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sagang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1, 2권이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책을 출판하기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Notice

 

*1회부터 읽어야 재미있습니다.^^ 열심히 물어보고 공부했지만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골목길 카페

사람은 없고 게으른 고양이만

흡연 삼매경에 빠진 그녀 

배에서 내리자마자 카쉬 탐색에 나선다. 이곳은 작은 도시고 유적이 많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천천히 돌아봐도 걸어서 3~4시간이면 족하다. 일행이 목표로 잡은 곳은 구시가지. 구시가지라고 해서 대단한 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다. 자그마한 골목에 전통가옥과 기념품가게, 카페들이 늘어서 있다. 서울의 인사동쯤으로 생각하면 되는데 여름이 지나서인지 관광객의 발길이 거의 끊겼다. 시끌벅적 호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좌판이 나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소풍 간 날 학교 운동장처럼 조용하다. 이런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행복이다. 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여행이란 완급을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 달려가서 봐야 할 것도 있지만, 음미하듯 느껴야 할 것들이 있다. 관광과 여행이 다른 점이 그것이기도 하다. 외국에 나가 보면 한국인의 고질인 우르르병을 심심찮게 목격한다. 깃발을 따라 우르르 버스에서 내려 우르르 기념사진 한 장 찍고 다시 우르르 버스를 타고 떠나는 과정의 반복. 그러고서 집으로 돌아간 뒤에 사진을 보면서 아! 내가 이런 곳을 다녀왔구나. 어느 땐 그놈의 우르르병 때문에 볼 일도 제대로 못 보고 우르르 버스를 타고 떠나는 해프닝도 벌어진단다. 가이드 역시 고객이 원하는 빡빡한 일정을 채우려면 양떼를 모는 목동처럼 우르르 끌고 다음 행선지로 떠날 수밖에. 본전 생각이 나서 그럴까. 그러려면 왜 떠나는 것일까. 집에서 달력사진이나 보고 있는 게 훨씬 경제적일 텐데.

흡연 삼매경에 빠진 아가씨. 너무 멀리서 잡았나?

아름다운 집도 있고

잡설이 길어졌다. 저마다 취향이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하거늘. 골목을 걸어 올라가다 2층집의 발코니에서 흡연 삼매경에 빠져 있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발견한다. 일행의 눈길이 힐끔힐끔 그곳으로 향한다. 그저 사내들이란. 그러는 너는? 사실 그만큼 매혹적이다. 터키인들은 담배를 무척 즐긴다. 믿음 씨도 버스가 서면 달려 내려가 담배부터 빼문다. 터키의 흡연자는 대부분 체인 스모커다. 세계 7위의 담배소비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흡연에 대한 터부가 거의 없다. 한마디로 흡연천국이다. 실내는 물론 정류장이나 공원에서조차 쫓겨 다녀야하는 대한민국의 흡연자들이 부러워할만 하다. 여성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23년 터키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여권(女權) 신장이 이뤄지면서 여성들도 담배를 피우게 됐다. 한 때는 흡연 여부가 사회적 지위를 상징했다고 한다. 여성들의 흡연은 우리처럼 은밀하지 않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성들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많지만 터키에서는 별 차별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발코니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당당해 보인다. 골목의 총 길이는 150m 정도? 카펫을 비롯한 기념품 가게들이 주종을 차지하고 있다. 골목의 끝 무렵에서 우뚝 솟은 리키아 석관을 만난다. 거리 한복판에 이런 석관이 있다니. 지금까지 본 석관 중에서 가장 우람하고 완벽한 모습이다.

고대 석관에 기대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청년-처녀들.

리키아 석관에 새겨진 고대 문자.

또 하나의 리키아 석관

아가씨의 저 당당한 모습을 보라.

그런데 석관보다 먼저 눈길이 가는 풍경이 있다. 석관과 그 옆 거대한 나무에 눕다시피 기댄 채 이야기를 나누는 청춘남녀. 남자 둘에 여자가 하나다. 이들은 아예 전용 카펫을 깔아놓고 한낮을 즐기고 있다. 이방인들은 먼 길을 찾아와서 봐야 하는 이 고대 유적이 동네 청년들에게는 그저 으슥함이 보장되는 휴식처에 불과한 모양이다. 아가씨는 무척 매력적이다. 이 동네는 미인들만 사나? 아랍풍의 푸른색 상하의에 포인트를 줘서 염색한 머리, 화려한 팔찌와 목걸이, 어깨에는 문신까지.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여인? 옛날, 미국 드라마 중에 내 사랑 지니인가? 하는 게 있었는데 거기 등장하는 여주인공이 연상되기도 한다. 촬영팀이 카메라를 들이대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무슨 얘기를 저렇게 재미있게 나누는 걸까. 근처 상가에서 일한다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젊은이들의 휴식처로 바뀐 이 석관은 BC 4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기단 위에 석관을 얹은 전형적인 리키아 양식인데 기단 부분에 리키아 글씨들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무덤의 주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왕족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석관 상단의 둥근 부분에는 네 마리의 사자 머리가 조각돼 있는데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아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다. 나도 석관 옆 나무그늘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힌다. 해가 건물 뒤로 숨는 기색이더니 골목에 땅거미가 슬금슬금 기어 다니기 시작한다.

카펫도 있고 방석도 있고 옷도 있어요.

골목은 조용하다.

내려오는 길에 노천카페에서 맥주를 한 잔 주문한다. 하루가 저물 무렵 배낭을 내려놓고 마시는 맥주의 맛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1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걷는 건 제법 힘든 일이기 때문에 잠깐씩 찍는 쉼표는 달콤하기 짝이 없다. 터키의 맥주는 에페스라는 상표 하나뿐인데 내 입맛엔 잘 맞는 편이다. 하긴 맛이 없더라도 목마른 여행자에겐 감로수처럼 달 수밖에. 맥주의 이름이 된 에페스는 도시 이름이다. 성경 에배소서()’로 잘 알려진 에배소가 바로 그곳. 꼭 가보고 싶은 곳이지만 이번 여행 코스에는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에페스는 기독교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곳이다. BC 10세기에 이오니아인에 의해 건설된 이 곳은 알렉산더대왕 이후 로마의 주요 도시 중 하나가 되면서 번창을 거듭했다. 철학과 문학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예술가와 상인들이 몰려들어 한때는 인구 25만 명의 큰 도시로 발전했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로마의 집정관 안토니우스도 이 곳에 함께 들러 보석과 화장품을 샀다고 전해진다. 에페스는 또 서기 53년에 바울이 설교를 한 곳이기도 하다.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연설을 하는 바람에 아르테미스 신을 섬기는 군중들에 의해 쫓겨나기도 했지만 점차 기독교의 성지로 변해간다. 에페스가 유명하게 된 것은 성모마리아가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맥주를 서빙하는 노인. 저 깊은 눈, 득도를 한 것 같았다.

기독교 성지 에페스

에페스에서 1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산에는 성모마리아의 집이 있다. 독일인 수녀의 꿈속에 나타나는 경이로운 과정을 거쳐 1891년에 발견됐다. 그 전에는 예루살렘에서 세상을 떴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성모마리아는 예수의 부탁을 받은 요한을 따라 에배소로 갔으며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어쩌다가 시원한 에페스 맥주 한 잔이 성모마리아 이야기로 비약했지만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노천카페에서 음료수와 맥주를 서빙하는 이는 노인이다. 70세쯤 됐을까? 마른 몸피에 하얀 수염과 눈가의 짙은 주름. 그래도 노인에겐 궁상의 기운은 전혀 없다. 당당하고 빠른 동작으로 심해어처럼 손님들 사이를 유영한다. 그와 언뜻 눈길이 스쳤는데 오래 마주보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깨달음을 얻은 성자의 눈이 저러할까. 일하는 노인, 아름답다. 일을 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게 아니라 당당해서 아름답다. 맥주를 거의 마실 무렵에 다큐팀의 멤버 한 사람과 엄상욱 씨가 신발가게 앞에서 흥정을 하는 게 눈에 띈다. 궁금해서 다가가보니 가죽신을 이것저것 신어보고 있다. 내가 즐겨 신는 캐주얼 형태의 신들이다. 나도 반 장난삼아 한번 신어본다. 비단처럼 부드러운데다 내 발에 꼭 맞는다. 옆에서 드디어 임자를 만났다고, 지갑을 열라고 충동질이다.

카페에서 차를 즐기는 사람들. 줄담배를 피워댄다.

리어카 노점상도 지나가고.

나는 외국에 나가서도 거의 물건을 사지 않는 편이다. 그렇게 산 물건이 유용하게 쓰인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덜컥 신을 사고 말았다. 엄상욱 씨를 중간에 내세워 흥정했지만 많이 깎지는 못했다. ‘거금’ 35달러가 지출됐다. 터키는 공업 수준이 그리 높지 않지만 가죽공예는 세계적 수준이라고 한다. 그 말에 솔깃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만큼 마음이 느슨해졌거나. 다큐팀과 헤어진 뒤, 땅거미가 더욱더 짙어진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내려와 아타튀르크 동상 아래 자리를 잡고 앉는다. 전에도 말했지만 터키는 경치 좋은 곳이나 공원에는 예외 없이 아타튀르크 동상이 서있다. 이곳도 코앞에 짙푸른 바다가 펼쳐져있는 아름다운 공원이다. 바다 위의 배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힌다. 약간은 쓸쓸한 표정이 되어 앉아있는 내게 청년 하나가 슬며시 다가온다. 역시 시선은 사람보다 카메라로 먼저 간다. 터키의 청년들이여! 제발 카메라 좀 잊어주시게. 한참 카메라를 요모조모 살펴보더니 손짓, 몸짓으로 뭐라 묻는다. 잘 못 알아듣는 표정이자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영어로 얼마 주고 샀느냐고 쓴다. 이상한 친구일세. 글씨를 쓸 줄 알면서 왜 말로는 못 물어봐? 혹시 말을 못하나? 얼마라고 가르쳐줬다니 아무소리 없이 가버린다. 싱겁기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한참 뒤 돌아오는데 손에 SLR카메라가 들려있다. 내게 오더니 그걸 자랑 하느라 침이 마른다. 어라? 이 친구 카메라를 손에 쥐니까 말 잘하네?

나를 위해 춤을 춰주던 아이.

저건 춤이지 절대 국민체조가 아니다.

그의 직업은 웨이터

그래, 그걸로 사진 열심 찍어. 남의 카메라 부러워할 거 없잖아. 자랑이 끝났는지 또 아무 말 없이 가더니 이번엔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을 데려온다. 자기가 일하는 음식점의 요리사란다. 자기는 웨이터고. “I’m waiter!!!” 눈이 별처럼 빛난다. 자신의 직업에 저 정도 자부심을 갖는 사람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이쯤 돌아갔으면 아름다움만 남았으련만, 사진을 한번 찍어보겠단다. 그것도 내 카메라로. 그러라고 넘겨줬더니, !! 사진 실력이 엉망이다. 구도고 뭐고 깡그리 무시하고 모든 기력을 셔터 누르는데 쓰고 말았다. 공부 좀 해라, 공부해서 남 주냐? 청년이 돌아가고 난 뒤 슬그머니 사진을 지운다. 그가 떠난 자리에 예쁜 아이 하나가 지나간다. 손을 흔들며 하이! 하고 인사했더니 새침한 얼굴로 그냥 지나간다. 에구, 민망해라. 아는 척 좀 해주지. 그런데 그 상황은 순간적인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웬일인지 저만치 가던 아이가 돌아서 오더니 내게 손을 흔들며 하이! 하고 인사를 한다. 조금 불쌍해 보였나? 반갑고 예뻐서 껴안아주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유아 희롱죄로 걸릴까봐)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이걸 어쩐담. 이 녀석, 온갖 예쁜 동작을 다 보여주며 춤을 춘다. 이게 웬 떡? 카메라 셔터는 혹사를 당하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서서 박수를 친다. 저만치 갔던 아이의 부모도 돌아와 웃고. 이건 선물이다. 터키가 내게 준 선물이다.

아타튀르크 동상이 있는 작은 공원.

이제 어둠은 제법 짙어져 나무그늘 아래 머물던 빛을 거의 지웠다. 다큐팀은 어디로 갔는지 기척도 없다. 나는 아타튀르크 동상 아래에 또 다른 동상처럼 앉아 바다위의 배들을 바라본다. 그들도 이제 바다로 떠나고 싶은 열망을 잠시 접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동상도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아타튀르크. 같은 세기를 살았던 위대한 독재자를 생각한다. 아타튀르크 이야기를 모두 하자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하다. 그래도 우리는 그에 대해 겉핥기로라도 알고 갈 필요가 있다. 우리의 독재자와 이 나라의 독재자가 어떻게 달랐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아타튀르크의 본래 이름은 무스타파 케말이다. 아타튀르크는 아버지라는 뜻의 ‘ata'와 터키인이라는 의미의 ’tüurk'의 합성어다. 즉 터키인의 아버지, 국부(國父)를 뜻한다. 그밖에도 그는 케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그냥 아타튀르크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다. 케말은 1881년 지금은 그리스 땅이 된 살로니카에서 태어났다. 케말이라는 이름은 중학교 때 수학선생님이 지어줬다고 한다. 무스타파는 완벽하다’, 케말은 성숙하다라는 뜻이다. 케말은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뒤 군사 중등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스탄불의 사관학교에 들어갔다. 어릴 적 군인의 뜻을 품고 정통코스를 밟은 셈이다. 이 땅에도 그런 이들이 있었다.

아타튀르크를 아십니까

이 분이 바로 아타튀르크이시다.

케말을 민족적 영웅으로 만든 건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벌어졌던 갈리폴리 전투다. 영국 연방군과 프랑스군 20만 명이 독일을 공격하기 위해 갈리폴리 반도로 상륙을 시도했다. 이에 맞서는 오스만군의 숫자는 불과 14000. 시쳇말로 새 발의 피였다. 하지만 사령관 케말은 군대를 갈리폴리 반대쪽의 차나칼레에 주둔시키고 연합군을 공격했다. 유리한 지형을 이용한 접전 끝에 케말은 결국 연합국 함대가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막아냈다. 20만 대군을 물리쳤다는 소식이 전국에 전해지면서 케말은 일약 영웅이 되었다. 이후 이빨 빠진 호랑이오스만 제국이 서구 강대국으로부터 침략 위협을 받게 되자, 터키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전쟁을 벌인 끝에 1923년 드디어 터키 공화국을 건국한다. 그는 공화국이 창건된 1923년부터 세상을 뜬 1938년까지 15년간 초대 대통령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가 그동안 한 일은 일일이 손꼽기 어려울 정도다. 무엇보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를 근간으로 서구식 근대화 개혁을 이끌어나가면서,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민의 긍지를 한껏 높였다. 또 새로운 문자를 도입해서 보급함으로써 문맹률을 제로에 가깝게 낮췄다. 이슬람 최상의 지도자를 나타내는 칼리프제를 폐지한 것은 물론 교육제도 개혁, 서양력 도입, 여성 참정권 부여, 라틴 숫자 도입 등이 모두 그의 시대에 이뤄졌다.

어두워져 가는 거리. 동상의 실루엣이 장엄하다.

그그런 개혁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는 거의 전권을 휘둘렀다. 보는 시각에 따라 히틀러나 스탈린과 같은 독재자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세월이 흘러도 독재자로 불리고 아타튀르크는 여전히 민족의 영웅으로 남아 있을까? 나 역시 그 정답을 아는 건 아니다. 다만 그의 행적이나 개혁 과정을 되짚어 보면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따뜻한 인간미를 간직했고 문화적 소양을 갖췄던 것 같다. 그리고 모든 행동의 바탕에 순수한 애국심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부패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타튀르크주의라고 불리는 케말리즘은 터키 사회에서 최고의 가치덕목이다. 세상을 뜬지 7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아타튀르크는 민중에게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해마다 그가 숨을 거둔 1110일 오전 95분이면 전국에 사이렌이 울린다. 모든 차와 사람들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그를 기리는 묵념을 한다. 그의 초상화는 어느 곳에서든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빠짐없이 동상이 세워져 있고 대도시의 큰 거리 대부분은 아타튀르크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아타튀르크, 이 위대한 독재자는 죽은 뒤에도 여전히 살아있다. 여행을 하는 내내 나는 그런 국부를 모셨던 터키가 부러웠다. 국민소득이 낮아도 삶의 만족도가 높은 건, 아타튀르크라는 영웅을 가졌다는 자부심도 한 몫을 하는 건 아닐까.

불을 밝힌 부두의 유람선.

영웅전을 쓸 게 아닌 바에야 남의 나라 국부 얘기가 더 길어지면 재미없을 터. 남은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자. 그나저나 나는 지금 지치고 배고프다. 다큐팀은 어디로 간 것일까? 세상은 완전히 어둠의 그물 속에 갇혀버렸다.

추천(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sagang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조상구 2012/01/16 13:34  Addr Edit/Del Reply

    아타튀르크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얘기가 많군요. 이름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위대한 독재자라는 사실은 처음입니다. 여행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터키는 갈수록 정이 듭니다. 행복한 글 읽기 감사드립니다.

    • sagang 2012/01/16 17:09  Addr Edit/Del

      아타튀르크는 한국에 잘 알려진 사람은 아닙니다. 그럴 기회가 별로 없었지요. 하지만 터키에서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영웅이고 국부입니다. 터키인들의 자부심이지요.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2. 송경아 2012/01/16 14:52  Addr Edit/Del Reply

    선 추천 & 리플 후 감상합니당~~~~

    • sagang 2012/01/16 17:10  Addr Edit/Del

      추천과 리플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먹고삽니다^^

  3. 2012/01/16 17:06  Addr Edit/Del Reply


    겨우 짬이 난 월요일, 출근하고 정신없이 달리던 손은
    다섯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겨우 겨우 찻잔에 차 한잔 담아 앉았습니다.
    뜨거운 차를 홀짝이며 읽는 터키의 여행기,
    오늘은 카쉬의 한적한 마을 덕에 마음만이라도 담빡 한가해집니다...

    어디선가 읽은 이야긴데, 외국에서 신발을 사면 언젠가 그곳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던데요
    작가님이 카쉬를 다시 가게 되시면 이 말이 떠오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행복한 여행기 감사합니다. 덕분에 힘겨운 월요일에 낙이 생겼습니다.
    다음주엔 설이라서 못뵈려나요, ㅎㅎ 명절 잘 보내시고 기쁜일 가득하시기를!

    • sagang 2012/01/16 17:13  Addr Edit/Del

      그런 전설이 있군요. 그곳에서 신발을 사면 언젠가 다시 돌아간다... 그렇다면 맘에 드는 곳에서는 꼭 신발을 사와야겠네요. 뭐 경비가 문제겠지만.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렇게 바쁘셔서 어쩌나요. 그래도 제 글이 잠시의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주에는 쉴 생각입니다. 읽는 분들도 생각해야지요^^ 함께 하는 여행 고맙습니다.

  4. 소머즈 2012/01/17 08:54  Addr Edit/Del Reply

    카쉬의 젊은 남녀들을 보니 터키라는 나라가 무척 자유로워 보이는군요. 그동안 터키에 대한 이미지는 조금 딱딱했거든요. 저 여자 아이의 천진한 춤도 재미있고. 터키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갑니다. 행복한 여행기 고맙습니다.

    • sagang 2012/01/17 09:40  Addr Edit/Del

      제도적 자유도 그렇지만 터키 사람들은 영혼 자체가 무척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몽골초원을 달리던 기마민족을 조상으로 두고 있어서 무척 급하고 각박할 줄 알았는데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제 글이 인식을 바꾸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니 행복한 일입니다. 고맙습니다.

  5. 전경미 2012/01/17 14:01  Addr Edit/Del Reply

    우르르병 이야기에 괜히 찔리네요. 사무실에서 해외여행을 매년 가지만 패키지로 가는 거라 정말 우르르 어디 어디 갔다가 먹고 관광하고 그러고 돌아오니 그렇게 기억에 남는 여행은 없었던 거 같아요. 그래도 그렇게 바람 쐬고 오는 거에 위로받으며 살고 있기는 해요. ^^

    오늘은 정말 우리나라의 인사동이 떠오르는 카쉬의 아기자기 골목길 이야기네요. 작가님마저 반해버린 매혹적인 그녀들이 있는 카쉬의 거리! 노천카페에서의 달콤한 맥주 맛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쉼터 같은 여행길이었던 같아요. 석관에 기대어 노니는 젊은 터키인들의 자유스러운 모습, 서빙 할아버지의 깊은 눈매와 해맑은 꼬마 여자아이의 춤.. 그곳 분위기가 자연스럽고 흥미롭게 전해지는 거 같아요.
    가죽공예가 세계적 수준이라는 터키에서 산 신은 잘 신고 다니시는지요? 언제 보여주세요!
    아타튀르크는 전편에서도 짧게 설명해주셨었죠. 문자를 도입하고 보급하신 분! 아직도 잊히지 않고 존경받는 위대한 독재자이자 민족의 영웅이시군요.

