 대처로 나갔던 쟤 애비가 그년을 만났다는 겨…. 그년도 팔자가 기구혀서 그렇지. 멀쩡한 집 처녀였다는디…. 어쩌다 눈이 맞어서 저걸 낳게 된 거지. 그게, 니가 우리 명구를 낳은 해니께 10년두 훨씬 더됐구먼.”
“그런디, 워떻게 저 애가 일루…. 돌아가신 성님이 찾어갔었내비네유.”
“그랬댜, 연락이 끊어진 서방을 물어물어 찾어가 보니 그년과 살림을 차렸더랴. 애는 못 내놓겄다구 난리를 피는 걸 박 씨 집 핏줄이라고 뺏다시피 데려왔다는 겨. 그것 땜이 맨날 남의 새끼 뺏은 벌을 받는다구…. 애를 뺏긴 그년은 충청도 여기저기 술집으로 돌아댕겼다지. 석두애비가 충청도 사람인 것만 알지 어디 사는 줄은 물렀다니께. 그러다 읍내까지 굴러와서…. 석두애비는 해당옥이 그년이 차린 술집인 줄 모르구 갔다가 그만….”

긴 여름방학이 끝난 뒤, 아이는 장터거리에 가봤다. 한바탕 꿈이었던 듯 모든 게 사라진 뒤였다. 집은 비었고 해당옥 낡은 간판만 바람에 그네를 타고 있었다. 아이는, 그 여자가 한밤중에 찾아와 내가 진짜 엄마라고 울면서 손을 끌던 날, 뿌리치고 도망가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돌멩이만 툭툭 차고 있었다. 영표 형의 작살만큼 여전히 날카로운 햇살이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선술집은 원래 술청 앞에 선 채로 한 두 잔의 술을 마시고 가는 술집을 말한다. 하지만 ‘간단하게 한잔 할 수 있는 술집’의 통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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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만석 2010/07/12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술집의 투박한 간판만큼이나 투박했던 과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

  2. 전경미 2010/07/14 1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래된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잔하고픈 날입니다. ^^

    오늘 이야기도 짠~~ 하네요.
    사강작가님은 정말 이야기꾼이셔요.

    • sagang 2010/07/14 1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젠 저렇게 생긴 집도 드물어요. 정감이 있었는데...그래도 인사동 뒷골목 막걸리집은 그냥 있지요. 기회 한번 마련합시다.

  3. 탄이엄마 2010/07/15 1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야기보따리 사강님!!^^
    저런 사진들은 사강님 블로그에서나 볼 수 있는
    꼭 꾸며놓은 집인것만 같습니다...

    요즘 비가 잦은 부산입니다.
    부산에 고갈비 골목이 있다는걸 얼마전에 알았는데
    아주 아주 오래된 골목이었습니다. 역사도 오래되었다더라구요.
    그래서인지 그 골목도 재개발이라는 이유로 헐리는 곳이 많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그중 장사를 하고 있는 몇 안되는 집에 들어가
    막걸리를 한잔 했는데, 오래된 것들에게는 왜 그리도 금세 정이 드는건지....처음 찾은 곳이었지만, 없어져버릴 것에 대한 아쉬움이 드는 순간 사강님 생각을 했었습니다...

    • sagang 2010/07/16 1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쉬운 생각이 드는 순간 저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질수록 많은 기록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제가 사는 보람이지요. 서울 인사동의 고갈비집도 참 좋은데, 요즘은 고갈비가 안 나오고 이면수구이가 나옵니다. 그나마 그 집도 언제 사라질지 몰라 조마조마 하지요.

      서울에도 비가 많이 내립니다. 내일 촬영 가야되는데 고민이 한 보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