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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1, 2권이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책을 출판하기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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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4 08:30 길따라 바람따라

 

‘길따라 바람따라를 연재합니다. 지자체나 개인, 단체에 의해 끊임없이 이 생겨나거나 복원되고 있지만 아직 그 길들을 통칭할 만한 이름은 없습니다. 제주도에 올레길이 생기더니 지리산과 북한산에 둘레길이라는 명찰을 단 길이 태어났고, 또 어디엔 마실길이 또 어디엔 자드락길, 자락길이또 아직은 이름 없는 길, 잊혀진 길들도 많습니다. 주말마다 그 길들을 순례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보다는 길을 걸으며 저만의 시각으로 본 풍경,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 숨어 있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 될 것입니다. 많은 분들과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출발지인 모항 어촌체험관에서 바라본 개펄

 

 

변산마실길 안내도. 확인하실 분은 클릭!

 

시인 김춘수가 꽃이라고 부른 순간 꽃이 꽃이 되었듯이, 길은 사람의 발자국과 만나면서 비로소 길이 된다. 꽃이 꽃이 되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듯이, 길도 길이 되기 전에는 그저 산이고 들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길은 사람과 대지가 설레는 몸짓으로 나눈 교감의 흔적이다. 길은 또 망각의 존재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순간, 스스로 흔적을 지우며 다시 산이 되고 들이 되고 물이 되고 풀과 꽃받이가 된다. 그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나는 걷는다.

  풀과 낮은 꽃들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이곳이 바로 갯벌체험관

출발지 근처에 있는 안내도와 이정표. 거리표시는 제각각이었다.

 

 

나무마다 저렇게 안내 리본이 달려있다.

 

길을 만나기 위해 새벽길을 달린다. 오늘의 목적지는 전라북도 부안, 그 중에서도 변산반도 일대다. 천지에 길 아닌 곳이 없거늘 굳이 그곳까지 가는 이유는? 당연히 만나고 싶은 길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부안, 특히 변산반도 국립공원은 우리 땅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 중 하나다. 우리나라 최고의 반도공원인 이곳은 흔히 말하는 천혜(天惠), 즉 하늘이 선물한 땅임을 스스로 증명한다. 적절히 안배된 바다와 산, 그리고 숱한 섬들. 해수욕장만 해도 위도해수욕장 모항·상록·격포·고사포·변산섬은 또 어떤가. 위도·식도·정금도·달루도·대외치도·소외치도. 국가어항으로 격포항과 위도항이 있다. 전나무 숲길로 유명한 내소사는 고졸한 멋으로 사시사철 손짓한다. 그리고 곰소염전과 솔섬. 저녁 무렵 그 앞에 서보라. 아름다운 앞에서 몸이 떨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는 해안절벽이다.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것 같은 채석강, 중국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가 놀았다는 적벽과 닮은 적벽강. 이쯤에서 마쳐야 한다. 부안 자랑을 하자면 길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날이 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출발하자마자 산길로 이어진다.

산길에는 당연히 묘지도 있고. 햇살이 곱다.

위에는 마실길 가는 길이라 써놓고 아래에는 위험지역이니 접근금지란다.

 

변산 마실길은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외변산에 생긴 길이다. 마실은 마을(을 가다)’의 사투리. 추억의 샘을 자극하는 이름이다. 트레킹의 시작을 마실길의 3구간 1코스의 출발점인 모항어촌체험관으로 잡았다. 이곳에서 시작해서 왕포까지 11km를 걸어갈 계획이다. 이 길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 없다. 먼저 걸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사진을 보면서 가장 아름다울 것 같은 코스 하나를 찍었을 뿐이다. 물론 채석강과 적벽강을 거쳐가는 코스 역시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지만 이미 그곳은 여러 번 다녀왔기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됐다. 자동차를 어촌체험관 주차장에 두고 배낭에 비상식량과 물을 챙긴 뒤 씩씩한 걸음으로 출발한다. 그깟 11km 정도야. 수년 간 전국을 누비질 하듯 돌아다닌 내게는 걷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마실길은 총 4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노을길이라 이름 붙여진 1구간은 새만금 서두터-대항리패총-고사포 해수욕장-성천마을-하섬전망대-채석강 코스. 체험길이라는 이름의 2구간은 해넘이공원-이순신 세트장-상록해수욕장-솔섬-모항 갯벌체험장. 문화재길인 3구간은 모항-마동방조제-작당마을-진서리도요지-곰소염전. 자연생태길인 4구간은 곰소염전-구진마을-호암마을-호암저수지-줄포 자연생태공원까지다.

 

나무들 사이로 바다가 손짓한다.

걷다 보면 이런 비석도 만나고

꽃들과 한참 놀았다.

 

어촌체험관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국도를 조금 걷다가 바로 해안 쪽 소로로 들어선다. 나뭇가지에 마실길 리본을 달아두었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길 안내 리본은 물론이고 코스 지도, 이정표 등이 어린아이라도 찾아갈 만큼 친절하게 준비돼 있다. 길을 조성한 이들의 정성과 수고로움에 감사를 표한다. 그래도 하이에나처럼 냉혹한 내 눈은 옥에 티를 하나 발견하고 혼자 흐뭇해한다. 안내판 하나에 변산 마실길 가는 길해놓고 바로 밑에는 위험지역 접근금지라고 써놓았다. 여보세요, 아저씨! 저더러 가라는 말입니까, 가지 말라는 말입니까. 조금 걷자 길은 산을 향해 머리를 들이민다. 나뭇가지의 여린 잎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바다가 가슴까지 파랑으로 채색해준다. 길에는 참 많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작은 꽃들 사이를 조심조심 지나니 봄 햇살을 듬뿍 머금고 누워있는 묘지가 나타난다. 어느 분인지 저승에 가서도 팔자가 좋다. 늘 파도소리와 갈매기를 벗할 수 있을 테니. 조금 더 걷자 비석 하나가 반긴다. 사물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고 쓰다듬다보니 걸음이 자꾸 느려진다. 하지만 어떠랴. 어차피 이들을 만나러 온 것을. 

 

길이 깔아준 양탄자. 미안해서 조심조심 걸었다.

아우!! 뛰어들고 싶다.

다 걷어내지 못한 철조망이 날카로운 이빨로 으르렁거린다.

산 속 오솔길이지만 전혀 험하지 않다. 산과 바다 사이에는 철조망이 쳐진 곳도 있다. 전에 쳤던 것을 미처 거두지 못한 모양이다. 미처 날카로움을 갈무리하지 못한 가시들이 냉랭한 눈길도 틈입자를 지켜보고 있다. 얼마 전까지 이 곳은 군사지역, 즉 민간인 통제구역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자연은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돼 있다. 이데올로기가 낳은 불행은 가끔 이렇게 의외의 선물을 잉태하기도 한다. 전쟁 따위는 망각한 잔잔한 바다가 은빛 비늘을 반짝거리며 손을 흔든다. 구릉을 하나 넘어서니 느닷없이 개활지가 펼쳐진다. 누군가 농사를 짓다 묵힌 듯, 풀만 아우성치며 솟아오르는 묵정밭이 쓸쓸하다. 길은 연초록의 풀들을 양탄자 대신 내어 드문드문 찾아오는 손님을 환영한다. , 푹신하고 황홀한 이 감촉. 이렇게 마구 밟아도 되는 거야? 미안하기 그지없지만 돌아서 가는 길이 따로 없으니 신세를 지는 수밖에. 가지를 제멋대로 뻗은 개복숭아 나무가 연분홍꽃잎을 살짝 열었다. ‘자 붙은 이름과는 안 어울리게, 시집온 다음 날 새벽 우물가에 나온 새색시처럼 다소곳하다. 나무와 풀과 꽃과 새와 놀아주느라 걸음은 자꾸 늦어진다. 오가는 사람이 없는 길에서는 적막도 친구가 된다.

 

중간 중간 나타나는 작은 백사장(?)

길에서 만난 옹달샘.

굴 혹은 조개 캐는 아낙들

 

철조망 너머로 혹은 철조망이 걷힌 자리에 군데군데 작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이 길이 마실길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에는 민간인은 들어갈 수 없었던, 숨겨진 해수욕장이었을 것이다. 여름 날 가족이나 친구끼리 와서 오붓하게 쉬고 가기에는 딱 좋을 것 같다. 이참에 두어 평 말뚝이나 박아두고 갈까? 이마에서 송글송글 땀이 솟아날 무렵, 작은 옹달샘을 만난다. 주둔하던 군인들이 물을 긷던 샘터일까? 지금은 갈잎들이 차지하고 앉아 몸을 적시고 있지만 청소만 잘 해주면 길을 걷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감로수가 될 것 같다.(마실길을 관리하는 관계자가 이 글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잠시 산길에서 벗어난 길은 바닷가에 새로운 길을 연다. 저만치 굴을 따는 아낙네 둘이 햇볕 아래에 정물처럼 앉아있다. 걷기 시작한 이후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달려가 말을 걸고 싶을 만큼 반갑지만 그들은 굴을 따야 하고 나는 길을 걸어야 한다. 이 길에서는 사람도 그저 풍경일 뿐이다.

 

구름은 저렇게 아름답고

드디어 대숲을 만나다.

저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바닷가의 자갈들은 모처럼 만난 나그네가 반가운지, 발길마다 덜그럭거리며 노래를 한다. 길은 다시 산으로 향한다. 이 구간의 바다 풍경은 아름답다는 말의 한계를 실감할 만큼 황홀하다. 서해에도 이런 색깔의 물이 있었나? 옥색으로 빛나는 바다 위에 작은 어선들이 점점점 떠 있다. 이곳의 어부들은 물고기 대신 보석을 낚아 올릴 것 같다. 한참 걷다보니 느닷없이 대숲이 나타난다. , 여기구나. 사실 3구간 1코스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인터넷에서 발견한 이 대숲 사진이었다. 시누대들이 빽빽하게 터널을 이루고 있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서늘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싼다. 어릴 적 시누대를 깎아 연을 만들고 칼싸움도 하던 생각이 난다. 대숲은 제법 길게 이어진다. 중간에 군인들의 막사로 쓰였음직한 시멘트 구조물도 나타난다. 건물이 제법 큰 것을 보니 분대 병력 이상이 생활했을 것 같다. 지금은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문만 비바람에 늙어가고 있다.

 

산을 내려오니 이런 제방이...

마동마을을 설명하는 입간판

아무도 없는 방조제를 걷는다.

대나무터널을 나오니 드넓은 개펄이 눈앞에 펼쳐지고 길은 길게 이어진 방조제로 향한다. 산길의 끝에서 입간판을 발견한다. ‘옛날 선비가 이곳을 유람하던 중 유유동의 말재를 넘어 마동을 지나다 말이 쉬기에 알맞은 곳이라 하여 마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며동네 유래를 적어놓은 것이다. 말이 쉬기 좋은 곳이라 해서 마동(馬洞)이라딱히 전설이랄 것도 없고 크게 특별할 것도 없는 내용이지만 길손에게 무언가 전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와 닿는다. 숱한 길들이 생겨나고 복원되고 있지만 단순히 걷기만을 위한 길은 별 의미가 없다. 세월에 묻혀 잊어버린 이야기들을 캐내고 그걸 잘 포장해서 걸어놓을 때, 그 길에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나마 구전이 가능한 노인들이 세상을 뜨기 전에 채집하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외지 사람들을 부를 목적으로 길을 만드는 지자체에게 충고 삼아 하는 말이다. 그나저나 뭔가 좀 이상하다. 몸은 최소한 7~8km는 걸었다고 말하는데 이정표는 여전히 절반도 못 왔다고 쓰여 있다. 거리를 재는 센서에 이상이 왔나? 어쨌든 걷고 또 걷다보면 목적지가 나타날 터. 긴 마동방조제의 끝은 차도로 이어진다. 모처럼 차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로 올라선다. 고맙게도 인도 에 가드레일을 설치해놓았다.

 

 

잠시 차도와 조우. 인도를 잘 분리해 놓았다.

작당마을의 우물

근사한 카페를 지나친 길은 다시 몸을 낮춰 마을로 들어선다. 출발 이후 처음 만나는 마을이다. 헌데 동네 풍경이 범상치 않다. 수백 년은 묵었음직한 느티나무와 세련된 집들. 특히 언덕 위 느티나무 곁에 지은 집은 어지간한 별장은 울고 갈 만큼 근사하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역시 마을을 설명하는 입간판이 있다. ‘마을 뒷산 까치봉에서 까치 자웅이 마을로 내려와 정자나무에 둥지를 틀면서부터 풍어의 전성기를 이룬 칠산어장의 요충지로 각처에서 모인 등불들이 밤이면 꽃밭처럼 장관을 이뤄어법은 에헤야~ 데헤야~ 숨 쉴 곳 찾기 어려운 만담조로 늘어지지만 내용은 금세 이해가 간다. 까치가 둥지를 틀면서 풍어를 이뤘고 그 덕분에 마을 이름이 작당마을이 됐다는 얘기겠지. 왠지 느티나무마다 까치집이 주렁주렁 열렸더니. 까치에 얽힌 전설도 전설이지만 칠산어장의 요충지였다는 기록에 더욱 눈이 간다. ‘고기 반 물 반이라는 허풍까지도 허풍으로 들리지 않을 만큼 조기가 많이 잡혔다던 어장. 칠산바다에 대한 이야기는 많고도 많다. ‘칠산바다 조기튀난 제주바당 복쟁이 튄다라는 제주 속담도 있다. 칠산바다 조기가 뛰니 제주바다의 복어가 뛴다는 뜻이렸다. 오버하지 말고 분수껏 살라는 얘기겠지. 저 앞바다 어디쯤에 어선들이 힘차게 오가고 불끈불끈 힘줄이 튀어나온 어부들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경로당이 예쁘다.