    오늘도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지치고 배고프셨다는데. 어디 맛난 만찬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기대해봅니다. ^^

    • sagang 2012/01/17 14:27  Addr Edit/Del

      맞아요. 그렇게 우르르 가서라도 기분을 전환하고 위로받고 사는 것도 한 방법이지요. 다만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짜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런 식으로 외국을 나가봤는데, 너무 일정이 빡빡하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카쉬의 골목에서 마시던 맥주맛은 영원히 못 잊을 것 같아요. 많이도 아니고 단 한 잔 마셨는데 얼마나 달고 시원하든지. 사실 소주파인데도 그런 땐 맥주가 최고지요. 특히 서빙하는 노인의 그 깊고 서늘한 눈매는 가슴 속에 각인돼 있습니다. 흐흐, 터키에서 산 신 오늘도 신고 왔습니다. 가볍고 부드러워서 참 좋아요. 한 10켤레 쯤 사올 걸 그랬어요.

      함께 해준 여행 고맙습니다. 계속 함께 가겠습니다^^

  6. 정암 2012/01/17 16:10  Addr Edit/Del Reply


    저 노인의 눈빛이 정말 심해어의 그것처럼 깊군요.

    끝을 알 수 없는 깊이에..무엇을 담고 있을지도 모르겠을 그런...

    작가님의 사진 속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참 아름답습니다.
    시선이 아름답기 때문일까요?

    오늘도 즐거운 여행기 잘 감상하고 갑니다. 설 잘 쇠시길 바랍니다.

    • sagang 2012/01/17 17:48  Addr Edit/Del

      저 눈빛에 쏘이고 한참동안 운신을 못했습니다. 뱀 앞의 개구리라고나 할까요? 그 심연 속에 무엇이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찍는다는 건 참 두려운 일입니다. 그 '사람'을 찍어야하는데 '껍데기'만 찍기 일쑤거든요. 좋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7. 샬롬 2012/01/17 19:53  Addr Edit/Del Reply

    베란다에서 흡연하는 여성을 보면서, 터키가 이슬람 국가가 맞나? 할정도로 여타 이슬람 국가들과는 달리 상당히 개방적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1923년 터키공화국 이후로 여권신장이 되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이해가 되었구요. 이슬람 문화의 특성을 고려해 볼때 여권신장에 앞장선 케말이 개혁가이며, 트인생각의 지도자임을 보여줍니다.
    새로운 문자를 보급하고, 국민들의 문맹율을 0%에 가깝게 했을정도라 하니 터키인들이 케말을 아타튀르크라 칭할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사진속의 꼬마 아이가 마치 "아타튀르크 만세" 하며 춤을 추는것 같습니다.^^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어찌 이리 귀엽고 예쁠까요.
    정말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이번회도 터키 역사 공부와 함께 터키인들의 평화로운 일상 모습에서 행복을 담아갑니다.
    남은 한 주간 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

    • sagang 2012/01/18 10:07  Addr Edit/Del

      저도 이슬람국가라는 이미지와 현실의 매치가 어려울 정도로 큰 갭을 느꼈습니다. 무척 자유로웠고 국가나 제도로부터의 제약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종교라는 게 금기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터키가 그 전형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꼭 여성이 담배를 피우고 말고를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타튀르크에 대해서는 알면 알수록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사람을 낳고 키웠던 터키가 부럽기도 하고요.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행복한 명절 보내세요.

  8. 유명남 2012/01/18 13:56  Addr Edit/Del Reply

    멋들어지게 끽연하는 아가씨, 서빙하는 노인, 인형처럼 귀엽고 예쁜 꼬마 숙녀가 참으로 인상적이네요. 그리고 남의 나라지만 아타튀르크 같은 영웅이 있었기에 지금의 터키가 존재 하겠지요.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그런 영웅이 없는지 안타깝네요. 영웅커녕 욕이라도 안 먹는 지도자라도 있었으면 하네요. 해맑은 미소와 고즈넉한 풍경이 잘 버무려진 터키, 낭만과 행복만 먹고 사는 것 같아 부럽기도 하네요. 오늘도 작가님 덕분에 카페에서 멋진 끽연, 맥주 잘 마셨습니다. 설 후 한 번 알현해야겠지요. 그럼 또 ~~

    • sagang 2012/01/18 15:02  Addr Edit/Del

      아타튀르크에 대해서는 저도 똑같은 생각입니다. 왜 우리에겐 그런 인물을 주지 않았을까. 정말 욕 먹지 않는 지도자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녁 풍경 속에 행복했지만 조금 쓸쓸했던 기억도 납니다. 따지고 보면 나그네라는 게 그렇게 쓸쓸한 맛도 있어야지요. 함께 해주신 여행 고맙습니다.

  9. 홍은표 2012/01/19 13:55  Addr Edit/Del Reply

    저 석관이라는 게 정말 사람의 시신이 들어가는 건가요? 사람 하나만 들어가기에는 너무 커보여서. 리키아 문자라는 건 무척 재미있습니다. 알파벳도 있는 것 같고 한자 비슷한 것도 있네요. 모든 문자의 원조는 아닐지. 잘 보고 갑니다.

    • sagang 2012/01/19 14:05  Addr Edit/Del

      저도 석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당연히 사람의 시신이 들어갔던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렇게 큰 이유는 일종의 신분 과시 아닐까요? 우리나라도 무덤의 크기로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려는 경향이 있었으니까요. 저도 홍은표님의 말을 듣고 리키아 문자를 자세히 보니 정말 다양하군요. 저는 한글 비슷한 것도 찾았습니다^^ 모든 글자의 원조라는 말 이해가 가는데요.

  10. 최이선 2012/01/20 13:02  Addr Edit/Del Reply

    우리나라엔 저런 국부가 언제쯤 나타나 주실까요..

    • sagang 2012/01/20 13:58  Addr Edit/Del

      그러게요. 저도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능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정의로워서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 하지 않고 백성을 하늘처럼 위할 줄만 안다면...

  11. 주영신 2012/01/20 16:19  Addr Edit/Del Reply

    한나라에서 독재자라는 이름을 가졌던 자가,,
    저렇게 훌륭할 수도 있는거네요..
    국부로서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갔던 마음이 먼저였을거라,,짐작만 해봅니다..

    우르르 관광보다 소소한 여행을 좋아하지요,,저도..
    그래서 여행갈땐 스케줄을 굳이 정해놓지 않고
    대충 한두군데만 정해놓고,,
    거기에서도 간 곳이 좋으면 그저 눌러앉아버리고 싶은
    그런 여행을 좋아해요.
    바위하나라도 마음에 들면 하루종일 앉아있고픈,,그런 여행이요..
    너무 느리려나요?^^

    설 명절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다음 여행,,기다리겠습니다^^

    • sagang 2012/01/20 17:40  Addr Edit/Del

      그래요. 독재자가 다 독재자가 아니더라고요. 근본에 뭐가 깔려있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제가 늘 꿈꾸는 여행이지요. 눌러앉는 거. 문제가 있다면 저는 늘 기록에 대한 열망에 시달린다는 것. 기록을 하려면 자꾸 움직여야 하고... 근본적인 모순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여행 할겁니다.

      행복한 명절 보내세요.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12. 이성수 2012/01/22 12:04  Addr Edit/Del Reply

    좋은 답사기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통사람들의 진솔한 모습과 역사의 향기를 느끼게 해 주는 제대로의 답사기 인상깊게 읽고갑니다.
    흔히 겉만 보는 여행을 하게되는데 말이지요~~
    우리하고도 친숙한 (언어적) 공감대를 많이 가진 터키 더많은 좋은 글 기대합니다.
    (국부)케말 파샤로 학교때- 세계사에서-배웠는데~단편적이어서 역사적 배경은 기억이 안납니다.소중한 사실을 함께 엮어 주시니 생생하게 전해옵니다.
    (우연히 처음 들어와 읽었는데 계속 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2012.1.22

    • sagang 2012/01/25 10:03  Addr Edit/Del

      좋은 댓글을 남겨주셨는데, 답이 늦어 죄송합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고 뭔가 공유하는 분들을 만난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제 남은 일정 꼭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스탄불에서 끝나는 여행인데 아직 전해드릴 게 많거든요^^ 꼭 흔적 남겨주시고요. 고맙습니다.

  13. 하리마오 2012/01/25 15:20  Addr Edit/Del Reply

    인사가 늦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만사형통 건강하셔요^^

    터키, 이 말조차에서도 가슴 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무한한 동경의 마음이 입니다.
    터키 용사들의 무용담은 6.25전쟁을 통해서도 그 용맹함이 널리 알려진 바입니다.
    사람들이 용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상술도 뛰어나고 호기심도 친절함도 몸에
    배어 있어 여행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나 봅니다.
    당당하게 담배 피우는 여성도 한 미모 하시고 남자들도 이목구비가 또렷하여
    강렬한 인상을 느끼게 됩니다. 심해어 처럼 유영하시는 노인장의 달관한 눈매와
    인상에서도 터키의 오랜 역사와 자긍심이 자연스레 드러나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끽연의 천국같아 무척 부럽네요.
    저 또한 담배향을 무척 좋아해서 이른나이에 담배를 배웠다가
    집사람 투병할 때 불가피하게 담배를 끊고나니 달리 기호품이 없는 실정이 되어
    인생자체가 팍팍합니다.
    금연한지가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지금도 담배향이 좋고 담배도 피고 싶습니다.
    아무튼 터키 , 우르르 관광이 아닌 여행자로서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을 일게 하는 사강님의
    맛깔스런 연재글입니다.
    늘 고맙게 잘 읽고 있습니다.

    새해 더욱 건필하시길 기원합니다._()_

    • sagang 2012/01/25 15:37  Addr Edit/Del

      반갑습니다.
      이렇게 흔적 남겨주시니 더욱 고맙습니다.
      새해에도 소망하는 모든 일 이루시기 바랍니다.

      맞아요.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은 터키군인들이 얼마나 용감하게 싸웠는지 들어서 알고 있지요. 낯설고 낯선 땅에 와서 목숨을 걸고 싸운 그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이데올로기니 좌니 우니 모든 걸 떠나서... 여행하는 내내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담배라면 저도 할 말이 있지요. 저는 금연 7년쯤 됐는데, 끊기 전에는 누구 못지않은 줄담배였습니다. 지금도 가끔은 그 향수에 시달리지요. 담배 그 자체보다는 담배를 피우며 한숨 돌리거나, 조금은 관조하는 시간을 얻었던 그 기억 때문에. 훗날 도시를 떠나서 어딘가에 박혀 살 땐 다시 담배를 피워볼 생각입니다. 그게 사망의 길이라도, 얻는 위안이 있으니 크게 후회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알게 모르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서서 그만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14. 캔들 2012/01/26 18:40  Addr Edit/Del Reply

    또 한번의 글에 감사드리며
    첫번째는 케말과 같은 영웅이 없는 것이 아니라 흠집내기에 바쁜 우리가 영웅을
    파괴하지 않앗나 하는 반성이 먼저라는 생각이 듭니다.
    청소년과 국민들에게는 반드시 역사적인 멘토가 있어야 하는데
    없는사람을 만들지 못할지 언정 있는 사람을 흠집내고 과거사 뒤지고 하여
    영웅을 흠집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터키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틀림없이 동상을 뒤집지 않았을까하는 노파심이....
    약점이 있으면 약점이 있는대로 멘토가 될만한 인물이 부각되길 기대해 봅니다.
    담배 ㅎㅎㅎ
    조그만 상점에 들어갔다가 세분의 노인네가 피우는 담배에 너구리 소굴인줄 알았네요.
    그래도 담배를 권하며 환영하는 인심에 반했습니다.
    아~! 그리고 이국적인 눈매, 고혹적인 매력~!
    나만의 흑심이 아니엇다는 동질감~!!!! 감사~!!!

    • sagang 2012/01/27 17:48  Addr Edit/Del

      그렇기도 하겠네요. 영웅이 태어나지 않은 게 아니라 우리가 파괴했다는 시각, 어느 정도는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이 그렇지요. 영웅은 상당부분 만들어지는 것일 테니까. 그래서 더욱 부러웠습니다. 영웅을 갖고 어려울 때마다 그를 떠올리는 그 나라가.

      아, 그곳에 가셔서 담배천국을 보고 오셨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너구리 소굴을 떠올리는 풍경도 많지요. 그리고 고혹적인 매력, 저도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그립습니다^^

 

*1회부터 읽어야 재미있습니다.^^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느닷없이 등장한 백두산 금강대협곡 사진. 샤클르켄트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도시 카쉬

협곡을 빠져나오니 흠뻑 젖었던 옷이 그새 거의 말랐다. 극한상황 뒤의 안도감 때문인지 온몸이 나른하면서도 가뿐하다. 속옷을 갈아입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캐리어를 꺼내달라고 하는 것도 미안하려니와 갈아입을 곳도 마땅치 않아 포기한다. 버스가 샤클르켄트를 출발하려는 순간, 지난봄에 다녀왔던 백두산 금강대협곡이 생각난다. , 그게 왜 이제야 생각나지? 그러고 보니 금강대협곡이 샤클르켄트보다 훨씬 멋있었다. 이곳이 조금 음울해 보인다면 금강대협곡은 훨씬 밝고 웅장했다. 금강대협곡은 백두산 아래쪽에 있는 V자의 협곡으로 화산 폭발 때 만들어진 것이다. 길이는 약 15km이며 절벽의 높이는 100m~200m. 협곡에 가기 위해 원시림을 통과해야 하는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신비롭고 장엄하다. 샤클르켄트가 계곡에서 트레킹을 직접 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면 그곳은 협곡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난간만 만들어놓았다. 아찔한 절벽 아래로 흐르는 맑은 물줄기란. 더구나 내가 갔을 땐 절벽 중간 중간에 진달래까지 만개했었다. 물론 그곳은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부르는 중국 영토가 되었기 때문에, 원래 땅주인인 우리는 외국 관광객이 되어 갈 수 밖에 없다. 트레킹 코스로 개발하면 세계적인 명소가 될 텐데. 그래서 잘 지켜야 하거늘. 괜한 아쉬움으로 입맛이 쓰다.

페티예에서 카쉬로 가는 길. 산을 깎아서 도로를 만들었다.

카쉬에 내리자마자 내 마음을 빼앗았던 오래된 카펫가게.

카쉬로 가기 위해 버스는 해안도로를 달린다. 산을 깎아서 만든 길은 구절양장이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구불구불 끝이 없다. 도로의 왼쪽으로는 산, 오른쪽으로 파란 바다가 이어진다. 산과 바다가 씨줄 날줄처럼 엮여 꿈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카쉬에 도착하니 오후 231. 아직 점심 전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고풍스런 건물 하나가 눈길을 잡아당긴다. 오래된 것만 보면 자석 만난 쇠붙이처럼 끌려가는 이 고질병. 다큐팀은 부두 쪽을 향해 가는데 내 발길은 자꾸 그 고택을 향해서 간다. 그 건물이 있는 쪽을 옛날 카쉬라고 부른다고 한다. 집을 반으로 나눠 왼쪽엔 부동산사무실이 있고 오른쪽은 카펫가게가 자리를 잡았는데 마당까지 카펫을 널고 깔아놓았다. 세월을 듬뿍 담은 카펫과 오래된 건물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풍경 앞에서 한참 서성거린다. 한눈에 봐도 카쉬는 천혜의 관광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도시는 크지 않지만 뒤쪽으로 거대한 바위산이 솟아있다. 그 산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안정감과 강한 인상을 준다. 산이 품은 골짜기마다 하얀 집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는 옥색 바다와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부두에 빽빽하게 들어선 배들. 이런 풍경 때문에 사람들은 카쉬를 일러 터키 남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곳이라고 하는구나.

바다에서 바라본 카쉬. 골짜기마다 하얀 집들이 들어서 있다.

일행이 탔던 유람선.

드디어 배를 타다


카쉬는 BC 6세기에 세워진 고대도시로, 그 때 이름은 안티펠로스(Antiphellos)였다. 지리적으로 리키아 연맹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 지역의 대외 창구 역할을 했다. 항구도시로 누린 번영을 말해주듯이 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리스 양식의 극장과 도리아 양식의 무덤들이 남아있다. 카쉬는 패러글라이딩, 암벽등반, 스쿠버다이빙과 트레킹, 래프팅 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어 숱한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또한 지중해 연안 섬들을 돌아보는 보트투어의 거점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1인당 60리라 정도를 내면 아침에 출발해서 섬들을 돌아보고 오후에 돌아오는 코스다. 조금 길게 해상투어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Blue voyages를 이용하면 된다. Blue voyages란 배에서 며칠간 지내면서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해변에 중간 중간 들르는 것을 말한다. 이를 이용하면 육로로는 찾아가기 어려운 고대 리키아의 유적들을 둘러볼 수 있다. 다큐팀과 합류해보니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우리 일행도 보트투어를 한단다. 풀코스나 Blue voyages는 아니지만 근해에 나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코스가 예약돼 있단다. 야호! 철없는 아이들처럼 환호가 터진다. 저걸 못 타보고 가면 여행기가 앙꼬 없는 찐빵이 될 뻔했는데.

우리가 탔던 유람선 곁으로 지나던 다른 유람선.

유람선만 배냐? 요트도 지나간다.

우리가 탈 배는 일반적인 보트보다는 제법 크고 보드롬 해변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던 범선보다는 작다. 선미(船尾) 쪽에는 가운데에 놓인 식탁을 중심으로 열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고, 뱃머리 쪽에는 누워서 일광욕을 즐길 수 있도록 매트리스가 깔려 있다. 일광욕이라면 목을 매는 백인들이 참 좋아하게 생겼다. 선실에는 화장실과 주방이 있다. 작은 배지만 있을 건 모두 있는 셈이다. 근처에 정박된 다른 배들도 모두 고만고만한 모습이다. 배에서 일행을 맞은 사람은 40대쯤의 강건한 인상의 남자. 조금 뒤에는 선실 쪽에서 비슷한 또래의 여자가 나와서 수줍은 미소로 반긴다. 선장의 아내인 모양이다. 남자가 배의 시동을 걸자 여자가 선미로 가서 말뚝에 매어 있는 줄을 푼다. 배는 답답했다는 듯이 파란 바다를 향해 헤엄쳐 나간다. 늘 바라만 보던 바다 한 가운데로 들어서니 색다른 기분이다. 바다는 맑고 푸르다. 배가 지나가고 있는 곳의 수심이 최소 7m라고 하는데 바닥이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거짓말 좀 보태면 지나가는 물고기 눈 흘기는 모습이 보일 정도다. 지중해의 시원한 바람이 귓불과 뺨을 스치고 온 몸을 간질인다. 또 한 번 전신을 적시는 평화. 배 옆으로 하얀 돛을 단 요트들이 날치처럼 지나고 점, , 점 작은 섬들도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이 물빛을 보라. 에머럴드인들 이렇게 아름다우랴.

우리의 선장 아저씨. 물론 물고기도 굽는다. 전직은 어부.

배 끝에 이런 그릴이 마련돼 있다.

선장은 어부보다 행복할까?


카야쾨이를 돌아볼 때 이미 이야기 한 적 있지만, 터키로서는 볼 때마다 배가 아파도 한참 아플 섬들이다. 세계 1차 대전에서 괜히 독일 편을 들었다가 패전국이 된 터키.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1923년에 연합국과 맺은 로잔조약에 의해 이스탄불을 되찾는 대신 그동안 차지하고 있던 섬들을 그리스에 내줬다. 유럽에 한 발을 걸치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닭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섬을 내줬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다. 터키의 앞바다인데도 섬 근처에서는 휴대전화에 그리스의 와이파이가 잡힌다고 한다. 와이파이도 제 국적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조금 더 나가니 물은 푸르다 못해 검은 색을 띤다. 햇살을 듬뿍 머금은 물비늘이 배가 지나가는 길 옆으로 잇달아 자지러진다. 부부는 항해 중에도 분주하게 오간다. 승객들이 시원한 바람과 검푸른 바다에 흠뻑 빠져 있는 사이 아내는 주방장이 되어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선장인 남편은 선미의 그릴에서 생선을 굽는다. 투어코스의 하이라이트가 점심식사기 때문이다. 남편의 직업은 어부였는데 작년에 배를 사서 해상투어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건져 올리던 손으로 관광객이 탄 유람선을 몰고 물고기를 굽는다. 이 배는 그가 평생 키워온 꿈의 결정체일 것이다. 그렇다면 꿈을 이룬 지금 그는 행복할까?