부럽고 또 부러웠던 언덕 위의 집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걷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 그리고 낯선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부수적으로 제공한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경로당이 예쁘다. 그 옆에는 오래된 우물이 있다. 식수로 쓰지는 않지만 잘 단장돼 있어 보기 좋다.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언덕 위 느티나무집으로 자꾸 눈길이 간다. 저런 집에서 살아봤으면. 아침마다 느티나무에서 좋은 글이 하나씩 뚝뚝 떨어질 것 같다. 할머니 한분이 저만치서 걸어오길래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더니 고개만 까딱하고는 그냥 지나간다. 최소한 어디서 왔수?”쯤의 반응을 기대했는데 좀 무색하다. ‘이 생긴 뒤로 마을을 지나는 나그네들이 많아서인가? 조금 더 안 쪽으로 들어가니 할머니 두 분과 아직 할아버지라고 하기에는 조금 젊은 초로의 아저씨가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 중 할머니 한 분이 소쿠리에 가득 담긴 무언가를 다듬는다. 그냥 지나갈 수 있나. 인사를 하고 말을 붙인다.

할머니 뭘 다듬으세요?”

이거? 민들레라우

나물해 드시려고요?”

아니, 약에 쓰려고

초로의 아저씨가 거든다.

서방 해줄라고 이렇게 열심히 다듬는대요. 이게 거시기에 그렇게 좋다네

거시기에 좋다고? 거시기가 뭐지? 아저씨의 짓궂은 웃음으로 봐서 짐작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저 아저씨, 일은 안하고 쓸데없이 앉아서 누님들을 놀리고 있구먼.

 

길을 잘못 들어 느닷없이 걷게 된 갈대 길.

바닷가에는 쭈꾸미 포획용 소라껍질이

개펄...바다...그리고 배

아저씨와 비밀이라도 나눠가진 듯, 묘한 웃음을 미처 지우지 못하고 마을을 벗어난다. 한참 걸어가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이게 아닐 텐데. 길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아스팔트로 향해 있다. 그 흔하던 이정표도 없고 나무마다 달렸던 리본도 안 보인다. 표식을 놓친 건 아닌지 잠깐 돌아가 보기도 하고 수풀까지 뒤져보지만 마실길은 감쪽같이 꼬리를 감췄다. 마을을 벗어날 때쯤 안내판이 좀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아무래도 차도는 아닌 것 같다. 목적하는 방향과 비슷하다고 짐작되는, 제방으로 연결되는 작은 길로 내려간다. 기대하지 않았던 갈대밭이다. 사람이 다닌 지 오래인 듯 길은 이미 흔적을 지워가고 있지만 갈대 사이를 걷다보니 예상 못했던 선물을 받은 듯 행복해진다. 우리네 삶도 가끔은 이렇게 길을 잃을 필요가 있는 것일까? 뜻밖의 행운을 만날 수도 있을 테니. 아서라, 말아라, 이제 모험을 할 나이는 지났거늘.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걸음을 재촉한다. 제방으로 올라가 한참 걷다가 다시 나무에서 리본을 발견한다. 집 나간 강아지라도 만난 듯 반갑다. 안도감이 드니 맥주 한 잔 생각이 간절하다. 저만치 보이는 동네에는 구멍가게라도 있을까? 걸을 때마다 고민하는 부분이 짐을 꾸리는 것이다. 좋아하는 맥주를 충분히 지고 다니면 좋겠지만, 그러다가는 짐에 눌려서 발병 나기 십상이다. 그래도 이렇게 시원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을 때 마시는 맥주는 그 자체가 천국인데. 중간중간 나그네를 위한 가게를 두면 안될까? 물고기를 입에 가득 문 갈매기 한 쌍이 맥주나 그리워하는 중생을 비웃기라도 하듯 머리 위를 선회한다.

 

이곳이 왕포마을

왕포마을의 동백

왕포마을을 벗어나서 과수원길을 걷는다.

제방이 끝난 곳에서 만난 마을 이름은 왕포마을. 이름 한번 거창하다. 이정표를 찾아보니 아직도 5.9km밖에 걷지 못한 것으로 돼 있다. 오늘따라 내 걸음이 왜 이리 더딘 거야. 길옆에 활짝 핀 동백이 자꾸 놀다가라고 손짓하지만 오래 눈길을 줄 시간이 없다. 지금부터는 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왕포마을을 지나면서부터는 차도를 따라가다 보니 걷는 재미가 반감된다. 권선마을이라는 곳을 지나친 뒤 잠시 다리쉼을 하는데 이정표가 눈에 띈다. ‘모항 갯벌체험장 7.5km’ ‘곰소염전 5.3km’ 가만, 가만!! 뭔가 이상하다. 부랴부랴 프린트 해 온 안내 팸플릿을 꺼낸다. 어어? 이게 뭐야. 안내서에는 모항 갯벌체험장에서 왕포마을까지가 11km이고, 다시 왕포마을에서 곰소염전까지 12km로 돼 있다. 합하면 23km인데 눈앞에 있는 안내판 숫자는 합쳐봐야 12.8km밖에 안 된다어라? 왕포마을? 조금 전 지나온 그 마을이잖아. 그곳이 오늘의 목적지인데 왜 까마득하게 몰랐지? 맞다. 이정표 때문이다. 이정표에는 분명 5km 밖에 걷지 못한 것으로 돼 있었다. 그러니 11km를 걷기로 한 나로서는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11km5km로 둔갑한 사연은 뭘까? 아무튼 한참 지나치고 말았다. 왠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더라니. 더 걸은 게 억울한 게 아니라, 엉터리 이정표가 당혹스럽다. (뒤에 확인해보니 모항 갯벌체험장 출발지에 서있는 안내도에도 곰소까지 23km로 돼 있고 바로 옆의 이정표에는 12.5km로 돼 있었다. 어느 장단에 춤을?)

 

나를 돌아서게 한 이정표. 갯벌체험장 7.5km 곰소염전 5.3km라고 적혀있다.

나물 캐러 가는 할머니를 보면서 마음을 달래야지.

이제 돌아가야 한다. 갈 때는 버스를 타기로 했으니 버스 정류장까지 되짚어 걸어 올라간다.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간다. 버스정류장에는 과일과 채소를 가득 실은 트럭이 한 대 서 있고 아저씨는 큰 비닐봉투에서 나물을 꺼내 작은 봉투에 나눠담고 있다.

여기서 모항까지 가는 버스 있을까요?”

딱 한 마디 대답하더니 얼른 트럭을 몰고 가버린다.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 좋으련만. 내가 강도같이 보이나?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는 올 기미가 없다. 이러다가는 다음 일정이 펑크 날 것 같다. 혹시나 싶어서 가져온 택시 전화번호를 꺼내 한참 망설이다가 전화를 건다. 위치를 대고 모항까지 택시비를 물으니 15천원이란다. 생각보다 싼 편이다. 블로그에서는 채석강까지 3만원 정도한다는 정보가 있었는데. 할 수 없지. 딱 오늘만 택시로 돌아가기로 한다. 대신 다음 여행지에서는 벌칙으로 걸어서 돌아가기로.

 

관선마을. 이곳에서 돌아섰다.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 내 배낭만 쓸쓸하다.

택시 안에서 기사에게 버스가 안 왔던 이유를 듣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안 오지요?”

, 그렇네요

그럴 이유가 있어요. 이 코스를 다니는 버스회사 사장이 돈을 떼어먹고 튀었거든요. 어차피 정부에서 받는 50% 지원금으로 운영하는 게 시골버스인데, 사장이 튀어버렸으니 기사들만 골탕을 먹었지요

기사들만 골탕 먹은 건 아니다. 나처럼 버스를 타고 출발지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도 골탕이다. 아니, 정말 난감한 건 버스에 의지해서 장이라도 봐야하는 촌부들이다. 왠지 버스정류장에 누군가를 규탄한다는 표어가 덕지덕지 붙었더라니. 택시를 타니 모항까지는 금방이다. 짧지만 길었던 일정은 끝났다. 아름다운 풍경은 아름다운대로 가슴에 남고, 해프닝은 또 해프닝대로 가슴에 남는다. 걷는다는 행위, 가장 원초적인 몸짓은 걸은 만큼의 뿌듯함으로 내 안에 기록된다.

 

 

 

[꼬리] 마실길을 걷고 난 뒤에 다음과 같이 코스가 변경됐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이 뉴스대로라면 그날 걸은 곳은 6코스 쌍계제 아홉구비길이었고 역시 11km였습니다. 찾아가실 분들은 아래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부안군은 종전의 변산 마실길인 새만금전시관~부안자연생태공원 664구간 7코스와 내륙 마실길 746코스를 연결해 총 길이 14013코스로 연장, 개통키로 했다.

명칭도 부안 마실길로 통일키로 결정했으며 지역특성을 고려해 노선명도 변경됐다.

부안 마실길은 1코스-조개미 패총길(새만금전시관~송포, 5km), 2코스-노루목 상사화길(송포~성천, 6km), 3코스-적벽강 노을길(성천~격포해수욕장~격포항, 7km), 4코스-해넘이 솔섬길(격포항~솔섬, 5km), 5코스-모항갯벌 체험길(솔섬~모항해수욕장, 9km), 6코스-쌍계제 아홉구비길(모항해수욕장~왕포, 11km)이다.

7코스-곰소 소금밭길(왕포~곰소염전, 12km), 8코스-청자골 자연생태길(곰소염전~부안자연생태공원 11km), 9코스-반계선비길(개암사~우동마을, 14km), 10코스-계화도 간제길(계화도~석불간, 16km), 11코스-부사의 방장길(석불산~부안댐, 24km), 12코스-바지락 먹쟁이길(변산해수욕장~부안댐, 10km), 13코스-여인의 실크로드(성천~유유저수지~격포항, 10km)로 확대됐다.

이 같은 마실길을 탐방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총 34시간 30분 정도로 한번에 완주하는 데는 34일이 필요하다.

(나머지는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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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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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창남 2012/05/14 10:48  Addr Edit/Del Reply

    재미있게 보고 나갑니다. 국장님

  2. 2012/05/14 17:47  Addr Edit/Del Reply

    꺄아아아앙~ 벌써 새 시리즈가 올라왔네요
    *.* 완전 반갑사옵니다.
    어느새 변산까지 다녀오셨답니까.

    이번엔 국내라니 더욱 반갑고 또 반가운 여행기입니다.
    시간 날 때 한 자락 한 자락씩 따라 걸을 수 있겠네요. ^^*

    • sagang 2012/05/15 09:15  Addr Edit/Del

      시리즈를 시작할 때마다 처음은 어리바리 합니다. 몇 번 지나면 안 가고는 못 배기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자주 찾아주세요.

  3. mowol 2012/05/14 19:22  Addr Edit/Del Reply

    왕포마을 동백꽃 그리 붉지 않아 정겹습니다...바로 이런 울타리 동백이 우리의 꽃입니다. 쉬엄쉬엄 길따라 이야기 따라 구경 한 번 잘했습니다. 다음엔 어딜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 sagang 2012/05/15 09:16  Addr Edit/Del

      저도 화려하게 도배된 꽃은 금세 질립니다. 있는 듯 마는 듯 핀 꽃이 아름답지요. 선생님 모시고 전국 유람 해보겠습니다. 준비 되셨지요?

  4. 버팀목 2012/05/15 10:39  Addr Edit/Del Reply

    함께 잘 걷다 갑니다.

    • sagang 2012/05/15 11:09  Addr Edit/Del

      걸음 함께 해줘서 고맙네. 다음 번에도 같이 하세.

  5. 유명남 2012/05/15 11:04  Addr Edit/Del Reply

    그러지 않아도 요즘 근질근질 하던 차에 참 잘 됐네요. 올여름에는 서해안에서 뭔가를 잡아 보려했는데, 작가님의 재밌고 자세한 설명에다가 꼼꼼한 약도까지 넣어주셔 많은 도움 되겠네요. 주변 마을이 고즈넉해서 좋네요. 워낙 바닷가를 좋아해서 마음은 늘 먼저 가 있죠. 저 대나무 숲을 빠져나가면 뇌안, 심안이 좀 청량해질 것 같네요. 이제 작가님의 향긋한 체취를 느끼며 차근차근 따라 가렵니다. 그나저나 그리움이 자꾸 징징거리네요. 6월 3일은 좀 멀고? 이렇게 좋으신 여행에 합승시켜주셔서 고맙습니다. 강건 행복하셔서 더 멋진 여행, 재밌는 이야기 들려주시길 바랍니다.

    • sagang 2012/05/15 11:11  Addr Edit/Del

      함께 걸어주실 줄 알았습니다. 혼자 가는 것보다는 훨씬 덜 외롭지요. 저기 바닷가에 앉아서 캔맥주 하나 까먹는 재미는 말도 못합니다. 변산 쪽이 정말 아름다워요. 제가 가장 자주 가는 곳 중 하나지요.