선장의 아내이자 부선장이고 주방장까지 겸하는 그녀. 카메라를 절대 피하지 않는다.

가끔은 발로 배를 모는 서비스 묘기를 보이기도.

선장이 구워낸 도미. 얌마! 눈 깔어.

낯선 사람들과 만나 일하려니 힘들기도 하지만 즐거운 점도 있어요.” 말을 극도로 아끼는 그 대답에서 힘들기도 하지만이라는 부분에 좀 더 큰 무게가 실렸다고 생각하는 건 내 억지일까? 차라리 파도나 물고기와 씨름하는 게 낫지 낯선 이방인들을 태우고 고기를 잡던 바다를 돌고 도는 게 뭐 그리 신이 날까. 굳이 송충이와 솔잎까지 들먹일 생각은 없다. 돈을 벌기 위해 평생 꿈꾸던 것이겠지만, 난 그의 얼굴에서 보람대신 후회를 읽고 만다. 아무리 봐도 그는 선글라스를 쓰고 배를 모는 유람선 선장보다는 힘찬 몸짓으로 그물을 던지는 어부가 잘 어울릴 것 같다. 지금 굽고 있는 도미도 그가 직접 잡은 것이라고 한다. 잠시 뒤에는 아내가 주방에서 음식을 하나씩 내오기 시작한다. 소박한 밥상이다. 감자, 치즈, 샐러드, 마카로니. 그리고 생선구이. 음식 솜씨를 일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배어 있는 정성만큼은 천하진미다. 그녀 역시 어부의 아내에서 어느 날 유람선의 주방장 겸 부선장이 됐을 것이다. 식사를 하는 중에 선장의 아내는 입가에 순박한 미소를 띤 채 이방인들을 살짝살짝 훔쳐본다. 그러다 남편이 자리를 비우면 대신 배를 몰기도 한다.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생각보다 능동적으로 포즈를 취해준다. 가끔은 배를 발로 운전하는 묘기도 보여준다. 얼굴에는 신산한 날들이 고랑으로 그려져 있지만 열심히 살아온 한 여자의 자긍심도 함께 배어있다.

수영 삼매경에 빠진 젊은 친구들. 물이 얼마나 파란지 사람까지 파랗게 물들 것 같다.

배 위와 앞머리에는 일광욕을 할 수 있도록 매트리스가 깔려있다.

엄상욱 씨의 경우


지중해를 가르는 배에 비스듬히 누워 바람을 즐기는 시간, 어머니의 품처럼 편안하다. 여행자로서는 조금 과분해서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지만,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이런 호사를 누려보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식사를 마친 젊은 친구들은 언제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는지 놀란 개구리처럼 바다로 풍덩풍덩 뛰어든다. 덩치 큰 믿음 씨도 멋진 수영솜씨를 자랑한다. 내가 3년만 젊었어도. 아참, 난 수영을 못하지. . 물이 얼마나 파란지 수영하는 사람들까지 파란색으로 물들 것 같다. 몇몇 사람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물이라는 듯 물끄러미 구경만 한다. 그 중엔 바다에서 용이 단체로 승천해도 모른 척 할 사람도 있다. 바로 앞에서 몇 번 언급했던 엄상욱 씨. 그는 주변 풍경엔 아랑곳 않고 양산을 쓴 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다. 일을 할 때는 철저한 프로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자신만의 세상을 만끽하는 사람이다. 늘 양산을 쓰고 다니는 바람에,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내가 양산맨이란 별명을 하사했다. 그러고 보니 양산과 관련해서 그가 해준 들려준 얘기가 생각난다. 이스탄불에서 양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은 무조건 한국 여성으로 보면 된단다. 혼자든 단체든 차에서 내렸다 하면 양산부터 펴들기 때문에 눈에 확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은근히 흉보던 그대는 왜 우산도 아닌 양산을 그리 열심히 쓰고 다니는 거야.

이 분이 바로 양산맨 엄상욱 씨. 어디에 있든 양산과 함께 한다.

"용이 승천한들 휴대전화만 하랴"

그는 다팀의 코디네이터 자격으로 이스탄불에서 합류했다. 방송 내용에 맞는 주변 환경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코디네이터라고 하는 모양인데 스튜디오 작업만 주로 해온 내겐 조금 낯설다. 현지인 가이드인 이믿음 씨, 즉 규벤이 있으니 가이드라고 하긴 그렇고, 촬영을 좀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고용한 일종의 로드매니저 역할이다. 섭외는 주로 믿음 씨가 하고 엄상욱 씨의 일은 대부분 다큐팀 통역이다. 여행 당시 36세였으니 이제 37세가 됐다. 인물과 풍채는 훤하게 좋은데 아직 싱글. 그의 공식 직함은 FT TOUR라는 회사의 실장이다. 실질적으로는 대표지만(아주 작은 회사니 대표든 과장이든 별 차이가 없다) 실장이라는 직함을 쓴다. 회사를 차리고 처음 맡은 일이 이번 다큐팀의 코디네이터다. 그 전에는 가이드로 일했다. 터키에 정착하기 전까지는 국내 여행 한번 변변히 가본 적이 없단다. 그런데 훗날 생각해보니 핏속에 역마살이 흐르더란다. 이스탄불에 있는 친구가 놀러 오라고 해서 별 생각 없이 터키행 비행기를 탔던 게 타국살이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어쩌다 보니 눌러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친구 따라 장 구경 갔다가 장돌뱅이가 된 셈이다. 가끔 고국에 들르긴 하지만 아주 귀국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헥토르에이전시의 한국인 아가씨도 그렇고 이 엄상욱 씨도 그렇고. 그만큼 터키가 매력 있는 곳이란 얘기인지. 뭔가 핏줄을 당기는 게 있는 건지.

저 멀리 그리스 섬이 보인다.

이곳에서 배가 회항한다. 난 저 집이 무척 궁금했다. 아니 살고싶었다.

연락처를 알려드립니다

아무튼 그는 혼자 살지만 럭셔리한 생활을 한다고 자랑한다. 김치도 직접 담그고 우리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단다. 타향살이도 제대로 하려면 역시 음식 솜씨가 좋아야. 카야쾨이의 조용한 마을에서 배회로 한나절을 보낼 때, 나를 찾으러 왔던 사람이 바로 이 엄상욱 씨다. 그런데 사람의 인연이란 게 참어디에 어떤 끈으로 연결돼있을지 정말 알 수 없다.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와 나는 무관한 관계가 아니었다. 지금은 한국으로 들어와 살지만, 가까운 내 친구 하나가 그리스에서 여행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와 잘 아는 사이라는 것이다. 엄상욱 씨의 말에 따르면 내 친구가 여행사 대표로 터키 관광시장을 개척할 당시, 자신은 가이드로 일했다는 것이다. 하긴 그리스와 터키는 보통 하나의 관광코스로 묶기 때문에 만나지 않을 방법이 없을 것이다. 어디 가서, 아는 사람 없다고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된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아무튼 이 엄상욱 씨는 무척 성실한 데다 터키어 실력도 뛰어나보였다. 다음에 전문적으로 터키를 탐구할 일이 있으면 꼭 이 친구와 함께 일을 하고 싶다. 혹시 독자들 중에 터키에 가실 분이 있으면, 가이드가 필요한 여행이라면, 슬그머니 비밀댓글로 연락하시길.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전액 무료로 팡팡!!!

절벽 위에 보이는 작은 구멍이 리키아 무덤이다. 저건 또 어떻게 만들었을까.

바다 위에서 보내는 꿈같은 시간은 길지 않다.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 절벽에서 다시 리키아시대의 무덤들을 본다. 먼저 아민타스 석굴무덤에서도 그랬듯이 저 절벽에 어떻게 저런 무덤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쉽사리 눈을 떼지 못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몸을 던져 저 무덤 하나를 만들었을까. 돌아오는 길에 믿음 씨가 터키와 그리스 간의 전설을 하나 얘기해준다. 지금은 그리스 땅으로 돼 있는 코스라는 섬이 있다고 한다. 우리말로는 ()’이란 뜻인데, 터키 땅의 카쉬는 눈썹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원래 하나였던 눈과 눈썹이 헤어져 있는 셈이다. 배는 나갈 때보다 더 빨리 돌아와 일행을 부두에 내려놓는다. 이제부터는 눈썹인 카쉬의 구시가지를 본격적으로 탐색할 시간. 낯선 땅은 늘 설렘을 먼저 선물한다.


추천(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sagang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유명남 2012/01/09 09:39  Addr Edit/Del Reply

    새해 새로운 기분으로 수정같이 맑고 푸른 바다를 품고 밟고 만지니, 바로 여기가 천국이네요. 우리 동해보다 더 청정해 보입니다. 거기다가 고기까지? 무릉도원에서 산해진미를 즐기는 착각을 갖게 하네요. 가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네요. 그 선장 부부, 바다생활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직업으로 한다면 좀 식상할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매우 아름다워보입니다. 왜 꼭 저 높은 절벽에다 무덤을 만들었는지 궁금하네요. 뭐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작가님 덕분에 바다로 협곡으로 흑룡해 기념여행 잘 다녀왔습니다. 시방 학교 갈 시간이네요. 좀 아쉽네요. 그럼 또 ....

    • sagang 2012/01/09 14:17  Addr Edit/Del

      바다가 정말 맑아요.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풍덩 빠져들고 싶어지지요. 우리나라 동해안도 맑지만 그보다 훨씬. 배를 타고 그 바다를 헤쳐나가다보면 아, 천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구나. 시 한 수쯤은 저절로 나오지요.

      선장 부부를 제가 바라본 시각으로 그렸지만 그래도 좋은 곳에서 일하니 좋은 점도 많겠지요. 그들의 순박하던 미소가 그립습니다. 함께 하는 여행 고맙습니다.

  2. 김현수 2012/01/09 13:04  Addr Edit/Del Reply

    참 부러움이 절로 드는 보트여행이네요.
    일광욕을 빙자한 낮잠 한잠 늘어지게 잤으면...

    • sagang 2012/01/09 14:19  Addr Edit/Del

      예, 저는 잠까지 자보지는 못했지만 정말 한숨 자면 행복하겠더라고요. 언젠가 지중해에서 낮잠 한번 자보는 꿈을 꾸겠습니다.

  3. 2012/01/09 16:56  Addr Edit/Del Reply

    오늘의 사진들은 더욱 눈길을 끄네요,
    정말 그림같은 풍경들입니다... 보고만 있어도 황홀해져요..
    (고양이과?라서 저도 헤엄은 좀...거리가 멀어도 그래도! )
    저 푸른 바닷물에 풍덩 하고 싶어질만큼 예~쁘네요
    새로운 지역 카쉬의 이야기도 기대해봅니다.

    • sagang 2012/01/09 17:27  Addr Edit/Del

      안타까운 건, 사진보다 현실이 더욱 아름답다는 것.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저는 늘 작어지고는 합니다. 물론 제 카메라도요^^ 정말 풍덩 빠져들고 싶었던 곳입니다. 카쉬도 함께 가시지요.

  4. 조상구 2012/01/10 08:18  Addr Edit/Del Reply

    전직이 어부였다는 선장님은 아직도 순박한 미소를 지니셨네요. 어부의 아내였던 부선장님도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고. 저분들의 얼굴에 늘 미소가 함께 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호강하셨습니다. 저도 지중해에 간다면 꼭 배를 타봐야겠습니다.

    • sagang 2012/01/10 09:15  Addr Edit/Del

      선장님도 그렇고 그분의 부인도 그렇고 참 순박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마음을 안 다치고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중해 선상투어 해볼만 합니다. 저는 약식이었지만 꼭 경험해보세요^^

  5. 샬롬 2012/01/10 01:01  Addr Edit/Del Reply

    선생님,새해 인사가 늦었습니다.
    해가 바뀌자마자 너무나 바쁜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이제서야 한 숨 돌리며 선생님의 여행기를 차분히 감상합니다. 13회 샤클르켄트의 협곡 트레킹은 스릴 넘치는 이야기였습니다. 일행들의 중도 포기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곳을 탐험하고자 혼자서 깊숙한곳까지 들어가셨던 열정과, 물속에 넘어지면서도 카메라를 보호하려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프로는 다르다는걸 새삼 느꼈습니다. 수첩을 잃어버리고 되찾는 과정에서는 정말 숨 죽여 지켜 보았네요. 수첩을 찾으셨다는 말씀에 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카쉬의 하얀집들'은 보드룸의 '언덕위의 하얀집들'을 연상케 합니다. 카쉬가 리키아연맹에 속한 도시라 그런지 여기서도 절벽에 있는 리키아무덤을 보게 되는군요. 지금 보면서도 절벽에다 어떻게 저런 무덤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카쉬의 바다가 유난히도 파랗습니다.선생님 말씀처럼 사람까지 파랗게 물들일것같은 바다색입니다. 유람선의 선장 부부의 모습또한, 마치 푸른 바다빛을 닮은듯 선하게 보이며 쿨하게 보입니다.^^ 유람선의 일광욕 매트리스는 정말 부러운 장면입니다. 여건만 된다면 그곳에서 유람선을 타고 지중해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가슴속에 전해오는 잔잔한 평화를 느끼고 싶네요.^^ 일로 인해 지친 감성을 선생님의 여행기를 감상하며, 새로이 충전하고 힘을 얻어갑니다.^^
    선생님께 감사드리구요, 한 주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 sagang 2012/01/10 09:19  Addr Edit/Del

      바쁘셨군요. 연초에 특별히 바쁜 분들도 많지요. 그나마 제 여행기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다니 고맙습니다.

      고대 리키아지역을 다니는 내내 본 게 높은 곳의 무덤인데, 또 내내 가슴이 아팠습니다. 물론 만든 사람들의 희생을 생각해서였지요. 어제도 자식에게 그랬습니다. 나 죽으면 절대 무덤을 만들지 말라고. 뭐 자주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정말 죽은 뒤까지 신세지고 싶지 않은 심정입니다.

      저 역시 유람선에 있던 매트리스가 삼삼합니다. 언젠가 여유있게 지중해를 간다면 저곳에서 한숨 자고 싶습니다. 그런 팔자가 될런지는 모르지만,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바쁜 중에도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긴 여행 함께 하시지요^^

  6. mowol 2012/01/10 11:24  Addr Edit/Del Reply

    <물이 푸르다 못해 검은 색을 띤다. 햇살을 듬뿍 먹은 물비늘이 배가 지나가는 길옆으로 잇달아 자지러진다.> 정말 최상의 묘사입니다. 그냥 글만 읽어도 그 이미지 눈에 또렷이 다가와 물결칩니다. 선장부부가 구워주는 생선은 맛이 있었습니까. 실크자락처럼 휘감기는 바람결에 술잔은 기울이셨습니까. 아니 그냥 바람결에 몸 맡겨 취하셨습니까.
    저 멀리 벼랑 한가운데 작은 문 하나. 그 리키아 무덤을 바라보며 전, '아 참 따뜻하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단순한 여행담이 아닌 여행문학을 쓰시고 계시는 사강님. 그 아름다운 마음 늘 그립습니다.

    • sagang 2012/01/10 12:23  Addr Edit/Del

      저 고기가 도미종류인데요, 선장님이 직접 잡은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맛은 썩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뭐랄까. 좀 덤덤하달까... 그래도 애써 구운 정성을 생각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음식 맛의 반은 정성이니까요. 술은 맛도 못봤습니다. 사실 배 위에서는 밥보다 술인데. 술을 즐기는 사람은 저 하나뿐이니 달라고 우길 수도 없더라고요. 다음부터는 술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만 여행할 계획입니다.

      선생님의 격려를 받고보니 글 쓰는 맛이 납니다. 더욱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저도 선생님이 늘 뵙고 싶습니다.

  7. 금나나 2012/01/10 13:11  Addr Edit/Del Reply

    와우, 선장 와이프분의 조종술(발로 하시니 조족술이라 해야하나요?) 대단하시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sagang 2012/01/10 13:35  Addr Edit/Del

      그러게요. 거의 반은 발로 하더라고요. 보여주려고 그러는 것인지 평소에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었어요.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고맙습니다.

  8. 전경미 2012/01/10 13:41  Addr Edit/Del Reply

    카쉬. 그야말로 천혜의 관광 도시네요. 에메랄드 빛 바다, 새파란 바다 모습에 마음이 풍덩 빠졌습니다. 바다 위에서 정말 꿈같은 시간 보내셨네요. 술까지 한잔하셨으면 더욱 꿈같으셨을 텐데요. 아쉽네요. ^^
    그림 같은 절벽과 파란 하늘과 지중해 바다, 그 속의 하얀색의 집들! 정말 그림 같아요.
    그리스나 터키나 절벽 위의 하얀 집이 유독 많은 거 같은데 그런 아름다운 조화를 생각한 것일까요?
    어부였던 선장님과 발로 배를 모는 모습이 인상적인 부선장님? 부부 이야기, 양산맨 엄상욱씨 이야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카쉬의 다음 이야기도 설렘으로 기다리겠습니다. ^^

    • sagang 2012/01/10 14:08  Addr Edit/Del

      맞아요. 천혜의 관광도시라는 게 바로 이런 곳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 별로 투자를 안해도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 바로 카쉬 같은 곳이지요. 하얀집들은 열기를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워낙 햇볕이 강한 곳이니까. 저도 처음엔 미적 관점에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렇진 않더라고요.

      이번 여행도 함께 해줘서 고맙습니다.

  9. 정암 2012/01/10 14:40  Addr Edit/Del Reply


    오늘도 멋진 풍광 잘 감상하였습니다.
    정말 여유있게 즐겼으면 하는 여행기네요 오늘은.
    저 남자분의 양산은 좀 많이 낯설긴 합니다만...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저런거라면 우산보단 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카쉬도 참 매력적인 곳이네요. 즐거운 여행기 감사합니다.

    • sagang 2012/01/10 14:53  Addr Edit/Del

      저도 '남자의 양산'은 조금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자꾸 보니 뭐 괜찮아 보이더라고요. 하긴 지중해의 햇볕이 워낙 강하긴 해요. 우리나라도 남자들이 양산을 쓰고 다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지중해 투어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0. 송경아 2012/01/10 14:43  Addr Edit/Del Reply

    지중해가서 살고 싶습니다. 레알 T.T

    • sagang 2012/01/10 15:47  Addr Edit/Del

      저도요^^ 헌데 영원히 살라고 하면 전 안 갈 것 같아요. 우리나라 무척 사랑하거든요.

  11. 주영신 2012/01/10 15:16  Addr Edit/Del Reply

    하얀 천을 담그면,,금새 파~랗게 물이 들어버릴것 같네요..
    수영하는 사람들도 스머프가 될것 같구요^^

    저는 늘 바다와 같이 살아서 다른곳의 바다를 봐도 별 감흥을 못느끼는데,,
    지중해바다는 역시 뭔가 달라도 한참 다르네요..
    인상적인 바다빛깔을 머금고,,카쉬를 기다리고 있을께요^^

    • sagang 2012/01/10 15:54  Addr Edit/Del

      바다는 정말 부러웠어요. 그 색감, 말로나 사진으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아름답거든요. 가슴까지 파란색으로 물들어버릴 것 같은 그 풍경. 저는 반밖에 전해드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여행 중에 가장 편안했던 순간을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12. 캔들 2012/01/10 15:18  Addr Edit/Del Reply

    역시 오늘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저의 눈과 마음을 씻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할 일이 밀려도 새글이 뜨면
    마음을 순화하고자 글부턴 먼저 읽습니다.
    지중해는 우리 해안가처럼 태풍이, 바람이 세도 파도가 심하지 않을까요?
    지중해를 너무 무시했나?
    해안가 집들이 태풍에 위험하리만큼 바다 가까이 있고 너무 멋있어어요.
    감사X100 ~!!!

    • sagang 2012/01/10 15:56  Addr Edit/Del

      고맙습니다. 할 일을 제쳐놓고까지 제 글을 봐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요.

      제가 그곳에 있을 때는, 바다가 으르렁거리는 건 한번도 못봤습니다. 말 그대로 육지가 감싸고 있는 바다라서인지 파도 자체를 구경하기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어찌 그곳이라고 바람이 없겠습니까? 어느 날인가는 화도 내겠지요.

      함께 해주신 여행 감사합니다.

  13. 로사 2012/01/11 05:54  Addr Edit/Del Reply

    선상의 일광욕을 위한 매트와 선장 아내의 작가님 팀만을 위한 요리와 선장님이 직접 잡은 노릇한 도미구이는 여행이 말해주는 '벗어난 현실'의 물질적 증거 같다는 느낌이 문득 듭니다. 아마 바다 위에 떠서 남이 만들어주는 요리 먹으며 햇빛을 즐길 일을 만난다는 것이 어려운 현실을 살고있기 때문이겠지요. 맛은 별로 없었다고 하셨지만 저 두툼한 생선구이를 보니 약간 벗어난 현실 속에서 조금은 편안히 계셨을 모습이 떠올라 구수한 비린내가 맡는 듯이 즐겁습니다.

    바라보다가 눈동자도 푸르게 물들 것 같은 바다군요. 지중해의 물빛이 참말 한국 바다와는 다른지 당장 달려가 만나보고 싶을 지경입니다. 어떻게 바다 색깔이 저럴 수 가 있는지 말예요. 맹하게 말 잘 믿는 저한테는 물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눈 흘기는 모습이 보일 것 같다는 말이 참말 같게 느껴집니다. 표현은 또 얼마나 재미가 있는지 말입니다. ^^

    돌아서면 아는 사람과 연결된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것이 터키에서 까지 밝혀지는 진실이군요. 그러니 사는 모습을 조심히 하지 않을 수 없음입니다. 해외에 나가 한국에서는 누려보지 못한 것들을 '완전한 벗어남'으로 누리며 지내다가 다시 조신하게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처럼 글로벌한 시대에는 그마저도 조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 땅이나 페이스북 같은 것으로 연결이 되어있으니 더더욱 그러하구요. 그곳에서 아는 사람과 연관된 분을 만난 것은 참 신기합니다. 작가님께서 아는 분이 많아 그럴 수 도 있구요. ^^

    카쉬를 비롯한 해안가의 마을이 낯익습니다. 작가님의 여행기에서 만나는 터키는 한국의 모습과 많은 차이가 나지않아서 항상 가까운 이웃의 느낌으로 다가섭니다. 생긴 것은 완전히 다르지만 그들의 사고방식도 우리와 참 많이 닮아있는 것 같구요. 꿈을 이룬 선장의 이야기 부분에서 잠시 멈춰 생각에 잠겨 보았습니다.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또 한 가지가 낯선 이들과의 만남에서 맞닥뜨리는 삶에 대한 고찰이겠지요. 저도 꿈을 이룬 그가 행복하기를 바래봅니다.

    이번 여행기도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남은 한 주 건강히 잘 지내시고 다음 주 월요일에 만날 이야기를 기대해 봅니다. :)

    • sagang 2012/01/11 09:47  Addr Edit/Del

      도미가 썩 맛있지 않았다는 건, 다른 맛있는 게 많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황홀한 물빛과 비단처럼 뺨을 스치는 바람, 적절한 피로감... 이런 것들이 입으로 먹는 것보다 더 맛있었겠지요. 모처럼 누리는 육체적 평화(여행 중에도 남보다 좀 더 많이 걷고 많이 보기 위해 몸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앞에서 송구했던 기억까지 납니다. 배 위에서야 걷고 뛰고 싶어도 앉아서 시간을 즐길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요. 인연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 계기가 엄상욱 씨를 만나고서였는데요. 익명에 숨어 있을 기회는 자꾸 줄어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조신하게 살아야하는 게 아닌지. 그래도 머나먼 이국 땅에서 나와 연결된 끈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참 반가운 일이지요. 세상에 고맙지 않은 게 없습니다.

      아직도 많이 남은 여행길, 함께한다는 생각으로도 든든합니다. 다음 주 뵙겠습니다.

  14. Min 2012/01/25 06:52  Addr Edit/Del Reply

    우연히 들어오게된 블로그에서 터키 여행을 추억할 수 있는 글을 읽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1편부터 정주행했습니다. 이번화를 보면서 올림푸스에서 즐겼던 하루 동안의 보트여행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30리라에 정말 맛있었던 점심이 포함된 보트투어는 상상이상이었어요. 스노쿨링 등등 아아 글을 읽으니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꿈틀꿈틀 아마 대학졸업후에는 1년에 한번씩 터키여행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 이스탄불과 올림푸스밖에 다녀오지 않아서 아름다운 터키를 한껏 더 즐기고 싶어요.

    • sagang 2012/01/25 09:59  Addr Edit/Del

      1편부터 읽어주셨다니 고맙습니다. 터키에 다녀오셨다니 동지를 만난 기분입니다^^ 올림푸스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저는 못 들렀습니다. 다음에 기회 있으면 반드시 들러보겠습니다.

      대학생이시군요. 1년에 한번씩 터키여행을 하시겠다니, 푹 빠지신 게 틀림없습니다. 정말 갈곳은 무궁무진한 곳이니까, 그 꿈 이뤄지기 바랍니다. 자주 흔적 남겨주세요. 고맙습니다.

 

*1회부터 읽어야 재미있습니다.^^ 열심히 물어보고 공부했지만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샤클르켄트 협곡의 바위들. 저 틈으로 길이 있다.

멀리서 본 협곡. 두 개의 산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산이 갈라져 협곡이 생겼다.

 

샤클르켄트 계곡으로

페티예에서 카쉬(Kaş)로 가는 길에는 트레킹의 명소 샤클르켄트(Saklikent) 계곡이 있다. 도시를 탈출한 버스는 신나게 시골길을 달린다. 버스를 운전하는 하산도 한적한 도로로 나오니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다. 휘파람이라도 나올 것처럼 밝은 표정이다. 하산은 결혼을 몇 달 앞둔 예비신랑이다. 운전을 하지 않을 때는 늘 휴대전화를 끼고 산다. 이스탄불에 있는 약혼녀와 밀어를 속삭이는 것이다. 믿음 씨는 그런 하산을 자꾸 놀린다. “너 그러다가 나중에 큰 문제 생긴다여행객을 태우고 며칠씩 돌아다니다 보면 아내와 떨어져 있는 날이 많을 텐데, 결혼한 뒤에도 지금처럼 전화를 하지 않으면 바가지를 긁힐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하산은 그런 말에 꿈쩍도 않고 틈만 나면 애인과 통화를 한다. 사람에게 적절치 않은 표현일지 몰라도, 이 청년은 갓 잡아 올린 꽁치처럼 날렵하고 싱싱하다. 성격도 깔끔해서 늘 하얀 셔츠를 입고 차도 먼지 하나 없이 청소해 놓는다. 늦은 저녁에 일행을 내려주고 슬그머니 사라졌다가 아침에 약속시간이 되면 정확히 버스를 대기시킨다. 운전사들이 먹고 자는 숙소가 따로 있는 것 같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사람들을 태우고 긴 여행을 하다보면 불편하거나 불쾌할 일도 생길 텐데 한 번도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없다. 어느 집 규수인지 시집 한 번 잘 가는 셈이다.

협곡에 들어가기 전 상가. 냇물이 제법 많이 흐른다.

협곡으로 들어가는 다리. 저곳은 수심이 무척 깊다.

길 옆에는 올리브나무와 옥수수밭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곳곳에서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관광입국을 실현하기 위해 온 나라에 삽을 들이댄 것 같다. 그래도 제발 마구잡이 개발은 하지 말기를. 자연의 선물은 한번 망가뜨리면 억만금으로도 되사기 어려운 법이니. 집집마다 심은 석류나무들이 농익은 여인네의 가슴 같은 탐스런 열매를 매달고 있다. 조금 더 달리자 드디어 샤클르켄트. 페티예에서 남동쪽으로 약 55km 떨어진 곳이다. 이곳은 트레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페티예 여행자들이 꼭 들러 가는 코스기도 하다. 샤클르켄트 협곡은 황소처럼 길게 누운 타우르스 산맥이 중간에 뚝 끊어지면서 생겨났다. 마치 누가 거대한 칼로 내리친 것 같다. 우리나라 같으면 전설이나 신화 몇 개쯤은 품고 있을 법하다. ‘옛날에 옛날에 하늘에서 큰 칼을 가진 장군이 내려와 '어느 날 천둥 번개가 치더니 산이 쫙 갈라지면서 그 자리에 알 하나가…' 하지만 그런 전설이나 신화를 얘기하는 사람도 써놓은 곳도 없다. 모르긴 몰라도 옛날 리키아인들이나 그리스인들이 살던 시절에는 분명 전설이 입을 타고 전해졌을 것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튀르크인들이 들어와 살다 보니 전설조차 땅속에 묻혀버린 게 아닐까. 낯선 땅에 정착해서 삶터를 일구는 사람들에게 남의 전설 보다는 한 끼의 밥에 더 관심이 갈 수도 있을 테니.

깊은 곳은 물이 퍼렇지만 우윳빛이 섞여있다.

협곡으로 들어가다

계곡에서 나온 물은 인근의 큰 하천인 에센강으로 흘러들어간다. 협곡의 길이는 총 18km. 수량은 계절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갈수기인 여름에는 물이 거의 없고 가을부터 불어나기 시작해서 많을 때는 사람의 가슴 높이까지 올라온다. 그래서 수량이 많을 때나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없을 때는 혼자 들어가지 않는 게 좋다는 권고도 한다. 잘 알다시피, 계곡 트레킹은 물속을 걷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물에 젖어도 상관없는 옷을 입어야 한다. 춥지 않은 계절엔 짧은 반바지가 좋다. 신발은 미끄럼 방지 처리가 된 샌들이 좋은데, 만약 준비가 안됐으면 근처 가게나 식당에서 유료로 빌릴 수도 있다. 나는 그냥 긴 바지 등산복에 여행 내내 신고 다닌 간이샌들을 신고 들어가기로 한다. 엄상욱 씨는 그런 복장으로는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싸구려 샌들임을 한눈에 알아보는 눈치란) 고개를 흔들지만, 무식과 깡다구로 뭉쳐진 나는 그냥 한 귀로 흘리고 만다. 정 안되면 맨발로 걸으면 되지. 여름의 끝인데도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은 수량이 제법 많고 우유처럼 뿌옇다. 석회질이 많이 섞여서 그런 게 아닐까. 저런 물은 미끄럽기 쉬운데. 그래도 나는 도전을 멈추지 않을 거야.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전의를 불태워본다.

곳곳에서 물이 솟아오른다.

저 다리를 내려서면 본격적인 트레킹 코스가 시작된다.

이곳도 예외 없이 입장료를 받는다.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절벽 옆으로 나무다리가 이어진다. 협곡으로 들어가는 사람, 트레킹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이 연신 엇갈린다. 조금 더 올라가니 매점이 나온다. 거길 지나자 냇물이 기세 좋게 흐른다. 저 내를 건너면서 트레킹이 시작되는 것이다. 수량은 걱정할 정도로 많지는 않다. 입구에는가이드 혹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협곡에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판이 붙어있지만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라고 신경 쓸 필요는 없지. 바지를 둥둥 걷어붙이고 물에 발을 살짝 넣어보니 냉기가 짜르르 흐른다. 온 몸의 세포들이 움찔, 아우성친다. 하지만 물이 차다고 돌아설 수는 없는 일. 저벅저벅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느닷없이 청년 하나가 나타나더니 뒤를 따라온다. 딱 보니 동네청년이다. 다른 사람들, 특히 부유해 보이는 유럽인도 많은데 하필 왜 나를 따라오지? 그가 이것저것 말을 붙이기 시작한다. 약간의 무안과 약간의 뻔뻔함을 적절히 버무린 미소도 가끔 버무려 넣는다. 영어도 제법 한다. “100m쯤 올라가면 폭포가 있는데 풍경이 기가 막히다” “그런데, 그 카메라는 얼마냐?” 여보게 청년, 나도 자네처럼 관광지에서 자랐다네. 거기서 세상의 쓴 맛을 배운 대신 함부로 호주머니를 열지 않는 법도 알게 되었지. 선수끼리는 이러는 게 아니네.

 

트레킹의 시작. 저 물을 건너는 게 첫 시험이다.

나를 따라온 동네 청년

청년은 관광객을 안내해주고 푼돈을 챙기는 걸 취미 겸 업으로 하는 게 틀림없다. 특별히 안내가 필요한 곳도 아닌데 장사가 될까? 아무튼 자네는 사람 잘못 골랐네 그려. 선구안을 좀 길러야지. 돈 많고 연약해 보이는 사람을 잡아야지, 하필 나처럼 젊고(?) 튼튼한데다 돈까지 없는 최악의 카드를 선택하다니. 이번에도 카메라가 문제였을 것이다. 이렇게 큰 카메라를 가졌으니 푼돈 정도야 쉽사리 내놓지 않으랴, 라고 혼자 결론을 내린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건 그대의 선택일 뿐. 난 그가 뭐라고 하던 묵묵부답으로 걸음을 재게 놀린다. 물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 더 차고 더 탁하고 더 깊다. 느닷없는 냉기는 극도의 긴장감을 불러낸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조금씩 깊어지니까 약간의 공포감마저 인다. 하지만 맞은편에 닿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왜 위험해보이기까지 하는 이곳에 다리를 놓지 않을까. 수량 등을 감안한 물리적 이유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처음에 쉽지 않은 고비를 넘기게 해서 경각심을 북돋워줄 생각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어차피 버릴 옷, 처음부터 젖게 만들어 옷 따위에 연연하지 않게 하려 했는지도.

우윳빛 물이 쏟아지는 계곡. 이 곳을 지나가면 검은 빛 물이 흐른다.

아무튼 수량이 많을 때나 비가 오는 날은 함부로 뛰어들 건 아닌 것 같다. 트레킹도 좋지만 목숨을 걸 필요야 있나. 건너편에 도착할 때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따라오던 청년은, 내가 반응이 없자 몇 번 아쉬운 눈초리를 던지더니 쩝쩝 입맛을 다시며 돌아선다. 몇 리라라도 쥐어줄 걸 그랬나? 하지만 아무 곳에서나 호주머니를 열면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지갑은 편하지 않다. 지금의 내가 그런 처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난한 여행자에겐 동정심마저도 사치가 될 때가 많다. 유료화장실을 안 가려고 소변조차 참는 게 여행자다. 동정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특이한 건 터키를 돌아다니는 내내 거지를 못 봤다는 것이다. 아이들이나 장애인도 저울로 몸무게를 재주고 돈을 받거나 엽서라도 들고 나와 팔지, 그냥 적선해 달라는 경우는 없었다. 우연히 내 눈에만 띄지 않은 걸까. 아니면 거지가 없을 정도로 나누는 사회가 된 걸까. 청년도 가버렸겠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협곡탐험이다. 처음 깊은 물을 건너고 나니 그 다음엔 수월한 코스가 이어진다. 첨벙첨벙, 어린아이처럼 물길을 헤치면서 걸어가다 보니 양쪽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이어진다. 빛의 방향을 따라 고개를 들어본다. 황금색 햇살이 연신 쏟아져 내리는데 그 끝은 어디쯤인지 아득하다.

하늘에서는 황금빛 햇살이 쏟아져들어온다.

위기의 순간을 맞다

바닥엔 시커먼 진흙이 깔려있어서 물은 탄광촌의 그것처럼 시커멓다. 물과 대조적으로 바위는 하얀 빛으로 반짝거린다. 하지만 바위 군데군데에 낙서를 해놓거나 진흙 손도장을 찍어 놔서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그냥 보기만 하면 어디 부러지나? 그 중에 한자로 써놓은 낙서가 있길래, 혹시나 해서 가까이 가 봤더니 다행히 간자체가 섞였다. 먼 이국 땅에 가죽 대신 이름을 남기고 싶었던 중국인이 다녀간 모양이다. 제발 세계 어느 곳의 유물에서도 한글로 된 이름 석 자는 볼 수 없기를. 앞으로 나갈수록 오가는 사람이 적어진다. 처음에는 다큐팀 카메라맨도 따라오는 것 같았는데 언제부턴가 사라져버렸다. 꽤 오래 함께 걷던 K도 중간에 돌아갔다. 이젠 우락부락한 청년들만 씩씩한 걸음으로 오고간다. 으슥한 곳을 지날 땐 은근히 겁이 나기도 한다. 홀로 걷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저 젊은이들 중에 누군가가 안 좋은 마음을 갖고 달려들면 나는 속수무책이다. 빈 몸으로도 힘겨운 길을 카메라 장비가 든 배낭을 메고 땀에 절어 걸어가는 자그마한 동양인 사내. 한번 불안한 생각이 드니까 모든 사람들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혹시 다른 마음을 먹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얼른 시선을 비킨다. , 인간이란 존재가 이렇게 허약하구나. 두려움은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것이거늘.

본격적으로 트레킹 코스에 접어들었다. 검은 물이 흐른다.

나름대로 수양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궁핍한 처지가 되니 의심부터 하려드는 내 자신이 한심하다. 저 사람들이 내 마음을 읽는다면 얼마나 화가 나고 억울할까. 길이 많이 험해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간에 돌아선다. 나도 진퇴를 놓고 잠시 고민하다가 조금 더 가보기로 한다. 어느 책에선가 샤클르켄트 협곡을 끝까지 가봤다는 한국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문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말 때문에 더욱 오기가 생긴 건지도 모른다. 물론 나 역시 18km를 끝까지 가볼 수는 없을 것이다. 시간상으로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는 데까지는 가봐야 할 것 아닌가. 사진을 한 장이라도 더 찍겠다는 욕심도 한몫을 했다. 가도 가도 비슷한 길의 연속이다. 위기는 아무런 징후도 없이 느닷없이 찾아왔다. 한 순간 몸이 허청, 기울더니 깊은 웅덩이에 쑥 빠지고 만다. 물이 탁하기 때문에 깊고 얕은 걸 구분할 수 없던 게 화근이었다. 급하게 균형을 잡는 바람에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옷은 몽땅 젖었다. 속옷까지 물들이는 흙탕물의 축축한 감촉. 그 와중에도 카메라를 보호하려는 본능은 두 손은 높이 치켜들게 만들었다. 허리 가까이까지 차는 물속에서 카메라를 들고 허둥대는 사내. 내가 생각해도 참 우스운 꼴이다.

하얀 바위에 써놓은 낙서와 손 도장. 한자 이름이 눈에 띈다.

여음곡(女陰谷)’에서 돌아서다

길이 이곳밖에 없을까? 웅덩이를 빠져나와 차분하게 살펴보니 바위 뒤쪽으로 샛길이 있다. 그럼 그렇지. 마음이 흐트러지니 쓸데없이 허둥대다 길을 놓쳐버린 것이다. 이왕 옷도 버렸는데 조금 더 가보기로 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절경을 구경할지 알아? 혹시나 혹시나여태껏 걸어온 인생길과 지금 걸어가는 이 길이 너무도 닮았다. 길은 갈수록 험해진다. 바위를 기어오르고 물을 피해 돌아가다 또 한 번 아뜩한 일이 생긴다. 뭔가 적으려고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수첩이 사려졌다. 조금 전까지 메모를 하고 꽂아두었는데.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여행 내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수첩. 내 여행의 전부가 사라진 것이다. 어디쯤에서 흘린 걸까? 물에 떠내려갔거나 진흙에 묻혀버린 건 아닐까? 다스리기 힘든 공포가 머리를 타고 내려와 등골을 지나 발끝까지 훑는다. 세상이 다 아득하다. 만약 찾지 못한다면 지난 며칠이 고스란히 지워지는 것이다. 기록하는 걸 낙으로 삼는 자가 기록할 기회를 잃는다는 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라는 걸 절감한다. 차라리 지갑을 잊어버리는 게 낫지.

마지막으로 돌아서며 '여음곡'이라 이름 붙여준 거대한 바위.

허둥지둥 온 길을 되짚어 내려간다. 아무리 둘러봐도 수첩은 없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 조급해도 안 된다. 높은 바위를 낑낑거리며 넘어왔던 기억이 나서 그곳을 다시 힘들게 올라간다. ! 있다. 내 수첩이 그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 잃어버렸던 가족이라도 만난 듯 부둥켜안는다. 남들이 보면 우습겠지만, 내겐 둘도 없는 환희의 순간이다. 온 몸을 팽팽하게 당기던 긴장이 스르르 빠져나간다. 이젠 정말 내려가야겠다. 시간도 꽤 흘렀고, 무엇보다 온 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또 미친병이 발동한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안 될까? 마음 약한 나는, 고집스런 또 다른 나에게 두 손을 들고 만다. 없는 힘까지 끌어내어 다시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번엔 수첩을 꼭꼭 여며둔다. 그렇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올라가다 거대한 바위 앞에서 멈춘다. 바위 사이로 좁은 틈이 있긴 한데, 아무리 봐도 그 사이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바위들로 구성된 골짜기의 구조가 참 특이하게 생겼다.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내가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이 골짜기는 오늘부터 여음곡(女陰谷)’이야. 그럴 듯하다. 이젠 정말 돌아가야 할 모양이다. 내려오는 길은 수월하다. 거의 다 내려올 무렵 국적을 짐작하기 어려운 일행과 만난다. 초로의 한 사내가 내 얼굴을 유심하게 보더니 느닷없이 곤니찌와를 외친다. 곤니찌와? 이 시간에 무슨 곤니찌와야, 그리고 난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고생 끝이라 그랬을까, 돌아오는 길은 이렇게 평탄했다.