      좋은 날 뵙겠습니다. 다음에 걷는 코스도 한번 초청하고요. 건강하십시오.

  6. 전경미 2012/05/15 11:37  Addr Edit/Del Reply

    저도 함께 걷는데 동참합니다. 이렇게 눈으로만 따라다니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감, 소박한 작은 것들조차 놓치지 않는 세심한 마음마저 닮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새 연재 소식 반가우면서도 상세한 정보나 감성까지 고스란히 전하시려는 작가님의 노고가 걱정되기도 해요. 때론 홀로 길을 걷다가 동반할 길 위의 도반이 그리울 때도 있으시겠죠? 그럴 때 한 번쯤은 응원하는 저를 떠올리시길요.^^ 길따라 바람따라~ 행복하게 동행하겠습니다.

    • sagang 2012/05/15 13:58  Addr Edit/Del

      자연 앞에 서면 늘 발가벗고 있는 것 같은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대체 나 같은 존재가 무어란 말인가. 겸손과 사랑을 배낭 가득 넣어오지만 막상 도시에 서면 자꾸 잊어버리고는 하지요.

      함께하는 걸음걸음 행복합니다. 응원하는 마음과 늘 동행하겠습니다.

  7. 하리마오 2012/05/15 13:16  Addr Edit/Del Reply

    길따라 바람따라, 제목만 봐도 벌써 가슴이 벌렁거립니다.
    전 바람따라 길따라 가려고 했다지요.ㅎ~
    언덕위에 집과 오랜나무의 헌걸찬 모습,조릿대터널, 갯가 풍경..
    정말 좋습니다. 좋은 곳 많이 다녀보시고 많이 소개해 주셔요.
    더욱 기대됩니다.^^

    • sagang 2012/05/15 13:59  Addr Edit/Del

      하하, 바람따라 길따라 가시는 분이 훨씬 멋있어 보입니다. 가끔 슬그머니 따라가겠습니다. 생래적인 역마살을 어쩌지 못해 또 하나의 어줍잖은 흔적을 남기고자 합니다. 늘 마음을 함께 해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8. 길모아 2012/05/15 21:49  Addr Edit/Del Reply

    또 첯걸음을 내딛으셨군요. 박수와 무한 응원의 마음 전합니다.
    걷기를 좋아하는 소생도 바람따라 길따라 더불어 형님따라 걷고 싶습니다.

    • sagang 2012/05/16 09:16  Addr Edit/Del

      고맙네. 첫걸음은 늘 두려움일세. 아무리 여러 번 해도... 딱히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네. 함께 걷기 운동 같은 거 한번 해보지 뭐. 재미있을 걸세.

  9. 하늘비 2012/05/17 20:55  Addr Edit/Del Reply

    마실길 첫 걸음 , 설렘 가득품고 함께 걸어보겠습니다.이름없는 길 잊혀진 길들 만나고 싶어요. 버스정류장 배낭이 있어 쓸쓸해 보이지 않아요 .....전 우리나라 숲길, 산길이 정말 너무너무 좋아요....제게 많은 공부가 될거같아요.

    그런데 인쇄는 할 수 없나요?

    • sagang 2012/05/18 14:03  Addr Edit/Del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름 없는 길은 다음 주 월요일 나옵니다. 꼭 챙겨보세요. 제가 이름을 붙였으니 이제는 이름 있는 절일까요? 제 글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인쇄는....제 사진이나 글 유출이 너무 많아서 일단 막아놓긴 했는데... 그렇다고 못 가져가나요. 인터넷에는 푸는 프로그램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하늘비님이 인쇄하신다면 방법을 강구해야지요^^

2012/04/30 08:30 사라져가는 것들

 

 

개미마을을 다녀온 건 봄꽃들이 막 기지개를 켜던 4월 첫째 주 토요일이었다. 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3호선 홍제역에서 내려 마을버스 7번을 타고 10분쯤 달렸을까? 어느 순간부터 버스는 숨을 헐떡거리며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창밖의 풍경도 조금씩 채색을 바꾼다. 언제 도심을 지나왔느냐고 시침 떼며 묻듯, 납작하게 엎드린 집들이 강낭콩처럼 박혀 있는 풍경이 이어진다. 그리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담장그림들. 허름한 집들과 화려한 그림, 어찌 보면 극단적 부조화다. 그런데 묘하기도 하지. 그 부조화가 유난히 마음을 당긴다. 마을 입구쯤에서 내려야하나 종점까지 가야하나 망설이다가 끝까지 가보기로 한다. 걸어 올라가는 것보다는 내려오는 게 편할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도 없지 않다. 그동안 개미마을을 몰라서 안 찾아가본 건 아니었다. 이곳이야말로 이름이 제법 알려진 곳 중 하나다. 담벼락에 그림을 그린 뒤로 벽화마을로 알려지면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사진쟁이들 때문에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내가 방문을 자꾸 뒤로 미룬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제 모습을 간직한 달동네가 아니라 이미 반은 관광지화 돼 버린 그런 곳 아닐까 하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또 서울에서 숱하게 많은 곳을 돌아다녀봤지만 제대로 된 달동네를 못 찾은 탓에 거의 포기상태였다는 점도 한몫 했다. 달동네라는 곳을 찾아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뷰파인더 안에 멀쩡한 건물이 끼어들거나 아파트촌이 먼저 손을 흔들고 나서기 일쑤였다. 내 사진 속에서 그들의 존재는 천덕꾸러기나 다름없었다.

 

 

해수천식이 골수에 박힌 노인마냥, 골골골 언덕을 올라간 버스가 끄응~ 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승객들을 내려놓는다. 이 동네에 사는 것으로 보이는 할머니 두어 분, 그리고 나처럼 카메라를 든 남녀 네댓 명. 동네 사람보다는 구경삼아 오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이곳은 정확히 서대문구 홍제39-81번지다. 등산복을 입고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간간히 눈에 띄는 것으로 봐서는 인왕산 등산로 나들머리 중 하나로 짐작된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빠른 시선으로 동네를 훑어본다. 순간 내 입이 떡 벌어지고 만다. 이 곳에 삶터를 열고 사는 분들에게는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완벽한혹은 순정(純正)달동네가 내 시선 속에 있다. 이제 이 정도의 달동네는 서울 어디에서도 보기 쉽지 않다. 전남 순천 드라마세트장 윗동네에서 거의 완벽한 상태의 달동네를 본 적이 있지만, 이미 사람이 떠나고 박제돼 걸린 곳이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저만치 시선의 끝머리쯤에 들어서 있는 아파트들조차 그리 거슬리지는 않는다. 이곳이 달동네임을 강조하기 위해 꼭 필요한 소품이 서 있는 것 같다. 대비는 또 하나의 조화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맨 먼저 화장실에 들른다. 달동네에 와서 화장실을 들른다는 건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소변이 급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달동네의 상징에 대한 신고식이기도 하다. 과거 달동네에는 오로지 공중화장실이 있을 뿐이었다. 집에 화장실을 둘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이 달동네에서 살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아침마다 전쟁이 벌어졌다. 한 손에 휴지를 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한번 들어간 사람이 영 함흥차사로 나오지 않으면 여기저기서 벌집 쑤신 듯 아우성이 일기도 했다. 그뿐인가. ‘내가 먼저 왔네, 새치기를 하네고성까지 심심찮게 오고가고는 했다. 하지만 이 동네의 화장실은 이미 과거의 그림자를 말끔하게 지우고 현대식으로 치장돼 있다. 다행이다. 먹는 것도 그렇지만 배설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얼마나 치사하게 만드는지. 하지만 이렇게 공중화장실이 번듯하게 지어졌다는 건, 아직도 집에 화장실을 두지 못하는 집들이 많다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소변을 보는데 초로의 남자 하나가 들어온다. 밤새 일을 한 뒤 잠깐 눈을 붙이고 나왔거나, 아니면 아직 알코올 기운에서 해방되지 못한 초췌한 모습이다. 일을 볼 생각은 안 하고 소변기 옆에 설치돼 있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계속 손에 말아 감는다. 저 정도면 열 번은 사용할 분량인데. 하긴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화장실에서 나와 본격적으로 동네 탐색을 시작한다. , 먼저 개미마을의 유래나 현황 정도는 알고 가야지. 이 마을이 서대문구 홍제동에 속해 있다는 소개는 이미 했고, 굳이 따져 말하면 홍제동에서 세검정으로 가는 방향이다. 34,000m²의 면적에 216세대 46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2009년 기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 언덕에 기대어 살고 있는 셈이다.

 

개미마을이 유래는 6·25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폐허 속을 헤매던 사람들이 이 언덕까지 올라와 천막을 치거나 판자를 엮어 바람을 피하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다른 달동네들이 생기게 된 사연과 그리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인디언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옹기종기 들어선 천막이 서부영화에 나오는 인디언마을 같아서였다나? 누구는 영화에 나오는 인디언처럼 소리를 지르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인디언촌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1983년부터는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주민들이 개미처럼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데, 글쎄 뭔가 좀 인위적인 냄새가 난다. 사실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동네는 이곳 하나만은 아니다. 송파구 문정동이나 종로구 행촌동에도 그렇게 불리는 마을이 있었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개미처럼 모여 사는 마을을 일컫던 보통명사 급의 마을이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맨 꼭대기에서 바라보니 마을 구조는 간단하다. 한 가운데에 큰길(커봐야 차 두 대 비켜가는 것도 허덕거린다)을 중심으로 집들이 양쪽으로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생선가시처럼, 중간 중간에는 작은 골목들이 가지를 치고 있다. 그리고 그 작은 골목의 끝에는 어김없이 가파른 언덕이나 계단이 있다. 어느 계단은 얼마나 길게 뻗어있는지 그 끝을 헤아리기 어렵다. 노인들에게는 나들이 자체가 고역일 것 같다.

 

그러잖아도 가끔 눈에 띄는 주민은 대부분 노인들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가난하다. 직업은 상당수가 일용직’. 국민기초생활수급에 삶을 의지하는 사람도 많다. 겨울이면 무엇보다 난방 대책이 가장 큰 문제다. 언덕바지니 평지보다 훨씬 더 추운데 형편상 연탄을 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눈이 와서 얼어붙으면 연탄을 사다 쓰는 게 보통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마침 길 옆에 연탄재 2개와 빈 상자에 담긴 새 연탄 두 장이 눈에 띈다. 분명 낱개로 사다 쓰는 집이리라. 태우고 버린 연탄재는 담장 옆에도 텃밭 가에도 지천이다. 이곳 사람들이라고 모두 자기 집에서 사는 건 아니다. 전세, 월세로 사는 주민이 절반, 나머지 절반이 이곳에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언덕 끝까지 달음질치듯 올라간 집들은 형태도 다양하다. 제법 번듯에 가까운 기와집도 있고 마지못해 흉내만 낸 집들도 많다. 하지만 대개는 세월의 때가 켜켜이 얹혀 있다. 지붕은 요즘 보기 드문 슬레이트가 많다. 원래 기와였던 지붕도, 비가 새다보니 여기 저기 천막으로 때우는 바람에 아예 천막지붕이 돼버렸다. 손바닥만 한 바위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은 집도 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많다더니만 전부 일터로 나간 걸까. 오고가는 주민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모처럼 오가는 건 대개 구경삼아 온 사람들이다. 빨랫줄에 줄줄이 걸린 가지각색의 빨래들만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말해주고 있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이 마을을 가장 큰 특징은 벽마다 그린 그림이다. 칙칙하고 스산한, 전형적 달동네의 모습이던 이 마을이 환하게 바뀐 건 지난 2009년부터라고 한다. ‘빛 그린 어울림 마을 1라는 작업이 계기가 됐다. 금호건설이 진행했고 서대문구청과 홍제3동 주민센터가 후원했다. 그림을 그린 이들은 건국, 상명, 성균관, 추계예술, 한성대학교의 미술대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마을에 들어와 하나둘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회색빛으로 죽어있던 담장들은 꽃으로 동물로 바다로 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났다. ‘환영’, ‘가족’, ‘자연진화’, ‘영화 같은 인생’, ‘끝 그리고 시작등 다섯 개의 주제를 담은 51가지의 그림들이 마을 곳곳에 입주해 새 식구로 자리를 잡았다. 그림들을 따라가다 보면 절로 미소가 나온다. 혓바닥을 내놓고 눈이 감기도록 웃는 개 앞에서 웃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은 심장에 철판을 깐 게 틀림없다. 엄마와 아기 돼지, ‘반가워라고 말하는 고양이 앞에서는 걸음이 절로 멈춰진다. 담장뿐 아니다. 가파른 계단에도 빨간 마크가 잘 익은 사과처럼 주렁주렁 달렸다. 사랑에 상처 받아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도 계단을 전부 오르고 나면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새로운 사랑의 싹이 움을 틔울 것 같다. 대학생들의 그림에 덧칠한 듯한, ‘아무새라는 제목이 붙은 서툰 솜씨의 그림에는 이런 문구도 있다. ‘아름다운 이 세상을 무지개처럼 아름답게 그리고 싶어요. 새로운 세상이 찾아올까요. 그럼 오고 말고그럼 오고 말고, 오고 말고혼자 되뇌며 걸음을 옮긴다.