코리언이란 말에 더욱 반가운 표정이 된 이 아저씨, “아프다, 아프다를 연발한다. 아프다고? 당신 아픈 걸 왜 내게 말해. 나도 여기저기 아파 죽겠거든. 그런데 얼굴엔 아픈 기색이 조금도 없다. 가만, 아프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 ‘예쁘다구나. 어디선가 한국인을 만나 한마디 배운 말이 예쁘다인데, 그걸 아프다로 기억한 모양이었다. 이런 때 그냥 지나가면 안 되지. 저만치 가는 사람을 불러 세워 예쁘다라는 발음을 확실히 교육시킨다. 그리고 아저씨. 그건 인사가 아니라 ‘pretty’‘beautiful’이란 뜻으로 쓰는 말이거든요. 한국식 인사는 안녕하세요라고 해요. 앞으로 곤니찌와 같은 천박한 말은 쓰지 말고 안녕하세요라는 우아한 말만 쓰세요. 알았지요? 에구, 오지랖도 넓지.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해 뛰다시피 협곡을 빠져나온다. 출발지점까지 오니 일행들이 음료수를 마시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함께 걷다가 돌아간 K를 빼고는 협곡을 제대로 들어간 사람이 없단다. 난 다들 따라오는 줄 알았지. 그렇다면 뭐 하러 여기까지 왔담.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어쩌랴. 어차피 홀로 걷는 길. 아이스크림 하나 얻어먹고 섭섭했던 마음을 싹 지워버린다. 이래봬도 난, 당신들이 못 본 거 다 보고 온 사람이야.



추천(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sagang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유명남 2012/01/02 16:33  Addr Edit/Del Reply

    와 ~ 작년부터 시작한 터키여행이 벌써 새해를 맞았네요. 나는 뭐 워낙 계곡을 좋아해서? 이렇게 그 유명한 샤클르켄트 계곡을 만난 것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이나 다름 없지요. 정말 신나는 트레킹이었네요. 아이코, 내가 옆에 있었으면 그 수첩 때문에 고생도 안 하셨고 따라다니는 놈도 없었을 텐데요. 어쨌든지 작가님의 그 모험심은 대단하셨어요. 프르작가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겠지요. 그 아늑한 여음곡에서 뽀얀 막걸리 한 잔 했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요. 거기다가 여음곡이라는 간판이라도 걸어 놓고 왔어야했는데, 참으로 아쉽네요. 그런데 물고기는 없었나요. 다음에 가게되면 물고기 잡아다가 매운탕 끓여서 소주 한 잔 하게요.어딜 가나 그놈의 낙서, 그래도 한글이 아니라 다행이네요. 작가님 덕분에 새해에 새로운 기분으로 샤클르켄트 계곡을 딥다 트레킹했더니 몸이 가볍고 머리가 상쾌합니다. 새해에도 더 강건 행복하셔서 터키뿐만 아니라 온 세계를 가슴으로 따스하게 품어주세요. 작가님 덕분에 엊그제 잘 숙성된 감성도 만땅 충전했습니다. 이래저래 많이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 sagang 2012/01/03 09:25  Addr Edit/Del

      그렇네요. 작년 9월 하순에서 10월 상순까지 여행을 다녀와서 10월10일부터 연재를 시작했는데 벌써 해를 넘겼습니다. 아직 여행은 반도 안했는데 이러다가 1년 연재물이 되지 않을까 은근히 염려되기도 합니다. 글이라는 게 거미줄처럼 줄줄 나오는 것도 아니니 1일 1건 연재도 불가능하고... 그래도 이렇게 찾아주시고 격려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중간에 그만 둘 수도 없고. 뭐, 누가 보든 안 보든 이왕 시작한 거 열심히 해야겠지요?

      그 골짜기에 물고기는 없었습니다. 물이 너무 탁해서 물고기가 살 수 있는 환경은 아닌 것 같아요. 하류쪽, 수량이 많은 곳에는 아마 살지 않을까 싶고요. 홍천강 천렵이나 한번 가시지요^^ 새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2. 캔들 2012/01/02 18:04  Addr Edit/Del Reply

    여음곡?
    깊이 빠지지 않고 탈출해서 다행입니다.
    신선한 트레킹이지만 처녀 계곡보다 위험할수도 있었겟네요.
    여음곡 끝까지 도착해보면 튀르크 처녀 귀신 ㅎㅎㅎ ???
    오늘도 잘보고 갑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구요.

    • sagang 2012/01/03 09:27  Addr Edit/Del

      그러게요. 제가 기가 조금만 약했어도 아직 거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름답지만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뜻하는 일 모두 이뤄지기 바랍니다.

  3. 조상구 2012/01/02 21:59  Addr Edit/Del Reply

    계곡트레킹을 하셨군요. 산 한가운데에 저런 계곡이 있다니 신기합니다. 언젠가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생생하고 실감나는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sagang 2012/01/03 09:28  Addr Edit/Del

      산이 쩍 갈라져서 생긴 계곡인데 제가 봐도 참 신기했습니다. 그곳을 걸을 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고요. 혹시 가실 일 있으면 동행과 함께 가세요. 혼자는 좀 거시기 해요.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4. 정암 2012/01/03 13:11  Addr Edit/Del Reply


    수첩 분실과 물 웅덩이 첨벙이라니.. 얼마나 놀라셨을지 상상도 안갑니다.
    타인에겐 별것 아니지만..당사자에겐 그 어떤 것과도 못바꿀 것일텐데 말입니다.

    몇년 전 일입니다. 천왕봉 일출 촬영나갔다가 주머니에서 메모리가 빠져 절벽 밑으로 낙하하더군요. 이틀간 진종일 촬영한 데이터였는데.. 정말 으악!!이었습니다.
    본능적으로 절벽이고 뭐고 몸을 날릴 뻔 했는데, 같이 간 팀원들이 눈치를 채고 잡아줬습니다.
    그랬기에 망정이지.. 황천길 갈 뻔 했었지요 .

    작가님이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필하십시오.

    • sagang 2012/01/03 13:17  Addr Edit/Del

      하늘이 노래진다는 게 뭔지 정말 실감했습니다. 웅덩이에 빠졌을 땐 카메라가 젖었을까봐 두려웠고, 수첩을 잃어버렸을 때는 기록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다는 생각에 몸이 굳어버리더군요. 제가 기록욕심이 좀 과한 것도 있겠지만 다른 분들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메모리를 잃어버리셨다니 그때 심정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말 뛰어내리고 싶지요. 많은 분들의 염려 덕분에 무사히 돌아온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5. 전경미 2012/01/03 13:32  Addr Edit/Del Reply

    작가님의 도전과 탐험 정신이 고스란히 담아 있는 계곡 트래킹 출사담이시네요.
    저는 솟아오르는 물 보면 무서워 저만치 도망부터 갔을 거 같아요.
    황금색 햇살 속의 협곡 탐험. 생각처럼 낭만적이기보단 고생이 더 많았겠지만
    그래도 직접 체험한 그 기분은 잊히기 쉽지 않을 거 같아요.
    위기의 순간과 수첩 분실 이야기에 저까지 간담이 써늘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돌아오시고, 수첩도 찾았으니 그냥 힘껏 박수를 보냅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건필하시고,
    돈도 많이 버시고, 좋은 일도 가득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__)

    • sagang 2012/01/03 13:42  Addr Edit/Del

      사실 사진 찍을 욕심, 기록할 욕심, 좀 더 멀리갈 욕심만 버리면 해볼만한 도전입니다. 초입은 그리 힘든 코스도 없고 재밌어요. 철벅철벅 걷는 맛이 남다르잖아요. 어렸을 적 비온 날 여기저기 철벅거렸듯이. 제가 욕심이 많은 탓이지요.

      박수를 쳐줬으니 올해도 한 건 해야는데..^^ 아직은 연초니까 뭔가 있겠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 그득하게 생기길 바랍니다.

  6. 2012/01/03 13:49  Addr Edit/Del Reply

    사강님 새해 복부터 먼저 많~이 받으세요. ^^

    오늘은 신나는 여행기가 아니라 아찔한 여행기네요.
    계곡 트랙킹이라니....보통?의 산길도 잘 못다니는 저에겐 그저 놀라울뿐!
    옥계수도 곱고 우윳빛 흙빛 물빛들도 신기하니다.
    골짜기 사이로 펼쳐지는 절경들이 실제로 보면 어떨지 정말 정말 궁금해집니다.
    여음곡에서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저 틈을 어떻게 가죠 정말? --;

    • sagang 2012/01/03 16:06  Addr Edit/Del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러게요. 조금은 아찔한 여행기가 됐습니다. 그래도 아무 일 없이 돌아나왔으니 행복한 일이지요. 사실 여행하다 보면 저 정도 위험한 일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늘 설렘과 위험은 공존하기 마련.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여행이 매력적인 게 아닌지. 돌틈으로 통과하는 것, 저도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제가 발견 못한 우회로가 있을지도 모르고요. 한참 기다려도 저곳까지 오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7. mowol 2012/01/05 07:33  Addr Edit/Del Reply

    아 드디어 여음곡 물에 빠지셨구나. 복도 많으시지. 여음곡 물은 옥빛이라서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니...여복 많으신 사강선생. 석회암 계곡은 언제나 우윳빛의 옥물을 흘린답니다. 옥에 티라면 관광객들의 낙서로군요. 보기 흉합니다. 큰일날 뻔한 일에 농담은 했건만, 사강선생님, 무사하셨으니까 모월당에서 흔쾌히 정담 나누며 '베이징춘'을 마실 수 있었지요. 코란 선생께는 고맙다는 전화 드렸습니다.

    • sagang 2012/01/05 09:43  Addr Edit/Del

      예, 드디어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행복해 하신다면 얼음구덩이라도 빠질 각오가 돼 있습니다.^^ 요즘은 하도 추우니까 지중해서 땀을 흘리던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니 봄을 기다려야겠지요.

      선생님과의 정담, 행복했습니다. 이젠 번잡하지 않은 날에 여유롭게 만나뵈어야지요. 감사합니다.

  8. 주영신 2012/01/05 13:13  Addr Edit/Del Reply

    쬐끔,,위험한 여행담이네요..
    물이 맑지 않으면 두려움부터 덥썩 생기던데,,
    저,,원래 물이랑 되게 사이가 안좋거든요 ㅎㅎ
    젊으신데다 튼튼하시기까지 하신 사강님의 도전정신에 무조건 박수보내드리고 싶어요,,
    짝짝짝짝짝!!
    수첩을 찾으신건 정말 천만다행이에요..
    다들 비슷비슷한 경험이 있으신것 같은데,,
    저두 예전에 여행갔다 마지막코스에서 필름 잊어버려
    몽땅 머릿속에만 저장하고 있어야했던 기억이 있는지라..
    특히 보고듣고 느낀걸 고스란히 전달하시기 위해 애쓰신 노고가 모조리 담겨있는
    수첩을 잊어버리셨으니,,얼마나 머릿속이 하얘졌을까,,생각하기도 싫네요..
    다시 찾은 수첩 덕분으로 우리가 더 알찬 재미를 느끼며 이 글을 읽는거겠죠?
    여음곡,,,,이름 진짜~~~ 잘 지으셨어요 ㅋㅋ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담주에 또 뵈요^^

    • sagang 2012/01/05 17:24  Addr Edit/Del

      저 일을 당하니까 개에게 물릴뻔한 건 별게 아니란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사람을 의심하면 안되지만 나이를 먹거나 여성분들은 거기까지 간 사람이 없었고, 젊은이들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여드니까요. 쓸데없는 객기를 부린 건 아니었던가 지금도 가끔 반성하고 있습니다^^

      암튼, 수첩을 찾은 건 제가 평소에 '착하게' 산 결과가 아닌가 스스로 자뻑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는 용서해주실거지요?

      고맙습니다. 다음 주 뵙겠습니다. 새해 소망하는 일 모두 이루세요.

  9. 김현수 2012/01/05 19:11  Addr Edit/Del Reply

    터키에는 거지가 없?다.. 무언가 일을 한다.. 라는 부분에서 멈칫했습니다.
    취업준비생이란 명목으로 부모님께 의탁한지 몇년이 훌쩍 지난 제게
    천둥처럼 들려온 일침이네요. 감사합니다.

    • sagang 2012/01/06 08:49  Addr Edit/Del

      제 글에서 좋은 깨우침을 얻으셨다면 저야 반갑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취업이 쉬웠다면 부모님께 의지했겠습니까?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지요. 연초에는 좋은 소식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원하겠습니다.

  10. 삼족오 2012/01/05 22:40  Addr Edit/Del Reply

    모처럼 표피만 건드린 여행기가 아닌 진짜 여행기를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합니다. 세상에 여행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것도 드물지요. 너도나도 돈으로 만든 가벼운 이야기를 쓰기 전에는 그랬습니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이 겨울 따뜻한 여행 함께 합니다.

    • sagang 2012/01/06 08:50  Addr Edit/Del

      좋은 평가 고맙습니다. 표피든 내면이든 그저 보고 느낀 것을 진솔하게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보다 더 알찬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도 많을 텐데, 오버하는 건 아닌가 저어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함께 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계속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빨리 끝내야 다른 것 쓰는데^^ 격려 말씀 감사합니다.

  11. 로사 2012/01/11 05:28  Addr Edit/Del Reply

    앉았으니 어깨가 시린 새벽입니다. 요즘에는 입시 매니저 노릇이 바빠서 차분히 앉아서 하는 일은 거의 못하고 사네요. 지난 주 월요일에 읽고 또 중간 중간 아이패드로 읽고 댓글들을 보고 했는데 오늘 새벽에야 모니터 앞에 편하게 앉아봅니다. 아이패드로 글을 쓰는 것은 글자 치는 데에 신경쓰느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기에 꼭 데스크탑 앞에 앉아야 타이핑을 하네요.

    이제 여행이 무르익은 느낌이 듭니다. 여행이라는 것이 한 군데에만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니 무르익는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겠지만 바로 그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는 것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는 좀 더 능숙해지는 것에 대한 느낌이겠지요. 대체 어떻게 그 짧은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이렇게 오랫동안 그들과 호흡한 듯한 것을 서술할 수 있는가, 는 앞으로 여행을 앞두고 있는 저에게는 그저 신기한 일일 뿐입니다. 짧았던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여행기가 갖추어야 할 것들이 빠짐없이 포함되어 있고, 여행의 진전감 또한 녹아있어 이건 어째 아주 오랫동안 터키에서 머무르다 온 사람이 쓴 글 같기까지 합니다. 같은 환경과 같은 사람을 만나도 그냥 대충 흘려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가님처럼 그 풍광 속에 깊이 들어가 느끼고 마음에 담으며, 만나는 사람 또한 깊이 들여다 보며 그들의 생각을 읽고 그것을 작가님이 가진 생각의 여과기를 통과시켜 지닐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구르는 돌 하나, 지나치는 사람 한 명을 다 그저 그런 것으로 흘려버리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저에게는 이 여행기가 어떤 글보다 그런 것을 많이 느끼게 해주어 소소히 감동을 받게 됩니다.

    새롭게 만난 장소와 사람들의 이야기. 짧았지만 결코 주마간산이 아닌, 그들의 삶과 더불어 '사람'에 가까이 다가선 이야기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 sagang 2012/01/11 09:38  Addr Edit/Del

      여러 번 하는 말이지만 제가 여행기를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정성이 깃든 댓글에 숙연해질 뿐입니다. 글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하는, 제게는 금쪽 같은 채찍질이기도 합니다.

      길지 않은 여행이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는 중간쯤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여행이란 게 자로 거리를 재듯 끊으면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느 곳은 길어지고 어느 곳은 짧아질 수 있습니다. 인상이 깊었던 곳은 소재 하나만 가지고도 몇회를 쓰고싶은 유혹을 받기도 하지요.

      단 하나 문제가 있다면, 갈수록 자꾸 기억이 희미해진다는 것입니다. 수첩에 적고 카메라에 담았지만 생동감을 전하기 위해서는 기억회로에 좀 더 과부하가 필요하지요. 인간의 한계라는 게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그래도 격려에 힘입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1회부터 읽어야 재미있습니다.^^ 열심히 물어보고 공부했지만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페티예 화요장터 들어가는 길. 관광 삼아 나온 외국인들도 많다.

화요장터 초입. 온갖 과일과 채소들이 나와 있다.

거대한 규모
에 놀라다

927일 화요일. 지중해는 아직 여름의 잔양(殘陽) 아래서 이글이글 불타고 있다. 서울은 지금쯤 가을 기운이 완연할 텐데. 쏟아지는 햇살은 날카로운 창날처럼 대지에 박힌다. 오늘은 페티예를 떠나는 날. 3일 동안 신세진 호텔에서 체크아웃 한다. 며칠 지나면서 다큐팀 스텝들과 제법 친해졌다. 작업과 행동반경이 다르다고 오고가는 정이 없으랴. “저희 때문에 깊이 봐야하는 것들을 그냥 지나치시는 거 아닙니까?” 이런 기특한 인사를 해주는 젊은 친구도 있다. “책을 쓰시게 되면 저를 주인공으로 해주세요. 감자튀김 좋아하는 투덜이PD." 이런 인사도 한다. 그럼, 그럼. 세상에 주인공 아닌 사람이 있나.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믿음 씨가 터키의 한국인 우대 이야기를 해준다. ”한국 사람들은 한 달에 1, 2달러만 내면 장기체류비자를 내줘요,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 수 있는 거지요이거 제법 쓸 만한 정보다. 하긴 부자에게 이 나라는 천국이다. ”휴양지 호텔은 하루 숙식비가 80달러에서 300달러까지 해요. 그것만 내면 세끼 식사는 물론 술도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거든요유럽인들 중에는 호텔서 꼼짝 않고 먹고 마시고 수영을 하다 돌아가는 사람도 많단다. 그래, 돈만 있으면 어딘들 천국이 아니더냐.

고추도 각양각색

옥수수를 보니 고향생각이

가지도 가지각색.

오늘의 종착지인 카쉬까지 가기 전에 몇 가운데 들러야 한다. 맨 먼저 들를 곳은 페티예 화요장터. 매일 열리는 바자르와 달리 말 그대로 화요일마다 열리는 장이다. 우리의 5일장과 같은 곳으로 생각하면 된다. 장터는 수량이 제법 많은 큰 내를 낀 넓은 공터에 펼쳐져 있다. 우리네 장터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규모는 상상 밖으로 크다. 터키인, 외국인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간다. 외국인들에게는 관광코스 중 하나이기도 한 모양이다. 다리를 건너 장터로 들어가니 끝이 안 보일 정도로 포장이 쳐 있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물건들이 나와 있다. 물건의 양과 종류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입구 쪽에는 채소와 과일 등이 주로 진열돼 있다. 사과복숭아자두수박토마토멜론에구, 숨차다. 따뜻한 기후, 축복받은 땅이라서 그런지 여름 과일, 가을 과일 없는 게 없다. 우리나라에 있는 과일은 모두 다 있어서 정겹기까지 하다. 채소도 마찬가지. 마늘감자양파배추고추호박강낭콩오이상추김장을 담가도 되겠다. 상추를 보니 느닷없이 삼겹살 생각이 나고 호박을 보니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진다. 고추의 모양도 각양각색, 가지의 색깔도 가지각색이다.

덩어리 치즈와 가루 치즈.

올리브 파는 아저씨.

치즈와 올리브 가게에서


조금 안쪽엔 치즈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덩어리로 된 것도 있고 가루로 된 것도 있고. 큰 놈은 거짓말 좀 보태서 설악산 울산바위 만하다. 치즈의 세계에도 양반 상놈이 있는지 고급치즈는 동물의 가죽으로 싸놓았다. 그래야 잘 보관된단다. 아침 아홉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장터는 활기가 넘친다. 사람들 생긴 것만 조금 다르지 고향의 5일장을 돌아다니는 것과 똑같다. “아따, 그러지 말고 일루 점 와봐. 싸게 줄 테니께손님들을 부르는 소리, “워매, 뭐가 요래 비싸대유. 좀만 깎아줘유물건 값 깎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장터 한가운데 서서 사진을 찍고 수첩에 뭔가 적고 있으니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는 사람들도 많다. 이 동네도 별 살 것도 없이 사돈 따라 장 구경 나온 사람들이 있나보다. 돋보기가 없는 게 한이라는 듯, 내 수첩에 코를 박는 아저씨에게 묻는다. “이 글씨 아세요?” “……????” 그럴 줄 알았답니다. 그놈의 호기심이 죄지 아저씨야 무슨 죄가 있겠어요. 정말 사돈을 만난 건지 장터 한 가운데에 자전거를 세우고 수다에 빠진 아저씨들도 있다. 옆집 강아지 새끼 몇 마리 낳은 얘기까지 해야 길을 비켜줄 모양이다. 그렇다고 큰 소리 치거나 짜증내는 사람은 없다.

곡물 파는 아저씨. 전형적인 튀르크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남편 보고 "챔피언"이란다.

올리브 가게 앞에서 기웃거린다. 점잖게 생긴 주인이 쓰레받기 같은 걸 들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걸로 주문에 따라 올리브를 담아주는 것이다. 올리브도 종류가 무지하게 많다. 수확한 지역에 따라 모양이 다르기도 하고 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기도 한단다. 우리의 장아찌처럼, 소금이나 레몬으로 간을 해서 시장에 낸다. 맛을 본다는 핑계로 먹어 보지 않으면 장터가 아니지. 살 것도 아니면서 하나를 집어 입에 넣어본다. 우웩!! 역시 짜다. 호텔서 한번 당했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이 선천성 기억상실증이란. 이번엔 곡물 파는 아저씨 가게. 여기도 눈이 돌아갈 정도로 다양한 곡물이 있다. 명색이 촌놈인데도 아는 건 쌀달랑 하나? 아니다. 고춧가루도 있구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함께 장사를 하는데 두 분이 전형적인 터키사람이다. 그 옛날 몽골초원에 살던 돌궐족이 중앙아시아를 지나면서 적당히 피를 섞은 뒤, 아나톨리아 땅에 도착했을 때의 모습과 가장 근접한 얼굴 아닐까? 아주머니는 남편 보고 챔피언이라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무슨 챔피언이란 걸까? 무얼 잘하면 마누라한테 저런 소리 듣고 살까? “어이구, 이 화상아. 잘할 생각 접어두고 허구헌날 싸돌아댕기지나 말어.“ 왜 요즘 환청이 이렇게 자주 들릴까?

엄마를 조르더니 도넛 하나 얻었다. 그러나 또 조를 태세.

멜론을 준 아저씨. 제가 그렇게 불쌍해 보였나요?

멜론을 얻어먹다


근처 가게에서는 군것질거리를 파는데 대여섯 살 쯤 된 아들이 엄마 치마꼬리를 붙잡고 늘어진다. , 저 녀석 봐라. 안 먹어도 퉁퉁 불어있구먼.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아이의 손에 큼직한 도넛이 쥐어진다. 옛날 생각이 난다. 그 먼 길, 할머니를 따라 장에 가면 풀빵도 먹고 싶고 사탕도 먹고 싶고그냥 돌아서는 할머니가 얼마나 야속했던지. 냉정하게 돌아서야 하는 당신은 이것저것 사달라고 조르는 어린 것이 얼마나 측은하고도 야속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할머니가 손자의 군것질거리와 바꿀 수 있는 건 눈물밖에 없었다. 할머니 잘못했어요. 그 속죄 언제나 다 하고 이 소풍을 마칠 수 있을까. 그렇게 혼을 내려놓고 서 있는 나를 과일가게 아저씨가 부른다. 아이 손에 들린 도넛이 먹고 싶어서 침을 흘리고 있는 줄 알았나보다. 멜론 한 조각을 쑹덩 잘라서 손에 쥐어준다. 아무래도 멜론을 사라는 건 아닌 것 같고, 동양에서 온 거지쯤으로 여긴 것 같다. 하긴 여행 내내 수염 한번 깎은 적 없고, 걸친 옷이라 봐야 추레하기 그지없으니, 그렇게 봐도 할 말은 없다. 그래도 동방예의지국에서 왔는데 인사 하나는 제대로 차려야지. 고맙습니다. 아저씨. 그런데 제가 그렇게 불쌍하게 생겼나요? 멜론을 우물거리며 과일채소전을 벗어난다.

전통과자 5상자를 사면 1상자는 거저 준단다.

빗자루. 참 곱게도 엮어놨다.

빵장수 아저씨.

세제설탕휴지치약칫솔생활필수품 가게를 거쳐, 젤리에 가까운 터키 전통과자를 파는 곳을 지난다. 다섯 상자를 사면 한 상자는 공짜로 준단다. 그래도 전 안사요. 어느 집 앞에는 곱게 짠 빗자루들을 세워놓았다. 옛날 우리네 빗자루와 비슷하게 생겼다. 솜씨도 좋지. 너무 고와서 방을 쓸기에는 아까울 것 같다. 좀약이나 바퀴벌레 약을 파는, 70년대가 생각나게 하는 난전도 있다. 그럼 그렇지, 왜 없겠어.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빵을 파는 아저씨를 만나니 반가움이 울컥 솟는다. 어릴 적 풀빵이나 호떡을 팔던 아저씨를 만난 셈이다. 이제부터는 공산품공예품 가게들이다. 가방 가게에는 물건도 다양하게 많고 다른 곳보다 손님도 많다. 터키는 다른 산업에 비해 가죽공예가 비교적 발달한 편이다. 신발가게도 샌들부터 운동화까지 다양한 품목을 갖춰놓았다. 그곳을 그냥 지나쳐 공예품가계로 들어가 본다. 부채나 보석함 등 온갖 공예품들이 그걸 만들었을 사람의 정교한 솜씨를 말해준다. 그중에서도 유리공예품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다. 각종 등()이나 터키 특산물인 물담배 파이프에 특히 눈길이 간다. 내가 들어서자 종업원 청년의 눈은 카메라에 가서 꽂혀버린다. 물건을 팔겠다는 생각은 이미 저만치 달아나버린 눈치다.

각종 유리공예품들.

공예품 가게의 사장님.

공예품 가게의 사장과 종업원


자꾸 와서 들여다보고 관심을 보이길래, “한번 찍어볼래?” 하며 손에 쥐어줬더니 입이 쭈욱 찢어지면서 카메라를 들고 온갖 폼을 잡는다. 찍힐 놈이 폼을 잡아야지 왜 네가 폼을 잡니? 또 다른 종업원이 다가오더니, 제 동료가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걸 보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덥석 내 어깨에 팔을 얹는다. 한 방 찍어보자 이거지? 그래, 카메라 든 친구 기분이나 좋게 해주자. 나도 덥석 어깨동무를 한다. 그런데 이 녀석은 왜 이리 키가 큰 거야. 잠시 뒤 들려오는 셔터소리. 뒤에 조명이 너무 강해서 분명 시커멓게 나왔을 거다. 아무렴 어떠랴. 그런 얘기를 수첩에 적고 있자니, 카메라를 내게 넘겨준 청년이 곁에 와서 들여다본다. 이 나라 사람들 호기심은 정말 못 말린다. “, 이 글자 알아?” 물었더니 대답도 없이 제 팔을 어깨까지 둥둥 걷어붙인다. 일본어 문신이 새겨져 있다. 이 친구 생각으로는 같은 동양인이고 글자가 낯설긴 마찬가지니 같은 나라 말인 줄 알았나보다. “그건 일본 글씨야. 난 한국 사람이거든. 코리아라고 들어는 봤나?” 영어와 한글로 코리아라고 써주니 뭘 좀 알아들었는지 수첩에다 자기들 말로 코리아라고 써준다. 에구, 귀여운 것. 앞으로는 한국을 많이 사랑해라. 그리고 가능하면 지금 문신은 지우고 한국 만세!’ 이런 걸로 새로 새겨봐.

내 카메라에 '눈독'을 들였던 청년. 잘 생겼다.

공예품 가게 사장의 이름은 야곱이이라는 장돌뱅이다. 가게 규모가 하도 커서 말뚝 박고 장사하는 사람인가보다 했는데, 매일 매일 장 따라 옮겨 다닌단다. 그는 다큐팀이 자기네 가게를 들러준 걸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코리언이라니까 곧바로 “Brother”가 터져 나오면서 특유의 잃어버린 형제를 상봉한표정을 짓는다. 이런 식의 반응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하지만 여러 번 겪어도 감동은 줄어들지 않는다. 야곱은 한국인에 대한 우의로 스텝들이 산 기념품 값을 끝내 받지 않는다. 가게를 나오는데 사진을 찍었던 청년이 따라 나오더니 악수를 청하며 “Nice Korea”를 연발한다. 그래, 열심히 살아.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일본어 문신은 지워. 터키사람들은 왜 그렇게 한국인들을 환대할까. 진심일까? 장담하건대 진심이다. 어딜 가나 피를 나눈 형제라는 뜻의 칸카르데시라고 부르는 터키인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만큼 두 나라의 인연은 가볍지 않다. 인연의 뿌리를 찾자면 제법 아득한 과거까지 올라가야 한다. 우리 땅이 고구려백제신라로 나뉘어 있을 때, 돌궐족은 튀르크제국을 세워 몽골 땅을 호령했다. 그때 튀르크 제국과 고구려가 연합해서 수나라에 대항하기도 했다. 튀르크의 무한 카간이 사망했을 때는 고구려에서 조문사절단을 파견했다.

신발 가게.

한국인을 형제로 부르는 이유

고려 때에는 튀르크계의 일족인 위구르족이 개경에서 살기도 했다. 그때 지어진 야한 가요 쌍화점에 나오는 회회아비가 바로 그들이다. 한국과 터키가 진짜 피를 나눈건 물론 6.25전쟁 때였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터키는 15000명의 병력을 보냈다. 이는 유엔군 가운데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였다. 터키군이 중공군을 맞아 싸웠던 평안북도 군우리 전투는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꼽힌다. 돌궐의 후예들은 백병전에 특히 능해서 일당백의 위용을 보였다. 5배 이상 되는 적에게 막혀 자신들도 위험한 상황이었던 터키군 1여단은 예상을 깨고 전멸 위기에 처한 미 2사단을 구하려 중공군 진지로 뛰어들었다. 착검을 한 채 알라후 아크바르(Allāhu Akbar 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돌격하는 터키군을 맞아 중공군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전투를 계기로 중공군에게 터키군은 공포의 군대로 새겨졌다고 한다. 터키군은 한국전을 통해 750여명이 전사했고 32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터키인들은 한국전에 참전했던 용사들을 코레 가지라고 부른다. 코레 가지들은 한국을 조국이라는 뜻의 바탄이라고 부르고 스스로를 한국인이라는 뜻의 코렐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악기점 주인 아저씨.

타국에서 희생한 그들은 그렇게 한국을 잊지 않고 사랑하는데, 피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과연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진정 고마워하고 있을까? 거기에 대해서는 큰 소리를 칠 자신이 없다. 터키는 멀리 있는 그렇고 그런 나라일 뿐이고, 터키인들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는 게 우리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여행 내내 환대를 해주는 그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반대로 터키인들은 한국인이라면 일단 감동할 준비부터 한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이 거기에 불을 지르고 말았다. 축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터키 국민들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를 했고, 2002년에는 1954년 이후 48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으니 나라가 뒤집어질 지경이었다. 더욱 감격한 건 한국과 치른 3, 4위전이었다. 한국인 응원단이 펼친 터키국기, 그리고 자국 선수들을 향한 응원과 박수에 그들은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저들이 바로 피를 나눈 형제들이야. ‘형제의 나라는 다시 한 번 뼛속 깊이 다시 각인됐다. 우연이었든, 의도한 일이었든 경기에 지면서도 박수를 쳐준 건 참 잘한 일이었다. 그들이 흘린 피와 변하지 않는 우의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었으니.

아으, 셔!!! 석류 주스를 짜고 있다.

즉석에서 나무를 깎아 공예품을 만드는 할아버지. 원탁 위에 진열된 것들이 바로 새총이다.

뜨거운 전송을 받으며 공예품 가게를 나와 옷 시장 입구에서 전통악기를 파는 아저씨를 만난다. 아저씨는 “Happy birthday”를 연주하며 유혹한다. 에이, 아저씨 사람 보실 줄 모르네. 살 사람을 꼬여야지요. 악기 이름은 듀라’. 박수까지 치며 함께 놀다가 손을 흔들고 자리를 뜬다. 천변에는 카페가 늘어서 있다. 우리가 장터에 가서 국밥 한 그릇을 먹듯이 장을 보러온 사람들이 음식도 먹고 음료수도 마신다. 석류주스를 갈아 파는 가게 앞에 멈춰 선다. 신 음식이라면 냄새만 맡아도 저만치 도망가는 나지만 예쁜 색깔이 자꾸 유혹한다. 혹시 달콤하지 않을까? 그래, 도전!!! 내 인생에서 혹시역시로 바뀌지 않던 적이 있던가. 나는 그날 울면서 석류주스를 마셨다. 무려 3리라나 투자하고서. 장터 날머리에서 트럭을 세워두고 나무로 공예품을 깎아 파는 할아버지를 만난다. 수저머리빗홍두깨참 솜씨도 좋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건 새총. 어릴 적엔 겨울마다 저걸 들고 들이고 산이고 얼마나 쏘아 다녔던지. 터키 아이들도 저걸 갖고 노는구나. 동질성은 곳곳에 숨어있다. 이제 장구경도 끝났고 페티예를 떠날 시간이다. 안녕! 페티예. 3일 동안 행복했어.

 

추천(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sagang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anwlro 2011/12/26 09:40  Addr Edit/Del Reply

    일주일을 기다려 오늘도 터키 공부 시작으로 월요일 아침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제가 가장 흥미 있는 장 구경 이네요..저도 주말에 5일장이 걸리는 시골 장에 구경 삼아 놀러 가곤 한답니다. 터키에서의 석류쥬스는 정말 마셔보고 싶네요..저도 울면서 마시겠지만요....오늘도 사강님 덕분에 기분좋은 월요일 아침을 시작합니다..감사합니다..

    • sagang 2011/12/26 12:38  Addr Edit/Del

      저도 시골장을 무척 좋아합니다. 어느 도시에 가든 장날이라고 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아직도 우리네 고유의 정과 삶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석류는 정말 시었습니다. 어릴 적 보석같은 석류알을 하나씩 빼먹던 생각이 나서 도전을 해보긴 했는데, 정말 울면서 마셨습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신 것을 전혀 못 먹거든요.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흔적을 남겨주시는 분들 덕분에 남은 여행기를 써갈 힘을 얻습니다.

  2. 장기숙 2011/12/26 10:08  Addr Edit/Del Reply

    그런 의도를 갖고 쓰셔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5일장과 그곳의 화요장터가 정말 비슷하군요. 예쁘게 짠 빗자루나 새총은 정말 그리운 풍경이기도 하고요. 터키에 갈 일이 있으면 꼭 가봐야겠어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sagang 2011/12/26 12:40  Addr Edit/Del

      의도라기보다는 정말 비슷합니다. 사람들도 물건도.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우리나라 오일장도 딱 저런 모습으로 구성돼 있거든요. 거기서 진정한 터키인들의 삶을 만났습니다. 여행이란 새로운 것을 보는 것도 좋지만 거기서 사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을 만날 때가 가장 보람 있지요. 고맙습니다.

  3. 캔들 2011/12/26 17:57  Addr Edit/Del Reply

    5일장을 돌면서 귀엽고 간직하고 싶고 사고 싶은것 많을텐데
    들고 다니려면 짐이 될까봐 참 마음이 아쉽지요.
    저는 직접 보지 않고 선생님 사진과 글로만 보니
    사고 싶은 충동 억제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입니다.
    감사히 또 읽고 갑니다.
    정말 한국인 이라면 반가워하는 마음 잊을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터키 사람들 보면 메라바 라는 인사라도 합니다.

    • sagang 2011/12/26 18:48  Addr Edit/Del

      그래요. 저도 시골장에 갈 때마다 마음대로 걸음 옮기기가 어려워요. 이것도 사고 싶고 저것도 사고 싶고. 터키에서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여행자 처지에 이것저것 사놓으면 나중에 들고가는 게 걱정이라... 꼭 우리 장터 같았어요.

      여행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남은 한 해 잘 보내세요^^

  4. 전경미 2011/12/27 12:17  Addr Edit/Del Reply

    우리네 시골장 같은 페티예 화요장터의 이모저모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각종 야채, 산더미처럼 쌓인 치즈, 각양각색 올리브, 곱기도 한 빗자루,
    새총까지. 볼거리도 물론 많지만 역시 사람들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저도 어쩌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터키에 대한 인식이 생겼던 거 같습니다.
    자세하게 설명해주신 터키와의 인연으로 숙연해집니다.
    그들의 희생과 우리에 대한 우의에 깊이 감사하며,
    저 역시 피를 나눈 우리의 형제! '칸카르데시' 마음 깊이 새깁니다.

    그나저나 얻어먹은 멜론 맛은 달콤했는지요?
    그렇게 시다니 석류 주스 한 잔 마시고 싶습니다.
    전 신 거 좋아라 하는데. ^^

    페티예에서의 여행 동안 저도 참 행복했습니다.
    다음 여행기도 설레며 기다리겠습니다. ^^

    • sagang 2011/12/28 09:24  Addr Edit/Del

      맞아요. 사람이지요. 그들의 사는 모습은 우리와 정말 비슷해요. 그래서 더욱 정이 가더라고요.

      멜론 맛, 정말 좋았지요. 확실히 얻어먹는 건 맛있어요. 그 머나먼 나라까지 가서 앵벌이로 먹고 살다니. 석류주스는 석류라는 단어만 봐도 침이 마구 고여요. 에구 시어라. 담엔 절대 안 먹어요^^ 고맙습니다.

  5. 정암 2011/12/27 14:35  Addr Edit/Del Reply

    한 주 한주, 여행기가 이어질 수록,
    터키에 대한 알 수 없는 열병은 깊어만 가게 되네요.
    바자르를 가득 메운 색색깔의 향연, 잘 봤습니다 작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sagang 2011/12/28 09:26  Addr Edit/Del

      제가 죄가 많습니다. 열병을 앓게 해드렸으니. 그래도 동료가 생긴 것 같아서 기분은 좋은데요. 끝까지 함께 가주시지요. 정암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새해에도 연재는 계속됩니다.

  6. 2011/12/27 14:39  Addr Edit/Del Reply


    이번 화에선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
    회가 거듭될수록 유쾌해지는 터키 이야기. 신나고 재미집니다.
    어느 나라이건 장터는 또 다른 삶의 축제장인 것 같아요.

    고향집 마당에도 석류나무가 있었는데,
    가을이면 보석같은 속살을 쩍! 드러내곤 했지요.
    알알이 반짝거리던 수정같은 알갱이는 먹기 아까울 정도였어요.
    입 안에 넣었을 때 느껴질 으악한 신맛때문에 사실 망설이기도 했지요 ㅎㅎ

    예전엔 여행기를 보면서 터키에 그냥 '가고'싶었는데
    이젠 점점 가서 살고싶어집니다. 어쩌죠 작가님? -_-;;;

    • sagang 2011/12/28 09:29  Addr Edit/Del

      제 고향집에도 늙은 석류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그래도 매년 석류를 매달았지요. 맞아요. 보석같은 알갱이들... 추억으로는 참 아름다운데 먹기에는 좀...

      또 한 분 터키병에 들게 했군요. 죄가 큽니다. 일단은 제 이야기로 대리만족만 하시기 바랍니다. 훗날 터키여행단, 아니면 터키정착단 하나 만들지요. 고맙습니다.

  7. 주화 2011/12/27 18:07  Addr Edit/Del Reply

    언젠가 터키에 가리라....마음으로만 계획을 잡고 있는데요 장구경 두루 잘하고 갑니다
    언젠가는 나도 가서 꼬옥 보고 올게요 잘 보고 갑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 sagang 2011/12/28 09:30  Addr Edit/Del

      예, 그러세요. 터키에 가면 장에 꼭 들러보세요. 생동감을 흠뻑 느낄 수 있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8. 샬롬 2011/12/28 00:50  Addr Edit/Del Reply

    선생님,안녕하세요!^^
    터키의 화요장터였지만, 마치 우리나라 5일장터를 구경한것처럼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에게 낯익은 과일들, 채소, 심지어 빗자루와 새총까지!!!
    와~ 새총에서는 정말이지, 옛 향수가 떠오릅니다. 비석치기, 제기차기하며 동무들과 노닐던 추억이 아련합니다.^^
    형형색색의 유리 공예품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문양같다 했는데, 양탄자에 들어가는 문양이 유리공예에도 나타는군요!
    터키의 형제국 말씀에서는, 미안함과 감사함이 교차합니다.
    혈맹인 터키에 대해 그동안 관심 밖의 일로 생각했던 제 자신이 부끄럽네요.
    그러나 지금은 선생님의 여행기를 통해서 터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며, 터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선생님 덕분입니다.^^ 아울러, 두 나라가 혈맹으로 맺어진 인연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터키의 장터를 구경하면서, 옛 소중한 추억까지 떠올리는 멋진 여행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예전에 선생님 트위터에 올리신 12장의 도화지 말씀 생각 나시나요?^^
    시적인 표현이 너무나 감동이어서 지금까지 머리속에 남아있네요!
    새해에 새로 받는 12장의 도화지.
    그 12장의 도화지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넣으려고 생각중입니다만, 뜻대로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보려 합니다.^^

    선생님, 남은 한해 마무리 잘 하시구요, 새해에도 더욱 건승하시길 축복합니다.