 

길가에서 만난 수십 개의 화분들은 아직 아무 것도 품지 못했다. 저 화분들의 주인은 누굴까. 작년에는 어떤 꽃들을 피워냈을까? 배추나 상추 같은 푸성귀를 길러 냈을까? 인상이 제법 험악한 얼룩 개와 마주친다. 녀석은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게으르게 잠들었다. 사람이 다가가도 눈만 게슴츠레 뜨고 바라볼 뿐 움직일 생각은 전혀 없다. 험한 인상과 달리 눈빛은 순하기 그지없다. 그럼 너도 과대 포장이구나. 녀석이 경계선을 넘은 내게 조용히 경고한다. 당신 같은 사람 한 두 번 보는 거 아니거든? 제발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가. 그래도 나는 무시하고 셔터를 누른다. 이 동네에서는 그쯤은 용서가 된다. 동네의 중간쯤에서 오른쪽 언덕으로 길을 잡아 올라가니 할머니 한 분이 텃밭을 매고 있다. 일을 나갈 수 없으니 농사에 매달린 모양이다. 밭이라봐야 손바닥만 하지만, 이곳에서 희망도 일구고 가족들의 부식도 가꿔내겠지. 이 동네는 바늘 꽂을 만한 땅도 밭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여린 손을 내밀고 있는 돌나물 군락에는 제비꽃인지 얼레지인지 작은 꽃들이 봄을 노래하고 있다. 저만치 건너편 언덕에는 밭에서 무언가 태우는 할아버지가 보인다. 봄 농사를 준비하는 농촌마을 같다. 언덕에서 내려오니 작은 가게와 딱 마주친다. 등산객 두 명이 툇마루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간판도 없이 담장에다가 동래수퍼라고 써놓았다. 동래수퍼라. 혹시 주인이 부산 동래 출신?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누군가가 작은 글씨로 동래아래에 동네라고 써놓았다. , 원래는 동네슈퍼라고 쓰고 싶었구나. 더욱 정겹다.

 

 

 

음료수라도 하나 살까 싶어 안으로 들어가니 70년대 풍경이 펼쳐져 있다. 마치 영화세트장에 들어선 것 같다. 과자 몇 봉지, 세제 조금, 캔 음료 두어 박스, 간장. 그리고 음료나 맥주를 넣은 냉장고. 그게 전부다. 몇 개 되지도 않는 진열대는 빈칸이 더 많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소주병 두 개. 저런 소주가 어떻게 아직도 남아있는 건지. 큼직한 두꺼비가 그려져 있고, ‘眞露라고 한자로 써 있다. 물론 개봉한 흔적이 전혀 없는 새 병들이다. 여든 쯤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가게를 지키고 있다. 물건은 할아버지가 내주고, 몸이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는 앉아서 계산을 한다. 사실 둘이 손을 나눠야할 만큼 손님이 오는 것도 아니지만 오랫동안 그렇게 해온 듯 자연스럽다. 소주병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저런 게 아직도 남아있어요?” 물었더니 대수롭잖다는 듯 대답을 한다. “작정하고 보관한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아직까지 있네요하지만 분명 어쩌다보니남아있는 건 아니다. 대대로 물려받은 골동품처럼 애지중지하며 자랑스러워한다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다. 두 노인이 참 곱다. “어쩌면 그렇게 고우세요대답은 없지만 두 분이 수줍게 웃는다. 아무리 살아내도 곱다는 말만큼 좋은 말이 있을까. 가게를 나와 이리저리 발길을 옮기다가 낯선 간판을 하나 발견한다. ‘(가칭) 홍제3동 개미마을 지역주택조합설립 추진위원회’.

 

재개발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가건물 벽에도 그림꽃들이 피어났다. 이곳도 재개발이냐 보존이냐 문화특구 지정이냐를 싸고 논란이 오고 간지 오래다. 재개발을 주장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맞서는 형국이다. 문제는 워낙 가파른 산자락이고 용적률 확보가 안 되기 때문에 그만큼 경제적 가치가 없다는 데 있을 것이다. (마을을 다녀온 며칠 뒤 서대문 구청에 문의했더니 개발제한구역에서 지구단위계획지로 풀리긴 했지만 재개발 시행 여부에 대해 별 진전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누군들 시간의 덫을 피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이 마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다. 아파트가 들어서든 또 다른 용도로 쓰이든. 주민들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 됐으면 좋겠다. 집집마다 관리번호라는 게 붙어 있다. 105, 106, 107. 하나씩 헤아리며 내려오다가 지붕 위에 누워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고양이들을 만난다. 세상사 따위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뒤로 눕고 옆으로 눕고 엎드리고. 하긴 너희들이 무슨 걱정이 있겠니. 겨울이 온다고 연탄 걱정을 하겠니, 쫓겨나듯이 떠날 걱정을 하겠니. 천천히 걸어 황금색의 봄 햇살이 누추를 감싸는 마을을 벗어난다. 금세 공간이동이라도 한 듯 질주하는 차들과 인파 속에서 비틀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꿈을 털어버리기라도 하듯 마을을 돌아보며 혼자 중얼거린다. 그래, 특별한 기억으로 남길 건 없어. 사람이 사는 마을을 다녀왔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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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타닥타닥 2012/05/01 18:32  Addr Edit/Del Reply

    '그럼 오고 말고~'
    그렇게 오는 새 세상은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고
    가난하다고 서럽지 않은 그런 세상이겠죠.
    '누추'를 감싸는 햇살이 사강님의 시선에도 담겨있어서 위로받는 기분으로 감상했습니다.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것들 틈에서도 저토록 나른하게 따뜻함을 즐기는 고양이들이
    참 예쁘게 부럽습니다.



    • sagang 2012/05/02 08:16  Addr Edit/Del

      저도 저 '그럼 오고 말고'가 입에 붙은 듯 한참 제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가난이야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고 해도 서럽지 않은 세상, 차별 받지 않는 세상, 아프지 않은 세상... 늘 꿈꿔보지만... 그래요. 온다고 믿어야겠지요.

      제 '누추'한 시선과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 유명남 2012/05/03 08:24  Addr Edit/Del Reply

    어제 그렇게 후덥지근하더니 오늘 한 줄기하네요. 5월이라 행사가 많으시겠죠. 터키의 풍경하고는 전혀 다른 , 어릴 적 외가댁에 간 것처럼 친근감이 있네요. 아직도 도심 한 구석에 6~70년대의 고단했던 삶들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힘들고 불편해도 이웃사촌의 두터운 정 때문에 잘 버티고 있겠죠. 꼭 새로운 것만은 좋은 게 아니겠죠. 영원히 잘 보전 계승 되어야할 것들이 많겠죠. 그들의 애환을 저 소주병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잘 그려진 저 벽화처럼 우리네 가슴 벽에도 뭔가 좀 그려봐야겠지요. 그리움이 화석이 되듯, 우리네 우애도? 가깝고 편해서 좋은 동네 한 바퀴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요.
    작가님 요번 감성 대동번개 못 가시나요. 가시게 되면 같이 좀 갑시다. 그럼 또~

    • sagang 2012/05/03 18:26  Addr Edit/Del

      잠시 틈을 내어 청계천을 걸었습니다. 바람이 청량하던 걸요. 아무리 더워도 아직은 4월이라고 주장하듯.

      저 동네를 가면 정말 여기가 서울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순간적으로 공간이동을 해서 어느 시골에 간 것처럼 모든 게 과거형이지요. 저곳에 사는 분들이 소외되고 서럽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감성 번개는 못 갈 것 같습니다. 일정이 영 맞지를 않네요. 같이 모시고 가면 참 좋을 텐데. 또 따르 한번 뵙지요.

  3. 로사 2012/05/04 10:37  Addr Edit/Del Reply

    작가님과 사라져가는 개미마을 출사에 동행한 독자로서 평소에 읽던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작가님의 어떤 시선을 통과해서 한 편의 아름다운 글이 되어지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집 한 채, 풀 한 포기, 고양이 한 마리 조차도 전부 '마음'이라는 뷰파인더를 통해 보시는군요. 저는 오랜만에 여기에 들러 가히 감동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 그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벽이 예쁘네, 그림이 예쁘네, 낡은 것들이 고스란히 살아있어서 참 멋지네, 하고 다녀오는 사람들에게 이 글은 얼마나 귀감이 될지 말입니다. 사라져가는 것들의 소중함에 대해, 그 속에 있는 애환에 대해 얼마나 깊이 깨닫게 될지 말입니다.

    테크닉이, 기능이, 기술이 예술을 지배하려 드는 세상입니다. 물론 그 요소 없이 어떻게 예술이 있을까만, 문제는 그것'만' 설쳐댄다는 것이겠지요. 그런 팍팍한 세상에 작가님 같은 시선을 가진 작가가 있음이 감사합니다. 좋은 글, 예쁜 사진 잘 읽고 잘 감상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 sagang 2012/05/07 09:19  Addr Edit/Del

      독자, 혹은 지인들과 함께 현장을 다녀오면 약간의 후유증이 남아요. 글에서 적당히 뻥도 좀 치고 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거든요^^ 어? 저건 정말 뻥이다. 평소에도 늘 뻥을 치며 쓰는구나. 뭐 이런 소리 들으면 글쓰는 자의 가치가 좀 떨어지잖아요. 그래도 좋은 소리만 써줘서 고맙습니다. 사물을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속에서 참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특히 저는 '따뜻한 눈'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요.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예, 저도 테크닉만 이상 비대한 세상, 특히 예술의 세계에 대해 능력만큼만 한탄하고 있습니다. 테크닉이야말로 좋은 요소지만 잘못하면 달을 가리는 손가락에 불과하게 되니까요. 따뜻한 말, 그리고 함께 해줘서 고맙습니다.

  4. 전경미 2012/05/04 14:17  Addr Edit/Del Reply

    개미마을. 저도 얼마 전 검색해보고 알았어요. 홍은동(홍제동 바로 옆)에서 십수 년을 살고, 부모님은 아직도 거기 살고 계시는데 몰랐다니 이런 낭패가~ 했었어요. 조만간 부모님 집에 다녀올 때 다녀오려고요. 그 속에 담긴 삶의 이야기까지 꿰뚫어보시는 작가님의 시선을 따라 잘 다녀오겠습니다. 벌써 여름 날씨에요! 전 더위는 딱 질색이라 여름이 반갑지 않네요. 아직 봄을 보낼 준비도 안 되었는데 말이죠. ^^;; 건강 잘 챙기시고, 앞으로도 가슴 따뜻해지는 좋은 이야기 많이 들려주세요. 참! 저 떡두꺼비 진로소주로 술을 배웠는데? 저도 감회가 새롭네요. 크크.

    • sagang 2012/05/07 09:23  Addr Edit/Del

      가까이 있는 것은 잘 못보게 된답니다. 저도 카메라라는 게 생기기 전에는 제가 사는 동네를 잘 몰랐어요. 그렇게 큰 은행나무가 있는지, 원당샘이라는 오래된 샘이 있는지 그렇게 예쁜 들꽃들이 자라는지. 뷰파인더 속의 그들이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관심과 애정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무심한 눈으로 보는 세상보다 100배쯤 아름다워요.

      저는 여름을 덜 타는 편입니다만, 벌썩 헐떡거리는 분들 많더라고요. 사실 길 위에 서 있어야하는 제게도 한 여름은 두려움의 대상이지요. 하지만 또 여름이 와야 가을도 오는 법이니까... 건강 잘 챙기고요.

  5. 소영 2012/05/06 16:24  Addr Edit/Del Reply

    엎어지면 코 닿을(제가 키가 좀 큰거 아시죠?) 곳까지 오셨다 가셨네요. 미리 연락주셨으면 막걸리라도 한 잔 대접하는 건데요. 이곳은 가까워서 몇번 찾아가 보았습니다. 글을 읽고 있자니 익숙한 풍경을 따라 형님과 같이 걷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아, 그리고 터키 여행기 완결되었네요. 고생하셨습니다. ^^

    • sagang 2012/05/07 09:24  Addr Edit/Del

      맞아 맞아. 그대의 나와바리에 갔었네 그려. 그날은 딸린 식구들이 있어서 연락을 못했지만,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라네. 날 잡아서 저 동네 다시 한 번 갈건데, 그때 동행하세^^

  6. mowol 2012/05/14 19:26  Addr Edit/Del Reply

    아 개미마을엔 진로 소주가 있구나...그 동네 가게에서 김치 놓고 소주 한 잔 하고프다...

    • sagang 2012/05/15 09:12  Addr Edit/Del

      잘됐습니다. 선생님. 다음에 서울 오실 기회 있으면 아예 저 동네 구멍가게에 전을 펴지요. 진로소주 달라고 떼 한번 써보겠습니다.

2012/04/23 08:30 이야기가 있는 사진

 

 

 

 

3월하고도 24일 아침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한달이 지났군요.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몇몇 지인과 나들이를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휴일인데도 일찌감치 부지런을 떨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주방 쪽에서 비명에 가까운 새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와!” 혹은 !” 정도까지는 들었는데 그 다음은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내의 목소리는 분명한데, 평소 그리 호들갑스럽지 않은 사람인지라,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어 후다닥! 달려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급박했던 소리와는 달리 그니는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하염없이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뜻밖에 고요한 뒷모습에 대고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새삼스러워 제 시선도 자연스럽게 창밖으로 향했지요.

그리고 저 역시 못이라도 박힌 듯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시야 속으로 기가 막힌 풍경이 달려 들어왔습니다.

인수봉과 백운대가, 아니 북한산 전체가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습니다.

도심에 하루 종일 내린 비가, 산 위에서는 눈이 됐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북한산에 눈 내린 거 처음 봤느냐고요?

아뇨,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그 정도는 겨우 내내 봤지요.

하지만 겨울에 본 풍경과는 완연히 다른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딱 꼬집어 무엇이라고 표현하긴 어려웠습니다.

같은 눈인데 왜 저렇게 달라 보일까.

그러다 깨닫듯 발견한 게 있었습니다.

대비(對比)였습니다.

아직 갈색을 벗지는 못했지만, 온 산의 나무들은 이제 막 새 빛으로 떨쳐 일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하얀 색과, 아직은 느낌만으로 존재하는 푸른색의 대비가 그곳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봄이 오는 길목, 히말라야 어디쯤에서 설산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찬바람은 몰아치는데 추운 줄도 모르고, 베란다 창까지 활짝 열어 제친 채 오랫동안 산을 바라봤습니다.

그러다 기어이 제 입에서 한마디 터지고 말았습니다.

집값 손해 본 거 한꺼번에 다 뺐다

 

북한산과 도봉산의 가운데쯤에 사는 저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곤 했습니다.

대체 왜 그 구석에 살아?”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은 첫 인사가 이랬습니다.

아직도 거기서 살아? 집값은 좀 올랐어?”

그럴 만도 했습니다.

교통이 편하길 한가, 집값이 오르길 하나.

집값? 시 경계를 벗어난 의정부보다도 더 싼 곳이 이 동네입니다.

바보들이나 사는 동네 취급을 당하기 딱 알맞았습니다.

그런데도 전 20년 가까이 이 동네에서 살고 있습니다.

남들이 집을 옮겨 다니며 매매 차익으로 쏠쏠한 재미를 볼 때, 저는 집값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입이 찢어지곤 했습니다.

아니, 사실 그것조차도 신경 써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참 무능한 가장입니다.

그러면서 늘 변명처럼 늘어놓는 말이 그거지요.

이 집 팔고 나가봐야 다른 곳에서는 전세도 못 얻어

애들 학교 때문에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제가 이사를 못 가는 이유는 이 동네가 좋아서입니다.

일상이 주는 행복과, 백운대와 인수봉이 눈을 뒤집어쓰고 짠! 하고 나타는 정도의 깜짝쇼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길 하나 건너면 북한산이든 도봉산이든 마음 놓고 오를 수 있습니다.

아파트 뒤가 바로 텃밭입니다.

개천에는 개구리와 도롱뇽이 지천입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이지만, 맹꽁이도 있습니다.

여름 내내 개구리 맹꽁이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듭니다.

지척에 있는, 750년 묵은 은행나무는 아직도 여름이면 아낌없이 그늘을 드리웁니다.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이 서울에서 얼마나 있을까요.

저 같은 도시부적응자에게는 하늘이 내린 길지(吉地)’나 다름없습니다.

 

이 정도면 20년 째 무능한 가장을 감수하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저는 여전히 이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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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23 10:01  Addr Edit/Del Reply


    창밖을 내다보시면 사시사철 변화하는 풍경화일것 같아요.
    큰 산의 기운을 항시 곁에 두고 계셔서일까요..^^
    작가님의 글 속에 느껴지는 너른 포용력의 근원을 엿본 듯 합니다.

    여행기가 끝나 허전했던 마음에 얼씬거렸는데
    또다른 매력의 이야기를 만나서 반가운 아침입니다.
    비록 날은 흐리지만 가슴속엔 환한 햇살 가득 담는 한주 되시기를!

    • sagang 2012/04/23 17:46  Addr Edit/Del

      계절이 찾아와서 문을 두드려요. 이만큼 바뀌었으니 내다봐달라고. 늘 새로운 그림이 걸려있지요. 벌써 20년 가까이 변하지 않고. 보통 일 아니지요? 산에서 배우고자 하나 워낙 '범인'의 자질을 타고난지라 늘 제자리 걸음이네요. 그래도 저만한 산 아래 살았기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살고 있나봐요.

      팽이처럼 쉬지 못하는 팔자인가봐요. 또 뭔가를 써야겠지요. 응원 감사합니다.

  2. mowol 2012/04/24 06:49  Addr Edit/Del Reply

    북한산 저 낙타봉에 눈이 내리면 아이가 되는 천진한 부부가 있다. 붙박이 파수꾼이 거기 있다. 부럽다. 서울에서 제일 행복한 분들이다. 내가 이런 분을 안다는 게 신기하고 행복하다. 괜히 우쭐거린다. 내 마음에 함박눈, 포근히 내리는 눈 맞으며 나는 우쭐거리고 마냥 행복한 것이다.

    • sagang 2012/04/24 09:30  Addr Edit/Del

      선생님, 저는 그나마 저 산이 있어서 어려운 시절을 살아낸 것 같아요.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할 때 창문만 열면 반갑게 손짓하는 산. 사람도 마찬가지지요. 힘들 때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겐 선셍님도 그런 분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늘 든든하지요. 고맙습니다.

  3. 유명남 2012/04/26 23:52  Addr Edit/Del Reply

    아이고, 오랜만이네요. 나는 터키여행 끝나셔, 이 방에 당분간 안 오시는 줄 알았죠. 어이구 큰일 날 뻔했네요. 무슨 재미로 사나 했었는데? 나도 저 도봉산 수락산 때문에 버티고 있지요. 거기다가 이렇게 든든하신 최돈선 선생님, 사강 작가님 계시니 참으로 복이 많은 편이지요. 개한테 물린 상처도 다 아물어 가는데 곧 한번 만나야겠지요. 그럼 또 ~

    • sagang 2012/04/27 09:25  Addr Edit/Del

      제 블로그인데 안 올 수 있나요. 터키를 가기 전에도 다녀온 후에도 주욱 글을 씁니다. 앞으로도 그렇고. 뭔가 쓰지 않으면 아픈 몸이 됐어요. 이것도 병의 하나지요. 상처가 거의 아물었다니 반가운 소식입니다. 이 봄, 이 꽃 다 지기 전에 한번 뵙지요.

  4. 유명남 2012/04/27 16:19  Addr Edit/Del Reply

    그러게요. 방을 비워 두면 안 되겠지요. 오다가다 들러 작가님 체온이라도 느껴야겠지요. 큰맘 먹고 위[이야기가 있는 사진 15]에 열심히 댓글 달았더니, 문이 잠겼더라고요. 문 앞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임은 아니 오시고 강아지만 멍~ 멍~ 무서워서 그냥 왔지요. ㅎㅎㅎ

    • sagang 2012/04/27 16:48  Addr Edit/Del

      하하, 이제 강아지 그만 무서워 하세요. 뭐 예쁘다, 예쁘다만 안하면 되겠지요^^ 고맙습니다.

  5. 하늘비 2012/04/30 14:12  Addr Edit/Del Reply

    도시부적응자 ㅎㅎ
    저 멋진 광경을 전 아마도 그 반대편에서 봤을겁니다.
    해마다 3,4월이 되면 한 번씩 보여주더라고요.
    산아래 사는 재미를 아는 사람은 알거예요



    전 터키여행은 잠시 미루고 이리 날라왔습니다.
    베르베르 '나는 걷는다' 책만 만지작거리다, 비행기탑승을 못했거든요.
    마음의 여유가 없었나봅니다. ?
    천천히 보려고요^^

    • sagang 2012/04/30 16:10  Addr Edit/Del

      그렇군요. 같은 풍경을 반대편 사는 분들도 봤을 거란 생각까지는 못해봤습니다. 그쪽은 또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해집니다. 사람의 시야라는 게 뻔해서 제게는 20년째 봐온 북한산 풍경이 전부라고 믿고 있거든요.

      터키 여행은 제 책이 나오면 하시지요. 아껴가며 보는 것도 재미 있습니다. 여름 같은 봄 잘 지내시키 바랍니다.

  6. 로사 2012/05/04 10:23  Addr Edit/Del Reply

    집 값 손해본 거 한꺼번에 다 뺐다, 하는 대목에서 웃음이 났네요. 인수봉이 저 정도로 보이는 집에 사시면 집 값 같은 건 무시당해 마땅하고 말고요. 오월이 되어 저 사진을 보니 선들선들한 기운이 들어 좋아요. 올 봄은 유난히 봄눈이 많이 내린 봄이었네요. :)

    아래 여행기 사진을 보니 비행기 타고 날아가고 싶은 생각이 어찌 그리 갑자기 밀려오는지 말예요. 꾹꾹 참으면서 한국의 생활을 잘 해내야 겠지요? ㅠ.ㅜ;

    • sagang 2012/05/07 09:03  Addr Edit/Del

      가끔 생각해보는데요, 우리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하는 겁니다.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을 초대해서 개구리 맹꽁이소리도 듣게 하고 느티나무 그늘에서 쉬게도 하고, 집에 앉아서 인수봉 백운대도 보게 하고... 저는 뭐 돈 좀 만지는 거지요. 역시 망상이겠지요?

      비행기 사진 내릴까요? 마찬가지랍니다. 발은 늘 붕 떠서 사는 걸요^^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갈라타 탑

이제 탁심(Taksim) 광장 방향으로 내려가 버스로 공항까지 가면 된다. 트램을 타고 전철로 갈아타는 방식, 즉 역순으로 되짚어 가도 되지만 멀기도 하려니와 환승이 귀찮아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벤치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저만치에서 재미있는(?)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어라? 저걸 두고 그냥 갈 수는 없지. 갈라타 탑 주변에는 늘 택시 몇 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헌데 택시와 지나가던 자가용 운전자 사이에 시비가 붙은 것이다. 우리 같으면 삿대질을 동원해 열심히 싸우다가 경찰을 부르거나, 지칠 때쯤이면 못이기는 체 서로 갈 길을 갈 텐데 이들의 싸움은 갈수록 거칠어진다. 재미있는 건, 처음엔 분명 둘 만의 싸움이었는데 조금 지나니 집단 싸움으로 판이 커졌다는 것이다. 호기심 많고 오지랖 넓고 다혈질인 터키 아저씨들은 싸움도 버라이어티하게 한다. 처음엔 관객이었던 사람들 중 한 둘이 심판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못 이겨 느닷없이 그라운드로 진입한다. 아저씨, 좀 참으시고요. 차분하게 말씀해 보세요. 조금 더 지나면 심판들끼리 시비가 붙는다. 네가 뭔데 저 아저씨 편을 드는 거야. 그러는 너는 어디서 굴러먹다 온 개뼈다귀야. 택시기사가 먼저 잘못한 거잖아. 무슨 소리야 자가용이 잘못했지. 뭐야? 이게 어디다 대고. ? 이거 봐라? 한번 해보자 이거지. 싸움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판도 서너 개로 분화된다. 노인도 청년도 배불뚝이 중년남자도 최선을 다해 싸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원래 싸우던 두 사람은 각자 갈 길로 가버린 지 오래다. 그러거나 말거나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마치 축제현장 같다. 끝까지 지켜보고 그 결과를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께 전해야한다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저 노란 택시들 중 하나로부터 사건은 일어났다.

아쉬운 마음만 그 자리에 남기고 천천히 일어서서 길을 잡는다. 한걸음 한걸음이 가시밭길을 걷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여행 내내 땀을 배출한다는 기능성 등산복의 신세를 졌는데, 이스탄불에서는 워낙 많이 걷고 땀을 흘려서 그런지 별 도움이 못 됐다. 민감한 쪽의 피부가 옷에 쓸려서 벗겨지기라도 한 듯 쓰리고 아프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신음이 절로 나온다. 그러니 걸음걸이는 당연히 똥 싼 놈 스타일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스탄불의 미아가 되고 싶지 않다면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는 수밖에. 버스정류장인 건 분명한데 공항버스는 오지 않는다. 내가 잘못 찾아왔나? 혹시 공항버스가 안 서는 정류장인가? 슬슬 걱정이 돼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다. 영어가 제법 잘 통용되는 나라고 더구나 여긴 국제도시 이스탄불인데. 잠시 망연히 서 있는데 택시 한 대가 내 앞에서 끼익~ 하고 급하게 서더니 운전사가 내린다. 어라? 날 바래주라고 이 나라 대통령이 보냈을 리는 없고.