    • sagang 2011/12/28 13:23  Addr Edit/Del

      유리공예의 문양과 양탄자의 문양의 일치를 보시다니 대단한 안목입니다. 대개는 그런 것 못 보는데. 터키에 대한 감사와 애정에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느 한쪽의 짝사랑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기분 좋습니다.

      예, 12장의 도화지 얘기 올렸었지요. 덕분에 다시 돌아보게됩니다. 지난 1년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괜한 낙서에 그치지 않았을까. 역시 큰 그림은 못 그린 것 같습니다. 올해 꼭 이루고 싶었던 것도 아직 못했고요. 이제 며칠 뒤 받는 새 도화지 12장. 좀 더 소중하게 다뤄야겠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9. 주영신 2011/12/28 15:52  Addr Edit/Del Reply

    오늘 다양한 색깔, 상품들로 눈요기 많이 합니다.
    어디선가,,징이나 꽹과리 소리가 들리것도 같고,,
    뻥튀기아저씨의 '뻥이요~~!!'소리도 날것 같은,,
    정말 우리 시골장같은 분위기네요..

    터키는,,알면 알수록,,형제의 나라라는게 실감이 납니다.
    참,,묘하게도 비슷한 풍경들,,그들의 무조건적인 KOREA사랑,,
    뼛속에서도 뭔가 끈끈한 것이 이어져내려오는것이 아닌지...
    대단키도 하고,,부끄럽기도 해요..

    석류알을 그냥 먹으면 그렇게 많이 시지 않는데,,
    그걸 주스로 만들어 먹으면,,눈을 뜰 수 없을만큼 시어져요..
    글 읽다가,,제가 눈 감을뻔 했네요^^

    오늘은 페티예랑 인사하는 날이네요..
    다음은 어딜까,,,,궁금증 한아름 안고 올 한해 갈무리해야겠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건강하시고,,좋은 글로 내년에도 또 뵈어요^^

    • sagang 2011/12/28 17:20  Addr Edit/Del

      그래요. '뼛속에서도 뭔가 끈끈한 것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닌지'라는 표현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분명 오랜 세월 형성된 공통인자가 들어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안 믿는 분은 그곳에 가서 1주일만 있어보면 저절로 느껴집니다.

      아, 석류가 주스로 만들면 더 시어지는군요. 그래도 그곳 사람들은 잘 먹더라고요. 저는 지금도 군침이 마구 도는데. 에구, 셔라!! 아무튼 저는 신 것이라면 원래 질색해요. 오장 중에 어디가 안 좋아서 그렇다는데.

      이번 여행도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여전히 동행 부탁드립니다.

  10. 마이산 2011/12/28 16:10  Addr Edit/Del Reply

    너무 좋습니다. 터키의 이 곳 저 곳을 세세하게 멋들어진 사진과 함께 알려주시니까요.
    저도 올 초여름(6월 초)에 터키를 8일간 일정으로 다녀왔지요. 전 순전히 '셀수스도서관'을
    보기 위함이었지요. 아놀드 토인비가 터키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매력적인 곳! 장구한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사람들의 성향은 다소 느긋하고 순박하다고
    느꼈죠. 한 23개국을 투어했지만 제일 인상깊고 애정이 가는 곳은 바로 '터키'입니다.
    그래서 그 곳을 다녀온 후 짧막한 기행수필 한 편을 남겼죠. 그 때가 체리, 살구 등 여름과실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과일가게 주인이 무게를 달지도 않고 대충 집어주는 걸 보고, 참 인간미가 느껴지더군요. 우리의 세계와는 다르다는 걸... 그리고 여행 후 알게 된 작가! 그는 바로 오르한파묵입니다.
    2006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지요. 그의 자전적 소설 '이스탄불'을 일고 많은 감명을 받았죠.
    충분히 자격이 있는 작가라고요. 사진과 고대와 현재를 넘나드는 역사, 문화, 생활양식, 자신의
    가족사, 애인을 잃은 상실감, 하여튼 깊고 깊은 사고의 작가라는 것과 이스탄불에 대한 애정이
    너무도 짙게 그려져 있음에, 많이도 부러웠죠. 우리에에도 그러한 작가 한 명쯤 계셔 준다면 좋지 않을까요?

    • sagang 2011/12/28 17:27  Addr Edit/Del

      정말 많은 여행을 다니시는 분이군요. 저도 늘 그렇게 길 위에 있고 싶은데 현실은 맨날 책상 앞입니다. 23개국 중 가장 애정이 가는 곳이 터키라니 동질감만으로도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누구든 한번 가본 사람은 터키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사람들의 순박함과 환대도 좋지만 화려한 역사와 다양한 문화, 아름다운 풍경은 그 자체가 유혹이었습니다.

      오르한 파묵은 저도 섭렵해볼 생각입니다. 내 이름은 빨강 같은 소설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저 역시 우리나라에서도 그만한 작가가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찾아주시고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뵙기를 소망합니다. 늘 건강하시고요.

  11. mowol 2011/12/29 09:10  Addr Edit/Del Reply

    춘천에 와서 12편을 봅니다. 옥수수는 우리나라 것보다 길군요. 가지들은 빌깔이 연하고요. 가장 눈길이 가는 건 새총이네요. 어릴 적 생각이 나서요. 새총을 가지고 참새를 향해 얼마나 쏘아댔는지...물론 한 마리도 명중을 하진 못했지만요.
    지금도 저희 마을에선 3일과 8일장이 섭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머니 손잡고 장구경을 했습니다. 올챙이국시도 먹고 꽃도 구경하고 채소도 듬뿍 사고 고등어 한손 들고 집으로 오던 풍경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올 마지막 날들을 보내면서 내년에도 변함없이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많이 쓰세요.

    • sagang 2011/12/29 10:56  Addr Edit/Del

      예, 열매채소들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면서도 잘 들여다보면 조금씩 달라요. 과일도 마찬가지고요. 그래도 얼마나 반갑던지. 선생님 말씀대로 새총은 제 발길을 한참 묶어뒀지요. 저도 새총은 참 좋은 장난감이었거든요. 얼마나 애착을 보였던지 좋은 새총감을 찾는다고 산을 온통 뒤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도 그걸로 살생을 범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느닷없이 조금은 쓸쓸할, 겨울 장에 가고싶어졌습니다. 내년초에는 가봐야겠네요. 늘 건강하세요. 선생님.

  12. 로사 2011/12/29 18:12  Addr Edit/Del Reply

    한국전쟁 때와 2002 월드컵 때로 이어지는 시대를 뛰어넘는 터키와 우리나라의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우리 한민족 간의 '꼬시래기 제 살 뜯기' 같은 전쟁에서 수도 없이 사라져간 그들의 꽃 같은 붉은 목숨들에 미안한 마음이 가득해집니다. 얼마전 김정일의 죽음으로 다시 한 번 돋보기를 들이대게 된 우리나라의 현실과, 세계가 주목하게 된 한북의 관계가 아직도 이 지상의 숙제로 남아있음이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어도 터키인들은 'brother'를 외치며 그곳에서 우리 한국인들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주며 웃고 있군요.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강님의 터키여행기에는 잊고 있었거나 잘 알지 못했던 역사의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그것은 현재에 서있는 우리가 보아야 할 시공적 구도에서의 역사를 탐방하게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강님의 터키여행기를 통해 그런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 일이니 고개를 끄덕이며 아아 그랬구나, 하고 말 수 있지만, 터키인들까지 피를 흘린 그 한국전쟁은 아직도 휴화산일 뿐이고 깊숙히에서 끓고 있는, 언제 터져나올지 모르는 마그마를 품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이 터키여행을 통해 조명되어져 저에게는 안타까움으로 다가섭니다. 제가 어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 말입니다. 에휴.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내음이 물씬 풍기는 터키. 사강님의 여행기 덕분에 2월에 터키를 여행지 목록에 올려놓았습니다. 이 여행기에서 읽고 익힌 것들 덕분에 '관광' 이상의 여행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심하고 사려깊은 시선으로 쓰신 12회 여행기도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sagang 2011/12/29 15:28  Addr Edit/Del

      터키 사람들의 환대는 이미 여러번 했지만, 가끔은 거꾸로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그들이 우리를 뜨겁게 맞이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늘 뜨거운 감사를 보내야 하는 건 아닌지. 무려 750명의 젊은이들이 머나먼 이국 땅에서 숨을 거뒀지만, 그들은 한국인을 원망하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타국의 이데올로기 싸움에 뛰어들 필연적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저는 그 가치를 조금이라도 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가볍고 무거운 얘기를 완급을 조절해서 엮어나가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공간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시간별 기록이기도 하니까요. 그래도 또 열심히 써봐야지요. 제 여행기 덕분에 터키를 여행지 목록에 넣으신 분이 있다는 사실, 터키도 제게 고마워해야 할겁니다^^


1회부터 읽어야 재미있습니다.^^ 열심히 물어보고 공부했지만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욀뤼데니즈 해변의 패러글라이딩 착륙장. 모래와 잔디밭이라 안전하다.


그녀를 만나다

바바산에서 내려와 헥토르 사무실에 도착하니 아까는 보이지 않던 그녀가 있다. 누구? 헥토르 에이전시에 일한다는 한국인 아가씨.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가출한 여동생을 타향에서 우연히 만난 듯 반갑다. 하지만 그녀는 7년 만에 만나는 오라비나 지을 법한 감동적인 표정을 보고서도 무덤덤하기만 하다. 하도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이곳이 서울인지 머나먼 이국 땅인지 헷갈리는 것 같다. ‘아니, 또 저런 감동 과잉형 인간이야?’ 하는 표정까지 살짝 내비친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갈 나도 아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간다. 그녀가 터키, 그중에서도 페티예에 정착한 건 3년 전. 여행을 왔다가 눌러 앉았다고 한다. 나중에 기회 있으면 소개하겠지만 코디네이터 엄상욱 씨도 그렇게 무작정 눌러앉은 케이스다. 그럼 나도 이참에…? 아무튼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왔다가 패러글라이딩 회사의 직원이 된 셈이다. 엄청난 용기다. 고국에는 가족도 친구들도 있었을 텐데. 낯선 땅에서 새로운 세상을 살 수 있는 건 용기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헥토르 입장으로 보면 낮잠을 자다가 홍시 하나가 벌린 입으로 떨어진 셈이었을 것이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에 그녀가 큰 도움이 됐을 건 안 봐도 비디오고.

다시 한번 미스터 헥토르를 소개합니다!! 그는 끝내 패러글라이딩 값을 받지 않았다.

하필 이 동네에 정착한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대답이 간단하다. “여기가 가장 따뜻해서요” 삶이 무척 추웠던 모양이다. 터키말은 전혀 몰랐는데 살면서부터 배웠다고 한다. 그녀 역시 헥토르가 한국인들을 특별히 좋아한다고 강조한다. 자기 수수료를 포기하고 한국 청년들의 편의를 봐주기도 한단다. 그렇구나. 최소한 동포 말은 믿어야지.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손을 흔들며 떠난 딸이 느닷없이 낯선 땅, 그것도 시골 한구석에 틀어박혔을 때 부모 심정은 어땠을까. 의외로 선선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시더니, 지금은 친구 딸들은 다 시집을 가는데 넌 뭐하느냐고 하세요. 그러다가도, 거기에 자리나 잘 잡아놓으라고….” 그녀의 부모님 속내도 좀 복잡한 게 틀림없다. 이곳에 계속 있을 거냐는 질문에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단답형으로 대답한다. 그러더니 조금 있다 한마디 덧붙인다. “여기가 속 편해요” 그렇지 뭐, 속 편하면 곳이 고향인 게지. 살던 땅으로 돌아간다고 누가 정착자금을 챙겨주는 것도 아니고. 아까 헥토르에게 미처 확인하지 못한 몇 가지를 물어본다. 욀뤼데니즈에는 패러글라이딩 사업을 하는 업체가 9개 있다고 한다. 5개는 고정적으로 성업 중이고 나머지 4개는 ‘생겼다 망했다 이름을 바꿔서 다시 시작했다’의 반복이란다.

욀뤼데니즈 해변. 하늘은 푸르고 바다는 잔잔하다.

가까이 가보면 모래가 아니라 이런 작은 돌들이 깔려있다.


해변을 거닐다


바바산에 길을 닦고 패러글라이딩의 기반을 마련한 건 관공서였다고 한다. 물론 입장료를 받고 관광수입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녀는 한국인마다 신기하다는 듯 반복하는 질문에 약간 짜증나는 기색도 없진 않지만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는다. 사진을 찍자고 하니 극구사양이다. 조금 조르면 오케이 할 줄 알았는데 끝까지 손사래를 친다. 실력부족인가? 터키사람들은 카메라만 들이대면 활짝 웃어주는데 말이 통하는 한국인의 사진을 찍는데 실패하다니. 얼굴을 내밀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이 있겠지. 그거야말로 존중받아야할 프라이버시. 몰래 한 장 찍을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깨끗하게 포기한다. 헥토르는 다큐팀의 패러글라이딩 비용을 끝내 안 받는다. 인터뷰에 응해주고 여기저기 안내도 하고 직원들 일당도 나갔을 텐데. 고마운 일이다. 설령 고도의 장삿속이 숨어 있다고 해도 고마운 걸 ‘속 보인다’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헥토르의 사업이 번창해서 한국 청년들에게 좀 더 많이 베풀기를 기원하면서 끝내 이름을 묻지 못한 그녀와도 작별을 한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욀뤼데니즈 해변을 탐색해볼 차례. 얼마나 아름다우면 지중해 최고의 해변이라는 찬사가 붙어 있을까. 헌데 여기도 입장료가 만만치 않다. 에구, 어디 가나 그놈의 돈.

해변에 세워둔 구조물 사이로 지나가는 배는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산, 바다, 숨은 배...

욀뤼데니즈는 ‘죽음의 바다’ ‘고요한 바다’ 라는 뜻이다. 물에 들어갔다 하면 죽어서 나온다는 잔혹동화 같은 얘기는 아니고, 죽은 듯 잔잔한 바다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정말 잔잔하긴 하다. ‘X물에도 파도가 친다’는 말이 있듯이, 어지간한 호수도 기본적인 물결이 있는 법인데. 파랑보다는 초록에 가까운 바다는 한없이 투명해서 속이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2km 정도 길게 뻗은 백사장에는 아직도 피서객들이 많다. 눕고 엎드리고 뒤집고, 오븐 속의 생선처럼 몸을 태우기에 여념이 없다. 물이 깊지 않아서인지 노인들도 많다. 그나저나 이렇게 살만 태우고 놀면 소는 누가 키우나. 일중독자 아니랄까봐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백사장은 모래가 아닌 작은 돌들로 이뤄졌다. 엄격한 의미에서 백사장이 아니라 백석장(白石場)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고운 모래가 깔린 해수욕장이 생각난다. 비가 많았던 지난여름엔 얼마나 썰렁했던지. 지금은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기 어렵겠지. 백사장을 지나 블루 라군(blue lagoon) 쪽으로 향한다. 라군은 모래언덕 등에 의해 바다와 격리된 호소(湖沼)를 말한다. 일반 호수와 다른 건 지하에서 해수가 스며들거나 바다와 연결되는 수로가 있어 염분농도가 높다. 일종의 바다호수인 셈이다. 이쪽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바다호수' 블루 라군.

해먹을 흔들어 주는 아빠. 잠이 들어도 끈은 놓지 않는다. 그게 '아비'다.

 

블루 라군을 아십니까

블루 라군 하니 ‘푸른 산호초’라는 제목으로 개봉됐던 영화 ‘블루 라군’이 생각난다. 브룩 쉴즈(Brooke Shields)의 백치미에 가까운 청순한 아름다움은 얼마나 많은 청춘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지. 또 영화 속의 섬과 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그나저나 브룩 쉴즈는 지금 어떻게 늙어가고 있을까. 1965년생이니 40대 중반이 넘었고, 배우로서는 환갑이 지난 나인데…. 별 쓸데없는 걱정을 다하고 있다. 이곳 역시 영화 속의 풍경만큼이나 아름답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안온함을 더해준다. 해변을 벗어나 느린 걸음으로 홀로 걷다가 나무 그늘로 들어가 잠시 몸을 기댄다. 저만치 해먹에 아이를 재워놓고 흔들어주는 젊은 아빠가 보인다. 아빠는 아이가 깰까봐 깊이 잠들지 못하고 조그만 소음에도 벌떡벌떡 일어난다. 정지된 풍경에 그 작은 그림 하나를 더하니 세상이 느닷없이 사랑과 평화로 가득 찬다. 욀뤼데니즈를 떠나 돌아오는 길에 조선소가 눈에 띄어 들러 보기로 한다. 숙박하고 있는 호텔과 멀지 않은 곳이다. 말이 조선소지 노천에서 목선을 만드는 곳이다. 목선이지만 건조 중인 배는 제법 커서 30m는 충분히 될 것 같다. 골조를 세우고 송판을 배의 모양에 따라 곡선으로 만들어 붙이는 방식이다. 그 큰 배에 단 두 명이 달라붙어서 망치질을 하고 있다. 쯧쯧, 저 배는 언제나 바다로 나가볼까.

이 큰 목선에 두어 명이 올라가 망치질을 하고 있다. 저 배는 언제나 물 구경을 해보나.

터키는 국토의 3면에 바다를 끼고 있으면서도 조선산업 역시 원시적 수준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옛날에는 지중해를 품에 안고 천하를 오시했지만, 초원에서 말을 달리던 튀르크족이 이 땅을 정복한 뒤에는 배고 바다고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페티예의 조선소는 이 동네에 모두 모여 있다고 한다. 그래봐야 가내공업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3곳뿐이다. 우리가 들른 곳이 그나마 가장 규모가 크고, 다른 두 곳은 배를 만들기보다는 수리하는 정도다. 부자들은 배를 외국에서 수입해서 쓴다고 한다. 배를 만드는 나무는 주로 아프리카에서 들여온다. 잠시 뒤 쉬는 시간인지 목재를 자르고 켜던 인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앉는다. 배 위에서 망치질을 하던 사람들도 내려와 합류한다. 예외 없이 차이를 마신다. 앞에서도 밝힌 적이 있지만 터키사람들의 차이 사랑은 유별나다. 차이가 없는 터키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하루의 시작도 끝도 차이와 함께한다. 보통 하루에 10잔 이상, 많이 마시는 사람은 20잔까지 마신단다. 한 시간에 한 잔씩 마신다고 하면, 차를 마시기 위해 네 시간만 자야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직접 끓이기도 하고 주문해서 마시기도 하는데 가격은 비교적 싼 편이다. 그래도 500원씩만 쳐도 하루 20잔 이상을 마시면 살림이 거덜 날 판이다. 그래서인지 여럿이 모인 곳에는 대개 차이를 끓일 수 있는 준비를 해놓았다.

나무를 곡선형태로 만들어 붙이는 형식으로 배를 짓는다.

수리를 위해 대기 중인 배들.


터키인들의 차이 사랑


어느 동네를 가든지 차이를 파는 차이하네(Cayhane)나 차이에비(Cayevi)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도심에서도 야외 찻집인 차이 바흐체시(Cay bahcesi)가 곳곳에 있다. 일터에서도 어김없이 차이를 마시는데, 쉬기 위해 차이를 마시는 게 아니라 차이를 마시기 위해 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터키의 차이는 19세기 후반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에서 전해져 왔다고 한다. 차이라는 말은 중국의 차(茶)에서 왔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녹차가 발효되면 우롱차가 되고 거기서 발효가 더 진행되면 차이가 된다. 차이를 더 발효시키면 홍차가 된다. 그래서 차이는 엷은 홍차 맛이 난다. 기호에 따라서 설탕을 적당히 넣어서 마시면 된다. 난데없이 차이 얘기가 길어졌지만 터키를 이야기할 때 차이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에 한번쯤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차이와 비슷한 것으로 짜이가 있다. 인도나 네팔 등에서 마시는 밀크티를 말한다. 그 동네 발음이 ‘짜이’에 가깝다는 것이지 이것도 ‘차이’가 원음이다. 이름이나 뿌리는 같지만 제조법은 많이 다르다. 냄비나 주전자에 소량의 물로 홍차를 끓여낸 뒤 우유를 부어 장시간 우린다. 이후, 설탕을 넣어 맛내기를 한다. 우유가 들어가는 게 차이와 가장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짜이를 파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차이 한 잔 하실까요. 저 붉은 색의 유혹이란.