탁심광장으로 가는 길에 만난 건물들

차에서 내린 기사는, 구겨진 여행자 정도는 쳐다보지도 않고 여기 저기 전화를 걸어댄다. 택시를 보니 한마디로 가관이다. 이 나라에서는 이런 정체불명의 물건을 택시라고 부르는구나. 여기저기 벗겨진 거야 시간 탓이라고 돌린다지만, 물리고 긁히고 깨진 저 숱한 상처는 어디서 온 것이란 말인가. 여기서는 투견이나 투우처럼 택시싸움도 하나보지? 상처가 전부는 아니다. 그나마 흉내 내듯 남아있는 범퍼는 거의 떨어져 덜렁거리는 것을 대충 얽어놓았고 엉덩이 쪽은 페인트보다 테이프가 더 많은 면적을 차지했다. 지금도 어디서 사고를 당했거나 사고를 치고 온 모양이다. 전화 내용을 짐작하건대 보험사하고 뭔가 타진 중인 것 같다. 나는 돌아갈 길이 급하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택시기사가 하는 짓에 푹 빠져버린다. 특이한 건, 이 친구의 얼굴이나 목소리 어디에도 사고를 당한 사람 특유의 낭패한 기색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사고처리를 하고 있는 게 분명한데 아침저녁으로 늘 하는 일을 하듯 자연스럽다. 통화를 끝낸 그가 범퍼 쪽을 발로 툭툭 차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서른 한 둘쯤 됐을까?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청년이다. 그가 길을 지나다 똥을 본 강아지처럼 반가운 기색으로 다가온다. 어디 가슈? ? 공항 가려고 버스 기다리는 거야. 이왕이면 편하게 택시 타고 가지 그러슈? 돈이 얼마 없어. 사실 잔돈을 남기면 뭐하나 싶어 버스비+알파만 남겨놓고 다 써버렸다. 하지만 이 친구 이대로 물러날 기색이 아니다. 얼마나 가지고 있는데요? 정말 별로 없다니까. 보라는 듯이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보지만 모두 동전뿐이다. 이 친구, 내가 세는 게 답답했던지 얼른 빼앗아 제 손으로 헤아려 본다. 돈 세기를 끝내더니 고개를 한참 갸웃거린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않다. 돈을 돌려주더니 자기 차를 타라고 손짓한다. 그래? 나야 좋지만. 너 택시 사고 난 거 아니었어? 얼른 뒤처리를 해야지. 괜찮유. 일 끝내고 처리하면 되쥬 뭐. 이 정도면 미국도 가유. 이 친구 “No problem”을 연발하며 나를 뒷자리에 밀어 넣는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고양이

그런데 나 정말 이런 차 타도 괜찮은 거야? 테이프로 때워놓은 차가 굴러가긴 하고? 온갖 생각이 빛의 속도로 머리를 스친다. 하지만 금방 의혹을 놓아버리고 만다. 그래, 설마 공항까지 못 가겠나. 편하게 한번 가보자. 편하게. 그 기대가 얼마나 오산이었는지 확인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머플러를 떼놓은 오토바이처럼 경쾌한(?) 소리와 함께 차가 출발하면서 내 입에선 비명이 저절로 터진다. ? ? 이거 뭐야. 총알 택시였어? 이 친구 차는 차가 아니듯이 운전도 운전이 아니다. 마치 뱀장어가 장애물경주를 하듯 지그재그로 도심을 헤엄쳐 나간다. 마침 퇴근시간이라 길이 제법 복잡한데 어떻게 이렇게 달릴 수 있는 건지. 차선을 바꿀 때도 깜박이를 켜는 법이 없다. 아마 이 차에는 아예 깜박이가 안 달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겁이 슬슬 나기 시작한다. 슬쩍 계기판을 들여다봤더니 시속 120~130km를 오르내린다. 물론 다른 차, 특히 택시들은 정상적으로 달리고 있다. 두 손은 저절로 손잡이에 매달리고 잠시 뒤에는 흥건하게 고였던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드디어 오늘 저 세상으로 가는구나. ! 어머니. 이 못난 자식은 낯선 땅에서 이렇게 떠납니다. 부디 만수무강하세요! 이 나라 교통경찰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아파트

그가 공포의 시간을 위해 마련된 이벤트는 그걸로 끝이 아니다. 대체 뭘 얼마나 준비한 거야. 최대볼륨으로 라디오를 켜더니 노래에 맞춰 어깨춤을 추기 시작한다. 대체 운전을 하는 건지, 클럽에 왔다고 생각하는 건지. 잠시 뒤에는 끊임없는 통화가 시작된다. 그것도 슬쩍 슬쩍 나를 돌아보면서 슬슬 웃기까지 한다. 아마 자기 친구에게 나 지금 파김치처럼 후줄근하게 늘어진 촌놈 하나 태우고 겁을 주고 있는데, 엄청 쫀 거 같아. 아마 오줌을 지리지 않았을까? 에이, 시트 닦으려면 큰 일 났네.” 어쩌고 중계방송을 해주는 모양이다. 한참 통화하다가 나를 돌아보더니 내 친구가 아저씨한테 hello라고 말해달래!!! 그런 건 안 전해줘도 되거든. 제발 운전이나 똑바로 해. 하지만 그는 재미있다는 듯 킬킬거리며 통화를 계속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시간이 영원하지 않았다는 것. 공포에 질린 내 눈으로 저만치 아타튀르크 공항이 들어온다. 아아, 이렇게 반가울 데가. 밤새 산속에서 헤매다 아침을 맞은 기분이 이럴까. 차에서 뛰듯이 내려서 동전 한 푼까지 몽땅 털어줬더니, 얼른 챙겨 넣고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든다. “내 덕분에 스릴 있지 않았어?” 묻기라도 하듯이. 헌데, 나도 묘하지. 그 웃음이 밉지 않다. 그래, 수고했다. 다음에는 널 만나지 않도록 기도 할게.

돌고 돌아 아타튀르크 공항으로 오다.

총알택시를 탄 덕에 예정보다 훨씬 빨리 도착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쓰지? 우선 먹을 걸 좀 찾아봐야겠지? 집에 갈 때가 돼서 그런지 따뜻한 국물이 있는 면이 먹고 싶다. 아무리 잡식성인 나지만, 그래도 수십 년 먹어온 가락이 있지. 케밥은 이제 질렸다. 잔치국수가 가장 좋겠지만 언감생심일 테고, 혹시 일본식 우동집이라도 있을까 싶어 공항 내부를 한 바퀴 돌아보지만 파스타 파는 집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더 이상 돌아다닐 힘도 없다. 엉덩이와 허벅지는 계속 아우성이고 온 몸의 에너지는 전부 빠져나갔다. 밥이야 참았다가 기내식으로 때우면 되지. 돌고 돌아 다시 아타튀르크 공항으로 돌아온 지금, 절에 간 새색시처럼 얌전히 앉아서 터키에서 보낸 시간을 돌아본다. 몇 년이 흐르기라도 한 듯 지나온 날들이 아득하다. 소태처럼 쓰디쓴 날도 있었고 솜사탕처럼 감미로운 날도 있었다. 숱한 것을 배웠고 가슴에 퍼 담았다. 그 아름답던 풍경들, 길에서 만난 사람들. 귀에 목이 박히게 들었던 “Where are you from” “my brother!!!” 그 따뜻한 음성이 환청처럼 여전히 귓전을 맴돈다. 이제 여행은 끝났다.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상이 기다리고 있는 12시간 저쪽의 공간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콩나물시루 같은 공항에 서서, 나만의 작별 의식을 치른다. 터키여, 내 형제들의 땅이여! 나는 지금 떠나지만 끝내 이별이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일 뿐. 멀지 않은 날 그대의 대지에 엎드려 재회의 기쁨을 나눌 것이니.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작년 9~10월에 걸쳐 여행을 다녀와서 1010일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여행기가 이제야 끝났습니다. 손을 꼽아보니 정확하게 반년이 지났군요. 1주일에 1,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글을 올리는 동안 전 무척 행복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응원을 보내주셨고 등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행복한 일은 또 있습니다. 연재가 진행되는 중에 출판사가 선정되고, 또 그곳에서 출판 펀딩에 성공해서, 안정된 조건으로 출간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 책이 시장에서 팔릴 것이라는 가능성을 인정 받았다는 측면에서 무척 고무적인 일입니다. 물론 이번 여행은 이게 시작입니다. 머지 않은 날 다시 터키 땅을 밟을 것입니다. 그만큼 매력이 넘치는 곳 터키, 저는 그곳을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제 여행을 만들어주신 분들, 그리고 응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의 가슴에 이 봄, 행복이란 꽃 하나씩 피어나길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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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16 09:20  Addr Edit/Del Reply


    아침 출근 하자마자 블로그로 달려왔습니다.
    애인 군대 보낼때도 이토록 서두른 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 말이죠..
    아, 생각해보니 그런 경험이 없었네요 ㅋㅋㅋ

    터키 택시 아저씨들과 기타등등의 싸움이야기,
    총알택시 청년의 이야기 등등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것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여행기라는 것이 못내 섭섭하기도 하지만
    정말 긴 시간동안 고생하셨을 작가님께 힘찬 박수를 보내드려요. 짝짝짝짝!
    고생하셨습니다!! 터키 이야기는 이제 책 나올 그날만 기다려야겠네요.
    아마 다른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시지 않을까....싶습니다만
    그때까지 건강히 편안히 휴식기간 가지시길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 또뵈요

    • sagang 2012/04/16 10:30  Addr Edit/Del

      이렇게 고마울 데가요. 그 마음이 이 아침을 행복하게 합니다. 글에서도 말했지만 6개월 연재하는 내내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이렇게 격려해주신 분들 덕이지요. 힘찬 박수 고맙습니다.

      당연히 끝은 아닙니다. 좀 더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쓰겠습니다.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돌아다니고 찍고 쓰는 것이니까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2. 버팀목 2012/04/16 11:48  Addr Edit/Del Reply

    형님의 카메라를 따라 시작 된 저의 여행은 즐거움이었습니다. 아쉬움이 남지만 또 다른 여행을 기다리며 형님께 고맙고 감사하단 말 전하고 싶습니다.

    • sagang 2012/04/16 14:01  Addr Edit/Del

      고맙네^^ 함께 여행하는 줄 몰랐네. 시인이 함께 여행하는 줄 알았다면 좀 더 잘 쓸 걸. 이곳에 계속 들르면 또 재미있는 이야기와 만날 수 있겠지. 자주 보세.

  3. mowol 2012/04/16 16:57  Addr Edit/Del Reply

    터키여 내 형제들의 땅이여 지금 떠나지만 끝내 이별이란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마지막 휘날레를 장식하며 사강 선생은 또 다시 터키를 꿈꾸는군요..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 또한 덕분에 즐거운 여행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연재가 끝나고 곧바로 출간이 된다니 이 또한 기쁜 일이 없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사강 선생의 아름다운 여정에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사강 선생님 ^^

    • sagang 2012/04/16 19:06  Addr Edit/Del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여행 내내 선생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늘 행복했습니다. 책이 나오면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곱배기로 드리겠습니다. 저 혼자 낳은 책이 아니니까요.

      시원하고도 섭섭합니다. 뭔가 매어있는 것 같은 부담도 없지 않아 있었고요. 끝나고 나니까 살짝 우울증도 찾아왔습니다. 사라져가는 것들 몇년 씩 연재한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행복합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4. 정암 2012/04/17 09:21  Addr Edit/Del Reply

    화려한 화요일 아침입니다. 햇빛이 좋네요.
    마지막회까지 알차고 재미있는 여행기 감사합니다.
    반년이나 되었습니까? 벌써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습니다.
    그만큼 이 여행기를 기다리던 시간이 즐거웠기 때문이겠지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작가님의 노고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인사겠지만
    이런 끈기있는 작업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솔직히 사진 하나만 꾸준히 찍는 것도 버거운데
    일일히 기록하고 글까지 써서 나눠주시다니..
    솔직히 날로 먹는 입장에선 종종 염치없다 싶었습니다.
    사설이 길어졌습니다. 짧은 머리로 리플 짜내려니 어렵지만
    정말 감사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제 다른 글 쓰실 계획이신지
    아마 습관적으로 이 블로그를 얼쩡거릴 듯 해서요..

    • sagang 2012/04/17 10:40  Addr Edit/Del

      고맙습니다. 입만 열면 하는 얘기지만 모두가 응원해주신 덕분입니다. 저도 겨울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더운 곳 얘기를 쓰다보니 추위도 모르고 간 것 같습니다. 물론 함께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무엇보다 즐거웠고요.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작업 계속 해야지요. 이야기가 있는 사진도 틈틈이 올리고요. 그것 말고는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요즘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는 '둘레길 순례'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정보차원을 넘어서 '이야기가 있는 길'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욕심이 좀 많습니다. 기대하셔도 될 겁니다^^ 고맙습니다.

  5. 지중해 2012/04/17 14:32  Addr Edit/Del Reply

    지난 6개월 동안 '터키, 지중해를 따라 걷다' 여행기 연재에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sagang님의 보석같은 여행기와 사진들을 통해 먼 나라로 느껴졌던
    터키를 가깝게 접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터키를 '꼭 가보고 싶은 나라'로 꼽게 되었습니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동행길...거듭 감사드립니다.
    좋은 조건으로 책도 출간하시고,
    터키 여행기 후속편도 준비중이신 것 같고,
    너무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입니다.
    땀에 절은 옷에 쓸려 걷기조차 힘드셨다니...
    가슴 절절한 귀향기가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는군요.
    열정적이고 성실한 여행자만이 가질 수 있는 남다른 필력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는 대목이네요.
    조만간 출간될 책과 '터키 여행기 2편'이 새삼 기다려집니다.
    항상 건강 유의하시고 건필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 sagang 2012/04/17 16:59  Addr Edit/Del

      제게 가장 반가운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터키가 꼭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됐다는 것. 잘날 것도 없는 제 글과 사진들이 그런 동기를 부여했다면 저는 성공한 것입니다. 제가 터키관광청의 홍보대사는 아니지만, 정말 홍보를 하고싶은 욕구가 이는 나라거든요.

      여행을 할 때, 그리고 남들이 구경할 때 사진 찍고 메모하고 자료 확인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훗날 그걸 기록하고 전해드릴 생각을 하면 참 행복합니다. 고통 정도는 금방 사라지지요. 그래서 또 떠나는 것이겠지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2편을 전해드릴 수 있는 날을 저도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행복하세요.

  6. 로사 2012/04/19 01:04  Addr Edit/Del Reply

    터키와의 첫사랑은 이렇게 잠시 안녕이군요. 그러나 터키는 사강님을 기다리고 있겠지요.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그 마음을 기다리고 있겠지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터키여행이었습니다. 반년 동안 사강님의 터키여행기를 단 한 편도 빼놓지 않고 매 주 읽은 것은 터키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지는 것에 큰 몫을 한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들이 비린 봄풀 같은 내음을 닮은 종이로 만들어져 나올 것이 무척 기대가 됩니다. 종이에 올려진 사진과 글씨들은 또 얼마나 정겨울지 말입니다. 이렇게 행복한 글을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의 세번 째 책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제 권영민 교수님의 문학강의에 갔다가 초판 파는 데 10년도 넘게 걸린 자신의 책 얘기를 하며 활짝 웃으시는 그분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소위 '좋은 책'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어찌 판매고에 의해 결정되겠습니까. 두고두고 가슴에 남고 사람에게 남을 책이 바로 좋은 책이겠지요. 사강님의 책들은 분명히 훗날에 그런 모습으로 남게 될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다음에 터키에 가실 때는 동행을 해도 좋겠다는 꿈을 가져봅니다. 사강님은 또 다른 글작업으로 바쁘실테니 혹시 그리 된다면 총알택시로 클럽을 즐기는 터키의 청년기사에게 멋드러진 말주먹 한 방을 먹이도록 공부를 해놓겠다는 엉뚱한 약속도 해봅니다. 책이 출간되면 이벤트로 '사강과 터키 여행하기'라는 제목으로 한 열 명쯤 터키 여행단을 모집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단체'는 싸잖아요. ^^

    다녀오신 여행과 더불어 수고로움을 마다않고 보여주신 그곳의 이야기들에 감사드립니다. 또 다른 '길 위의 이야기'로 만나뵙기를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사강님의 건강과 건필을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

    • sagang 2012/04/19 09:47  Addr Edit/Del

      여행기를 쓴다는 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고백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자신의 안에 있는 걸 사람들 앞에 토해내놓는 작업이었습니다. 힘들었다고 엄살을 떠는 게 아니라, 그만큼 부끄러움도 동반한다는 소리입니다. 소설처럼 이만치 물러나지 못하고 날 것의 '나'를 보여주는 일은 아무리 반복해도 낯섭니다.

      제가 여행기를 쓰는 중에 터키를 다녀온 로사님 같은 분들 앞에서는 특히 조심스러웠습니다. 눈밭을 앞서서 걸어간 자의 심정이었다고나 할까요. 혹시 잘못된 정보를 전했을까 하는 염려도 들고. 그래도 매회 읽어주고 긴 이야기를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지인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본문보다 더 잘 쓴 댓글은 처음 봤다고. 그 말이 저를 가장 행복하게 했을 겁니다.

      터키 여행단 한번 꾸려볼까요? 사실 그런 꿈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럴 수만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마음이 맞는 몇 사람의 '동지'들과 함께 걸으며 역사의 숨결을 담아 올 수 있다면.

      또 다른 이야기로 여러분의 옷자락을 잡고 있겠습니다. 계속 함께 걸어주시지요.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7. 성광수 2012/04/19 08:44  Addr Edit/Del Reply

    작가님 덕분에 그동안 공짜여행 잘했습니다. 언젠가는 가보겠다는 생각으로 메모까지 해가며 여러번 읽었습니다. 책이 나올거라니 괜한 수고를 했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마지막 에피소드 두 편 재미있었습니다. 터키인들의 성격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실감났습니다. 또다른 터키여행기로 만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sagang 2012/04/19 09:49  Addr Edit/Del

      제가 공짜 여행 시켜드렸군요^^ 평소에 별로 베풀지 못하고 살았는데, 그렇게 느끼셨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메모까지 하셨다니 저로서는 고마울 뿐이고요. 에피소드는 터키를 떠나려니까 준비했다는 듯 제 앞에 펼쳐졌습니다. 선물을 받은 거지요. 물론 택시 안에서는 '식겁'했지만...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8. 전경미 2012/04/19 11:56  Addr Edit/Del Reply

    원인 모를 싸움과 총알택시 에피소드로 마무리를 해주셨군요.
    터키. 우리 형제 맞습니다. ^^
    여행은 짧았으나 이렇게 함께 나누며 기록으로 남기는 여정이 길었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야말로 진심 어린 박수 보내드립니다. 짝짝짝!!!
    책 출간 소식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고생하신 만큼 보람도 있으셨으리라 짐작되네요.
    사인회 때 뵙죠! ^^

    • sagang 2012/04/19 14:10  Addr Edit/Del

      짧은 여행, 긴 이야기 함께 해줘서 고맙습니다. 걸음걸음마다 힘이 됐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박수까지 보내주니 감읍입니다. 언젠가(이게 중요합니다) 번개를 치면 꼭 나오시기 바랍니다^^

      더 재미잇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9. 유명남 2012/04/20 08:04  Addr Edit/Del Reply

    칙칙했던 산하가 새색시처럼 얼굴이 자꾸 붉어지네요. 그놈 덕분에 근신 중이지요. 그나저나 몇 개월 터키에 머물다가 귀국하려니 오히려 우리나라가 낯설어 지네요. 그 웃기는 택시기사 때문에 몸 맘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네요. 늘 읽으면서 혼자 읽기는 아깝다 생각했었는데 곧 예쁘게 몸 단장하고 만인들 가슴에 안기게 된다니 반갑고 크게 축하할 일입니다. 그동안 쉽지 않으셨을 고된 여정, 집필에 존경과 사랑을 담아 드립니다. 그동안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해주신 사강 작가님께 두고두고 감사할 겁니다. 앞으로도 좋으신 작품으로 빈곤했던 뇌안, 심안에 한 줄기 빛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아직도 통원치료 중이라? 뻥 뚫린 상흔에서 파릇파릇 새싹 돋는 날 이래저래 모아서 시원하게 한 잔 때려봅시다. 계절이 아름다워서 더 외로워지네요. 근간에 한 번 연락하리다. 강건 행복하시길.....

    • sagang 2012/04/20 09:55  Addr Edit/Del

      '계절이 아름다워서 더 외로워지는' 정도의 감성을 가진 분과 여행을 함께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내내 보내주신 격려 덕분에 더위도 참고 험한 길도 수월하게 걸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 가는 길에도 초청합니다. 내내 함께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얼른 나으시기 바랍니다. 세상 살다보면 별 일이 다 생기지요. 함께 막걸리 한잔 들이킬 수 있는 날까지 기다리겠습니다.

  10. 떠돌이 2012/04/20 12:46  Addr Edit/Del Reply


    터키 여행이 끝났네요... 이 아쉬움은 뭘까요
    푸른 지중해도 하얀 마을도 기억속에 새겨둬야겠네요
    그래도 다른 여행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편안한 여행을 선물해주신 작가님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 sagang 2012/04/20 13:41  Addr Edit/Del

      고맙습니다. 함께 해주신동안 행복했습니다. 그럼요. 저는 계속 어딘가를 걷고 있을 테고, 또 찍고 기록할 것입니다. 함께 해주시지요. 늘 행복이 가득하길 빌겠습니다.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옥수수와 군밤을 파는 성소피아 성당 앞의 노점상

지하궁전이라 불리는 예레바탄

예레바탄 입구

지하저수지 예레바탄에서

성소피아 성당에서 나오니 길에는 노점상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런데 리어카에서 파는 군것질거리가 예사롭지 않다. 군밤과 구운 옥수수. 이건 코리아 콘셉트인데? 이 나라 사람들도 저런 걸 좋아하나 보다. 아니면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느린 걸음으로 길을 건너 예레바탄 지하저수지로 향한다. 소위 지하궁전이라고 일컫는, 이스탄불을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명소다. Yerebatan에서 Yere땅에라는 뜻이고 Batan빠지다라는 뜻이란다. 결국 땅 속에 빠진 궁전이란 말인데 지하저수지 치고는 제법 호사스런 이름을 얻은 셈이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유스티아누스 1세가 물을 저장하기 위해 532년에 건설했다고 한다. 성소피아 성당을 지어 놓고 ! 솔로몬이여~” 어쩌고 하며 감격을 금치 못했다는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지하 저수지는 궁전이라는 말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길이가 140m, 70m, 높이 9m8t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콘스탄티노플이 적에게 포위될 경우를 대비하여 물 비축용으로 지었다는데, 당시 도시 규모와 인구를 짐작할 수 있다. 물은 도시에서 북쪽으로 20km 떨어진 베오그라드 숲에서 끌어왔다고 한다. 이 저수지에는 336개의 대리석 기둥이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병사들이 열병하듯 서 있는데, 기둥마다 조명을 받아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재미있는 건 기둥의 모양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예레바탄의 기둥들.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르다.

천형처럼 거꾸로 선 메두사의 머리

맨 오른쪽 '수공'이란 글씨가 보이는지.

성소피아 성당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이 동네는 무엇을 지을 때마다 석재를 고대 신전에서 뽑아다 쓴 모양이다. 그러니 출신지에 따라 생김새가 모두 다를 수밖에. 이것도 창조를 위한 파괴라고 해야 하나? 바깥세상은 땀을 흘릴 만큼 더운데 안으로 들어서니 으스스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시원하다. 조명을 받은 바닥에는 물고기들이 천천히 유영하고 있다. 저들은 지금 자신들이 지하세계에서 일평생을 마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조금만 나가면 태양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이 곳의 진짜 명물은 메두사의 머리다. 맨 안쪽으로 가면 돌로 조각한 2개의 메두사 머리를 만날 수 있는데 하나는 뺨을 바닥에 댄 채로, 또 하나는 아예 머리를 땅 쪽에 박은 채 서 있다. 저들은 왜 저런 모습으로 저 곳에 있는 걸까. 1984년 보수공사를 할 때 발견됐다는데, 지금도 왜 그곳에 그 모습으로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리스 신화에 나오듯, 마법에 걸린 메두사의 형상을 보는 사람은 돌로 변하는 저주가 내려진다는 이야기만 그럴 듯하게 뒷받침해줄 뿐이다. 되짚어 나오다보니 입구에 기념품 가게와 카페가 있다. 기념품 가게에서 재미있는 걸 발견한다. CD와 엽서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판매대에 간단한 설명이 붙어있다. 대여섯 개 언어를 따라가다 보니 뜻밖에 한글도 있다. ‘수공손으로 직접 그렸다는 것이겠지. 우와! 심봤다. 그렇다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 중 한국인들이 5~6위 안에 들어간다는 것인데. 이거 좋은 일인가?

점심을 먹은 카페거리. 오른쪽 조금 흔들린 여인들이 바로 헤매던 동포

이스탄불의 거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지하 저수지에서 나오니 더 이상 걷기 어려울 만큼 허기가 진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은 이런 때 쓰라고 나온 게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누군가가 이스탄불에 가면 꼭 들러보라고 추천해 준 음식점이 생각난다. “성소피아 성당에서 길을 건너자마자 만나는 골목을 한참 들어가면.” 그렇다면 이 근처인데. 문제는 한참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음식점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다. 골목에는 카페들이 주르르 늘어서 있는데 그 집이 그 집 같다. 에라, 모르겠다. 입구 쪽에 있는 카페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다. 아무리 좋은 집이 있다고 해도 찾아갈 힘이 없을 만큼 배가 고프다. 케밥과 맥주를 한 잔을 주문해 허겁지겁 점심을 때운다. 케밥보다는 시원한 맥주가 입에 더 반갑다. 서울 가면 이놈의 맥주 마르고 닳도록 마셔야지. 맥주회사들 잘 들어. 나 귀국하기 전에 여유분 좀 만들어놔야 할 거야. 입에 케밥을 구겨넣고 맥주를 들이키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아가씨 둘이 왔다 갔다 한다. 점심식사를 하려는데 어느 집이 마땅한지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슬그머니 장난기가 발동해서 느닷없이 이 집 음식 먹을 만 해요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가온다. 친구들끼리 터키 중부를 돌고 와서 마지막으로 이스탄불을 탐색하는 중이란다. “혹시 두 분은 안 싸웠어요?” 함께 온 사람과 헤어지고 혼자 유령마을 카야쾨이를 찾아왔던 아가씨가 생각나서 물었더니 싸울 일이 있어야지요.” 하며 까르르 웃는다. 그래, 싸울 일이 뭐 있을까. 좋은 경험 하자고 떠난 여행, 힘들고 피곤할수록 양보하고 배려하면 될 것을.