조선소 인부들의 휴식시간. 자세히 보면 모두 차이를 들고 있다.

차이를 마시던 인부들이 어슬렁거리며 구경하는 나를 손짓으로 부르더니 시커먼 차이 주전자에서 한잔을 따라준다. 잔은 자신이 마시던 걸 물에 대충 헹군 것이다. 사양을 미덕으로 삼는 한민족의 후예답게 손사래를 몇 번 쳤지만, 인심을 미덕으로 삼는 튀르크족의 후예답게 쉽사리 물러날 자세가 아니다. 터키 말을 알아야 구체적으로 사양이라도 하지. 물론 내가 차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아니, 그 맛에 은근히 반해서 휴게소에서 다른 사람들이 커피를 마실 때도 난 차이를 마시곤 했다. 호텔에서 식사를 할 때도 커피 옆에는 늘 차이 주전자가 놓여있기 마련인데 난 망설임 없이 차이를 선택한다. 사양한 것은 물론 체면 때문이다. 길바닥 체질인 내가 언제 찬밥 더운밥 가렸던가. 못이기는 체 홀짝거리며 한잔을 마셨더니 이 남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얼른 또 한잔을 따라준다. 어라? 이러다가 차이로 배를 채우겠네. 얼른 입에 털어놓고 늙은 노새처럼 헤벌떡 웃으며 잔을 넘긴다. 고마워하는 마음을 알아달라는 뜻이다. 그도 더 이상 권하지는 않는다. 원래 터키인들은 잔이 차면 곧바로 채워주는 것이 손님을 잘 대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 마시고 싶을 때는 나처럼 헤프게 웃지 말고 차 스푼을 찻잔 위에 살짝 올려놓으면 된다.

남녀가 함께 예배를 보지 않는 이유

나뭇잎을 뜯어먹는 개. 저렇게 키우면 사료값 안 들어서 좋겠다.

아무튼 이렇게 타인에 대해 별 경계도 없고 인심도 좋은 게 바로 터키 사람들이다. 낯선 사람일지라도 무언가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게 또 우리나라 사람들의 속성이 아니었던가. 몇 십 년 전만 해도 그런 나눔의 인심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산업화 현대화 도시화라는 ‘화’자 돌림의 괴물들이 온 국토를 점령하기 전까지는…. 아무데나 주저앉는 바람에 톱밥이니 흙이니 묻은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서는데 바닥에 사지를 펴고 늘어져 있던 큰 개도 느릿느릿 따라 일어난다. 이 나라의 동물들에 대해서는 따로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천국이 따로 없다. 나를 전송이라도 하려고 일어난 줄 알았더니 커다란 화분에 가서 간식이라도 먹듯, 나뭇잎을 아작아작 뜯어먹는다. 이 동네 개들은 밥 대신 잎을 먹고 사나? 그럼 신선개? 밥값은 따로 안 들어서 좋겠다. 한국에서는 헛소리 하는 사람에게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한다’고 하는데. 신기해서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노인 한 분이 다가오더니 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빙빙 돌린다. 그러면서 "problem"이란다. 머리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겠지? 아무리 봐도 미친개는 아닌 듯한데…. 에이, 아저씨, 전요… 솔직히 말하면 아저씨가 더 의심스러워요. 호기심 많은 이곳 사람들은 내가 무언가 하고 있으면 와서 열심히 들여다보다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거리낌 없이 씨익~ 웃는다.

걸어서 호텔로 돌아가는 길. 넘어진 배를 보았다. 홀로 넘어진 배는 홀로 일어서지 못한다.

노인과 그런 미소를 주고받는데 마침 근처의 모스크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울려 퍼진다. 전국에는 모두 7만7000여 곳의 모스크가 있기 때문에 어느 궁벽진 곳에 가도 이 소리를 피할 길은 없다. 며칠 듣다보니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한다. 새벽에도 아잔소리 때문에 잠을 깨는 일은 더 이상 없다. 아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일손을 멈추고 모스크로 가는 건 아니다. 하긴 하루에 다섯 번 씩 쫓아다니다가는 언제 일을 하나. 배를 만드는 인부들도 자신들의 일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다. 아잔소리를 듣는 순간, 믿음 씨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터키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들과 같은 층에서 기도하는 게 금지돼 있다고 한다.(전 이슬람권이 그런지는 못 물어봤다) 메카를 향해 절을 할 때, 여자 뒤에 있는 남자들이 ‘나쁜 생각’을 품어 정신이 혼란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믿음 씨는 나쁜 생각이라고 표현했지만 엉큼한 생각이라는 말이 더 맞겠지. 이건 남녀차별이야? 여성 보호야? 이렇게 순박하게 생긴 아저씨들도 그런 생각을 하나. 이럭저럭 저녁 시간이 가까워온다. 시내로 보충 촬영을 나가는 다큐팀과 헤어져 지척에 있는 호텔까지 걸어간다. 페티예에서의 마지막 밤은 홀로 고적하게 보내볼 생각이다.


추천(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sagang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송지국 2011/12/19 14:04  Addr Edit/Del Reply

    저도 '그녀'가 궁금하군요. 저 같으면 우리나라 다른 지역에 가서 살라고 해도 낯설고 불편할 텐데.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터키의 지중해 쪽에 가면 꼭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이번 회도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이 궁금해집니다.

    • sagang 2011/12/19 14:06  Addr Edit/Del

      예, 저도 그 용기가 부러웠습니다. 저 역시 여행은 자주 다니지만 다른 곳의 정착은 아직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언젠가는 떠나야하겠지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2. 김종수 2011/12/19 17:14  Addr Edit/Del Reply


    왈뤼데니즈 해변은 마치 우리나라의 몽돌해변 같네요.
    브룩 쉴즈, 한때 정말 사랑했던 여배우..
    얼마전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아름답던데요

    • sagang 2011/12/19 17:25  Addr Edit/Del

      부룩 쉴즈를 보셨군요. 서양 여자들이 나이를 먹으면 많이 망가지는 경우가 참 많은데 여전히 아름답다니 다행입니다. 첫사랑을 만나지 말란 말이 있듯이, 아름다움으로 기억된 것들은 깨진 다음에 보고 싶지 않을 때가 많은 법이지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3. 미명 2011/12/19 17:29  Addr Edit/Del Reply

    놀랍도록 용기있는 '그녀'의 이야기에 감동했다가
    해먹을 흔들어주는 아빠의 사진에서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짠-해졌다가..
    흘러 흘러 개 풀뜯어먹는 소리에 빵 터졌습니다. ㅎㅎ

    웬지 조금은 심드렁한 터키인이 손가락으로 개를 가리켰다가
    머리 근처에서 휘휘 돌리며 프라블럼, 하는 모습과
    작가님의 으흠? 리얼리? 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 듯이 그려졌어요. ㅎㅎ

    오늘도 즐거운 터키 여행, 감샤~합뉘당~~~

    • sagang 2011/12/19 17:33  Addr Edit/Del

      그 개는 정말 이상했어요. 우리나라의 개들도 가끔 풀은 뜯어먹긴 하지요. 풀은 동물들의 소화제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호랑이도 먹는 걸요.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때가 돼서 도시락을 꺼내 먹 듯, 정식의 식사를 즐거던 걸요. 그러니 프라블럼 소리가 나오지요. 이제는 그 개까지도 그리워집니다.

      이번 여행도 함께 해줘서 고맙습니다.

  4. 부평초 2011/12/19 22:19  Addr Edit/Del Reply

    저 헥토르라는 인물 지난번과는 조금 달라보입니다. 본인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웃으니까 정말 산적 같아요.

    배 만드는 풍경이 인상적입니다. 옛날 우리나라도 저렇게 만들었을까요? 보통 일이 아닐 텐데. 터키 문화에 대해서 많은 걸 배우고 갑니다.

    • sagang 2011/12/20 08:45  Addr Edit/Del

      산적 같다는 말 헥토르에게 전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읽은 것까지는...^^ 그래도 복합적 인물이라니까요. 배, 우리도 저렇게 만들었겠지요? 커다란 조선소만 알다가 저곳을 가니까 어찌 보면 낭만적이더라고요. 함깨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5. mowol 2011/12/20 10:05  Addr Edit/Del Reply

    개도 풀을 먹습니다. 저도 어릴 때 보았거든요. 어른들 말씀으론 개 뱃속에 회충이 있으면 풀을 먹는다고도 하고, 무슨 비타민이 모자라면 풀을 뜯어먹는다고 하네요. 어쨌든 터키 개도 한국 개도 살기 위해선 그 먹이습성이 비슷한가 봅니다.

    • sagang 2011/12/20 10:12  Addr Edit/Del

      예 그렇습니다. 저희 집에 키우던 개도 산책만 나가면 풀을 뜯어 먹고는 했습니다. 문제는 터키에서 본 그 개는 저 위의 댓글에도 언급했다시피 도시락이라도 먹는 듯 전문적으로 뜯어먹더란 말이지요^^ 그것 참...

      선생님, 날이 많이 찹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요.

  6. mowol 2011/12/20 10:12  Addr Edit/Del Reply

    차이 차는 맛이 서거나 달 것 같은데 그런가요? 진홍색 빛깔이 너무 곱습니다.

    • sagang 2011/12/20 10:13  Addr Edit/Del

      시지는 않고요. 무척 답니다. 설탕을 많이 넣으니까요. 그리고 약간의 떫은 맛이 있습니다. 처음엔 그저 그랬는데, 몇 잔 마시다보니 은근히 중독성이 있더라고요. 아, 이런 때 한 잔 마시고 싶네요.

  7. 전경미 2011/12/20 13:10  Addr Edit/Del Reply

    여행 갔다가 눌러 앉을 만큼 매력적인 곳이겠지요. 폐티예!
    무슨 다른 사연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미스터 헥토르는 웃는 모습이 더 아자씨 같고요. ㅎㅎ
    욀뤼데니스 해변!
    지중해 최고의 해변이라니 가히 그 아름다움은 상상이 안 가지만,
    이렇게 작가님 사진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봅니다.
    죽음처럼 잔잔하고 고요한 바다라니 더 매력적입니다.
    아빠가 잠에서조차 놓치지 않고 흔들어 주는 해먹에서 잠든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잠을 잤겠지요.
    터키인의 차이 사랑 대단하네요. 저도 차이 한 잔 마시고 싶습니다.
    개 풀 뜯어 먹는 소리가 정상이란 것도 오늘 알게 되었고 ㅋㅋ
    오늘도 흥미진진 재미있게 여행기 감상하고 갑니다.
    폐티예에서의 마지막 밤은 홀로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

    • sagang 2011/12/20 13:38  Addr Edit/Del

      여행 갔다가 눌러앉고 싶은 곳이 저도 참 많았는데... 그녀와 제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생각을 해봤더니 역시 '책임'의 문제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결정적인 것 또 하나. 나이와 용기는 반비례 한다는 것. 그래서 젊을 때 많은 도전을 해봐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눌러앉는 것도...^^

      죽음처럼 고요한 바다. 그곳에서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그렇다고 정말 죽을 생각까지는 없었고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곳에서 죽을 생각을 하다니... 그게 사람에게 내재된 모순일지도. 이렇게 쌀쌀한 날, 차이 한 잔 권하고 싶네요.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8. 정암 2011/12/20 18:19  Addr Edit/Del Reply


    조선소에서 뚱땅뚱땅 망치질하는 소리까지 들릴 듯 합니다.

    곡선으로 좌악 빠진 멋들어진 용골이 마치 바이킹 배 같습니다.

    그 배의 선장은 핵토르가 하면 잘 어울릴 듯!

    오늘도 행복한 여행 감사합니다.

    • sagang 2011/12/20 18:43  Addr Edit/Del

      저도 바이킹을 연상했습니다. 해적선으로 쓰면 딱 좋겠다. 어쩌면 해적선을 만들던 기술이 전해내려왔는지도 몰라요. 그 동네가 옛날에는 바다의 왕자들을 많이 보유했거든요. 나중에 제가 그런 배 하나 사면 헥토르 선장 시키지요^^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9. 샬롬 2011/12/22 01:06  Addr Edit/Del Reply

    선생님~ 이번 주는 이제야 들어와 여행기를 감상합니다.
    와~벌써 많은 분들이 선생님 여행기에 동참을 해 주셨네요~^^
    이번 11회는 제목이 의미심장해서 터키의 또다른 슬픈 역사가 감추어져 있나보다 하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읽어 내려 갔습니다.
    그런데 욀뤼데니즈와 블루라군의 멋진 해변가의 모습에 이어, 목선을 건조하는 조선소의 풍경속에서 비춰지는 선생님의 구수한 내레이션이 그만 반전이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번 회에도 어김없이 한바탕 웃었습니다^^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속 이야기에 웃음 포인트가 가미되니, 이번 여행도 행복 가득입니다.
    정말 재밌게 잘 봤습니다.
    선생님, 이번 회에선 터키인들의 소소한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담아갑니다.
    은혜와 행복 가득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바랍니다.

    • sagang 2011/12/22 09:46  Addr Edit/Del

      특별히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 약간의 '낚시성'이 느껴지는데요^^ 하지만 현지에서는 분명 죽음의 바다로 부릅니다. 거기도 과장법이 좀 심한가봐야. 우리 어른들이 맨날 '죽겠다'고 하시듯이.

      제가 여행기를 쓰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풍경이 아니고 사람입니다. 그중에서도 평범한 이들의 살아가는 모습. 거기에 모든 것이 들었지요. 참 많은 동질성을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올해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10. 바쉬키르 2011/12/22 14:54  Addr Edit/Del Reply

    터키가 참 넓고 광대한 나라에 찬란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죠...
    직접 여행하신다니 참 부럽습니다.
    헥토르 선생하니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 왕자가 생각납니다.
    뜬금없이 호메로스 선생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의 서사시가 진짜인지 궁금해집니다.
    실리만이 발굴했다는데 유품이 조작되었다는 글을 읽은적이 있었거든요

    • sagang 2011/12/22 15:24  Addr Edit/Del

      그렇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갖고 있더라고요. 왜 우리는 세계사에서 이런 걸 배우지 못했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트로이는 미처 못 가봤는데, 저도 좀 궁금합니다. 다음번엔 꼭 한 번 가보고싶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고 흔적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11. 캔들 2011/12/22 15:17  Addr Edit/Del Reply

    같은 나라를 여행했는데도 전혀 다른곳이 보여지고 쓰여지니 과연 넓은 곳이라 생각됩니다.
    우연히 알게되어 1회부터 찾아서 쭉 읽었더니 벌써 끝까지 오게 되었네요.
    저희 딸도 베낭 여행을 갔는데 저와는 많이 다른곳을 갔었고
    선생님의 여행지를 따라간것 같아 더 반갑습니다.
    선생님의 글에 매력을 느껴 자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sagang 2011/12/22 15:27  Addr Edit/Del

      제가 터키라는 나라를 가보니 대충 훑어본다고 해도 네 번은 가야겠더라고요. 현지에서 몇 달을 돌아다니는 한국 사람을 봤는데, 그래도 다 다니지 못했다고... 그만큼 넓고 볼 게 많은 나라인 것 같습니다. 터키를 다녀온 분을 뵈면 괜히 동지의식 같은 게 생깁니다. 게다가 제 글을 읽어주셨으니 더욱 반갑습니다. 자주 오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12. 주영신 2011/12/23 17:09  Addr Edit/Del Reply

    죽음의 바다에서 소는 안키우고(ㅋ) 살태우고 싶어집니다..

    이번주는 사무실 일이 왜 이렇게 바쁜건지
    11회를 아마 몇 십조각으로 나눠 읽기를 몇번이나 했는지....
    그래도,,사강님의 재미난 글솜씨에,,마음의 휴가는 얻어갑니다..^^

    • sagang 2011/12/23 17:50  Addr Edit/Del

      연말 턱 하시는군요. 바쁜 분들 많더라고요. 그 바쁜 중에 찾아주셨으니 제겐 더욱 고마운 일이고요. 그 잔잔한 바다에서 탈 태울 기회를 경품으로 드리겠습니다.^^(정말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음 주에는 좀 널널하게 보시길... 고맙습니다.

  13. 유명남 2011/12/24 10:25  Addr Edit/Del Reply

    내일이 벌써 성탄절이네요. 터키의 성탄절이 궁금해지네요. 저 예쁜 조약돌 깔고 앉아 붉은 차이나 한 잔 했으면 좋겠네요. 같은 지구촌에서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데도 , 터키는 강, 바다, 사람, 강아지까지 매우 청순하군요. 문명의 발달이 꼭 좋은 건만은 아닌가 봅니다. 성한 곳이 없는 우리나라 강산하고는 대조적이네요. 옛 것을 중요시하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잘 적응해야겠지만? 그 많은 관광객들이 터키로 몰리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오늘도 작가님 덕분에 흐르는 세월을 탓하지 않고 겸허히 삶을 수용하는 터키인들의 순진무구한 모습을 만나 봅니다. 이처럼 좋은 이미지를 가슴에 품었다가 나눔 사랑의 그윽한 향기 뿌려주시는 작가님이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중에 말걸리 대접 많이 받으실 겁니다. 차이 한 잔 하면서 편하게 숙제 마칩니다. 그럼 또 ...

    • sagang 2011/12/24 18:42  Addr Edit/Del

      글쎄요. 저도 터키의 크리스마스가 궁금해집니다. 국민의 98%가 이슬람교도지만, 그렇다고 국교를 이슬람교로 정해놓은 건 아닙니다. 그리스정교 계통의 기독교인들도 있지요. 튀르크인들이 차지하기 전에는 기독교 국가였으니 독특한 크리스마스 문화가 남아있을 겁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날이라니 가난하고 고통스런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온누리에 따뜻한 빛이 가득했으면 좋으련만.
      마음으로 따뜻한 차이 한 잔 보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4. 하늘비 2011/12/25 23:31  Addr Edit/Del Reply

    말씀처럼 1회부터 읽어야 겠습니다. 설렘으로 터키여행 준비하렵니다. 고맙습니다.

    • sagang 2011/12/25 23:48  Addr Edit/Del

      반갑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손 꼭 잡습니다. 글로 전해 드리는 여행 계속 함께 하시지요^^

  15. 로사 2011/12/29 09:54  Addr Edit/Del Reply

    헥토르 사무실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 궁금했는데 콧대 높으신 한국인 여성을 만나셨군요. 사진을 못 찍어 오시니까 얼굴이 더 궁금한데요. 그 아가씨 한 장 찍어주실 것이지. 흐흐. 이번 회에 올라온 헥토르씨의 얼굴은 어찌 보니 그가 말한 나이와 비슷해 보이기도 하네요. 역시 사진은 얼짱 각도가 있는 모양이예요. ^^

    11회 정도 읽으니 터키가 무척 가까운 나라로 느껴지고 그들은 저를 전혀 모르는데도 저는 혼자서 저곳의 사람들을 마치 이웃사람 같이 느끼게 되네요. 그것이 아마 사강님의 발자취, 글자취를 따라 여행하면서 얻게된 친근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강님의 터키 여행기를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람의 눈을 통해 보아지고 쓰여지느냐에 따라 같은 곳, 같은 사람도 다른 느낌으로 표현이 되어지고, 독자들은 그 작가의 마음과 같은 형태로 흡수하게 된다는 것. 사강님의 정서와 글을 통해 터키를 읽으니 그곳이 친근하게 다가서고 사람 사는 세상 어디나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있어 '사람과 사람'에 다이얼을 맞추고 있는 사강님의 다감多感한 시선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강님의 여행기가 좋습니다.

    11회는 지난 주 월요일에 읽었는데 차분히 답글을 드릴 시간이 없어 오늘에야 다시 왔네요. 이번 주에 올라 온 한 회의 읽을거리가 더 남았습니다. 덤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네요. 후훗.

    • sagang 2011/12/29 15:20  Addr Edit/Del

      그 아가씨. 본인이 이 글을 볼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까 말을 하는데요. 사실, 얼굴이 전혀 기억 안나요. 그저 평범했던, 고만고만한 한국인의 얼굴이었던 것 같아요. 하긴 자신의 사진이 자신이 자리를 비운 나라에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원하지 않았겠지요. 그래도 너무 극구 사양을 하니까 약간 섭섭하긴 했어요.

      그건 동의해요. 누구의 눈을 통해 보여지고 쓰여지느냐 많이 달라진다는 것. 다만 제가 좀 감성적이라 객관적인 그림을 그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아울러 합니다. 뭐든지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게 가장 좋겠지요. 그래도 터키를 가까운 나라로 느끼게 해드린 것만큼은 자랑스런 일이네요.

      격려, 고맙습니다^^

prev 1 2 3 4 5 ... 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