톱카프 궁전의 문들

그녀들과 헤어져 다시 길을 나선다. 이번엔 톱카프 궁전. 내가 가고 싶은 모든 곳이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어서 다행이다. 트램이나 택시를 타고 다녀야 한다면 또 얼마나 번거로울까. 트램이 천천히 오가는 길을 따라 톱카프 궁전으로 간다. 이곳은 한 때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영토로 거느리며 대제국을 형성했던 오스만의 황제들이 살던 궁전이다. 1453년 우여곡절(배를 끌고 언덕을 넘는 일이 벌어졌다) 끝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술탄 메흐메트 2. 남이 지어놓은 궁전에서 살고 싶지 않았던 그는, 새 궁전을 짓기로 한다. 그 장소가 바로 세 대륙을 지배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은 물론 마르마라해, 보스포러스 해협, 골든혼으로 둘러싸여 최고의 풍경을 자랑하는 이 자리였다. 1472년 착공해서 1478년에 준공했다. 톱은 대포라는 뜻이고 카프는 문이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그저 궁전이라고 불렀는데 후대로 오면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향해 대포를 설치했기 때문에 이름이 톱카프로 굳어졌다. 70의 넓은 부지에 자리한 이 궁전은 투르크 족 전통의 흔적이 배어 있다. 마치 유목민들이 생활공간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게르를 치는 것처럼 정원을 중심으로 사방에 건물을 배치하는 형식으로 지었다. 많을 땐 이곳에 5000명 넘게 거주했다고 한다. 궁전은 세 개의 문과 그에 딸린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문인 황제의 문을 지나서 만나는 곳이 제1정원. 이곳은 개방 공간이다.

톱카프 궁전 내부

톱카프 궁전을 거닐다

궁전을 수비하는 예니체리라 불리는 근위대가 주둔했기 때문에 예니체리 마당이라고도 부른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정원에는 잘 손질된 녹색 잔디가 깔려 있다. 잔디 위에 큰 그늘을 내리고 있는 플라타너스에서 잎이 하나 둘 떨어진다. , 이젠 이곳에도 어쩔 수 없이 가을이 오려나보다. 그래, 명색이 10월인데. 그러보니 나뭇잎들도 조금씩 누런 색깔을 띠고 있다. 내 나라에는 지금쯤 가을이 깊겠다. 길지도 않은 여행에 벌써 향수병이 들었나? 잡념을 털어버리려 얼른 두 번째 문인 평안의 문을 지난다. 이곳에서 제2 정원을 만나는데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궁전의 시작이다. 이 정원에서는 출정식, 공주의 결혼식 등 각종 국가행사가 치러졌다고 한다. 또 대신들이 국사를 논의한 디반 건물과 왕실 주방건물도 있었다. 왼쪽으로는 하렘 입구가 있다. 술탄의 어머니, 부인 등 여자들만 생활하는 하렘은 아랍어 하림이 어원으로 금지된 곳이라는 뜻이다. , 황제 이외의 남자들은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이 하렘에는 약 250개의 방이 있다. 한번 하렘에 들어간 여자는 죽어서나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고 하니 황제의 눈에 띄어 하룻밤 함께 하는 게 유일한 희망이었으리라. 희망치고는 참 비참한 희망이다. 오스만 제국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슐레이만 시절에는 하렘에 머무는 여인이 1000여 명에 이르렀고 황제가 마음에 드는 여인을 찾아가는 비밀 통로도 있었다고 한다.

궁전내부의 이곳 저곳. 맨 아래 사진 수도꼭지는 황제가 밀담을 할 때 보안을 위해 틀어놓았다지.

다시 걸음을 옮겨 지복의 문을 지나니 제3 정원이 나온다. 이곳에는 황제 알현실이 있다. 오스만의 황제들은 신비감을 유지하기 위해 공식석상에 잘 나타나지 않고 외교사절도 이 방에서 만났다고 한다. 오른쪽 건물에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다. 호박만한 금덩이라도 전시돼 있나? 얼른 쫓아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거기가 바로 보물 전시실이라고 한다. 오스만 제국 이후 약탈을 당할 일이 없었던 터키는 각종 유물들이 잘 보존돼 있다. 세계 최대의 에머랄드로 장식된 단검, 황금 의자, 보석이 촘촘히 박힌 주전자, 86캐럴짜리 다이아몬드 등 입이 쩍 벌어질 만한 온갖 보물들이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노래를 부르고 있다. 모조품이 아니고 전부 진품이라니 그 가치가 얼마며 이만한 보물을 모을 수 있었던 황제의 권세는 대체 얼마만큼 컸던 것인지. 문제는 워낙 보석이 많으니 어지간한 건 그저 돌처럼 보인다. 카메라를 든 내가 들어서면서부터 제복을 입은 경비원의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발광을 시작하더니 슬금슬금 곁으로 다가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셔터를 누르려는데, 병아리 낚아채는 독수리처럼 내 팔을 잡는다.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셔터 소리에 보석이 경기라도 일으킨다더냐? 워낙 보석 같은 것에 흥미가 없는데다가 박절한 경비원의 눈초리가 싫어 건성으로 돌고 그냥 나온다. 3 정원을 벗어나니 제4 정원이 이어진다. 이곳은 황제와 가족들의 휴식공간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바다가 보이는데 왜 이곳에 궁전을 지었을지 바로 알아차릴 만큼 전망이 좋다. 마르마라해, 보스포루스 해협이 코앞에 있다.

저렇게 바다가 코앞에 있다.

세 갈래로 나눠진 바다

난 지금 유럽에서 아시아를 건너다보고 있다. 대륙과 대륙이 이리 지척이구나. 저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얼마나 많은 질곡이 있었을지. 궁전의 해안 쪽 끝에는 규율을 어긴 하렘의 여인들을 자루에 넣어 바다에 던지는 곳이 있었다고 한다. 참 끔찍한 일이다. 자유와 희망 따위는 약에 쓰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일생을 마쳤을 여인들. 아름다운 바다가 지척인데도 죽기 위해서나 갈 수 있었다니. 이젠 몸도 마음도 피곤하다. 누가 발목에 납덩이라도 매달아놓은 듯, 걸음이 자꾸 느려진다. 2정원으로 다시 나와서 마루에 엉덩이를 붙이고 다리쉼을 한다. 엄청난 인파 속에서 나 혼자 이방인인 것 같은 느낌에 잠시 쓸쓸해진다. 홀로 하는 여행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우울한 기분이 들 때. 그땐 얼른 훌훌 털고 일어서야 한다. 톱카프 궁전에서 나와 그랜드바자르로 가고 싶었는데 마침 일요일은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아쉬울 데가 있나. 이스탄불까지 와서 실크로드의 종착점이었다는 그곳을 그냥 지나치다니. 유럽의 물산이 아시아로 전해지고 아시아에서 온 물품들이 유럽으로 넘어간 곳이 바로 그랜드바자르다. 30의 거대한 면적에 출입구만 20개가 넘고 입점한 점포가 5000개를 헤아린다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 하다. 이스탄불로 가기 전에 그랜드바자르를 들른다고 했더니 누군가가 거기 들어갔다가 잘못하면 길 잃고 못나올 수도 있어요겁을 주길래 코웃음을 쳤는데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에미뇌뉘 선착장에서 본 풍경들. 저 갈라타 다리 1층에 한 많은 고등어 케밥집이 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바다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에미뇌뉘 선착장에 이르자 해협을 오가는 유람선과 광장을 오가는 인파, 그리고 해변에서 낚시에 열중하는 사람들도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늦여름(?) 오후의 황금빛 햇살이 철없는 강아지처럼 길 위를 뒹굴뒹굴 구른다. ! 옷 버린다. 그 모습이 지친 몸에 힘을 불어넣어준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을 조금 설명하고 가야할 것 같다. 이곳은 두 개의 해협과 하나의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다. 조금 전 다녀온 톱카프 궁전이 있는 쪽, 즉 오른 쪽은 마르마라해이고 앞으로는 보스포러스 해협이 있다. 이 해협은 흑해로 연결된다. 그리고 저만치 갈라타 다리가 보이는 왼쪽으로는 골든혼이라는 바다의 지류가 뻗어있다. 굳이 말로 된 지도를 그리는 이유는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에 대한 이해를 조금 넓히기 위해서다. 이스탄불은 이렇게 바다에 의해 크게 세 쪽으로 나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에 속한 구시가지, 그리고 역시 유럽의 신시가지, 다음이 아시아다. 지금까지 봐온 블루모스크, 성소피아 성당, 지하궁전, 톱카프 궁전 등 대부분의 이름 있는 유적은 구시가지에 있고, 구시가지에서 골든혼 위의 갈라타 다리를 건너면 신시가지가 시작된다. 신시가지에서 차를 타고 보스포러스 다리를 건너야 아시아에 닿게 되는 것이다. 물론 구시가지에서 직접 배를 타고 아시아로 건너가는 방법도 있다. 무슨 도시가 이렇게 복잡한지 원. 갈라타 다리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간다. 2층으로 되어 있는 다리는 아래 위 모두 인파로 북적거린다.

갈라타 다리 위에서 낚시질 하는 사람들. 저 아이 큰 낚시꾼 될게다.

갈라타 탑에서 본 이스탄불

다리 1층에는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과 바들이 진을 치고 있다. 저곳에서 그 유명한 고등어 케밥을 판다는데. 잠시 서서 입맛을 한 번 다셔보지만 결국 그냥 지나친다. 조금 전에 밥을 먹은 것도 문제지만, 그곳을 들를 만한 시간이 없다. 조금만 여유가 있다면 고등어케밥에 맥주 한 잔 하면서 석양을 즐길 수도 있을 텐데. 다음에 올 땐 오늘의 아픔을 반드시 보상 받고 말리라. 다리 한 가운데로는 트램 철로가 있고, 양쪽 난간에는 낚시꾼들의 천국이다. 남녀노소, 아니 여자는 없다. 암튼, 온갖 사람이 없이 쏟아져 나와 다리 아래로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다. 정말 물고기가 잡히는 것일까? 다가가 보니 숭어처럼 생긴 물고기들이 그릇마다 잔뜩 들어 있다. 어떤 꼬마 아이는 피라미를 닮은 작은 물고기를 장난감 삼아 갖고 놀고 있다. 너 크면 큰 낚시꾼 되겠다. 갈라타 다리를 건너서 찾아갈 곳은 갈라타 탑. 신시가지를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다. 골목길을 따라 15분쯤 걸어올라가니 갈라타 지역의 가장 높은 곳이라 짐작되는 곳에 탑 하나가 우뚝 솟아있다. 굳이 이 갈라타 탑을 찾은 것은 탑 자체가 아름다워서라기보다는 이스탄불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528년 비잔티움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항구를 지키기 위한 감시탑으로 세웠는데 제4차 십자군 전쟁 때 파괴됐다고 한다. 그걸 갈라타 지구를 차지한 제노바 자치구가 1348년에  타워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이름으로 재건축했다. 한 때는 포로 수용수나 기상관측소로도 쓰였다니, 팔자가 드난살이로 평생을 마친 여인만큼이나 험했던 모양이다. 

갈라타 탑에서 바라본 이스탄불의 풍경

탑 아래에는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이들 역시 이스탄불 전경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겠지. 꽁무니에 서서 한 참 지난 다음에야 입구의 계단으로 오를 수 있다. 11층 높이의 이 탑은 10층까지만 엘리베이터가 가고 맨 위층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10층은 전망대와 레스토랑, 나이트클럽이 들어서 있다. 발코니 난간에 서면 누구나 아! 하는 감탄사를 아끼지 못한다. 말 그대로 이스탄불 시내의 모든 것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저기 조금 넓은 바다가 마르마라해, 그리고 보스포러스 해협, 저곳은 골든혼.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가 보스포러스 해협 저기 어디에서 배를 끌고 언덕을 넘어 골든혼으로 들어갔다지. 하지만 지금은 산도 언덕도 흔적조차 없다. 대신 주택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성소피아 성당, 블루모스크 등 조금 전에 다녀왔던 건물들도 저만치서 손을 흔든다. 우리의 남산타워처럼 최고의 전망대다. 문제는 난간이 너무 좁고 관람객은 너무 많다는 것. 줄을 서서 천천히 도는 게 아니라 먼저 온 사람 나중에 온 사람이 마구 섞여서 엉덩이를 비비고 새치기를 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지친 몸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 얼른 다시 내려온다. 갈라타 탑을 빠져나와 광장의 벤치에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한다. 이스탄불에서, 아니 터키에서 내 공식 일정은 끝났다. 이젠 공항으로 가야한다. 이율배반적인 감정, 허전함과 안도감이 전신을 엄습한다. 게 바로 시원섭섭하다는 건가? 그나저나 정말 여기서 끝일까?

추천(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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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진수 2012/04/09 20:00  Addr Edit/Del Reply

    저 지하궁전의 메두사는 정말 궁금하군요. 그런 수수께끼가 땅 속에 묻혀 있었다니. 터키에 가면 꼭 들러보고 싶습니다. 여행이 끝났군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재미있는 한편이 남아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이유는?

    • sagang 2012/04/10 11:22  Addr Edit/Del

      무슨 사연이 있겠지요? 그냥 우연히 그곳에 있었다는 건 설명이 안되니까. 저도 많이 궁급했습니다. 많은 분들의 성원 덕분에 정말 막판을 향해 달려갑니다. 조진수님이 지니신 예감에 부응해야하는데 걱정입니다. 또 뵙겠습니다.

  2. 2012/04/10 13:52  Addr Edit/Del Reply


    이번주엔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아싸 2빠!

    저도 조진수님처럼 메두사를 보고 궁금했는데 ...혼자 세운 가설은
    저 기둥들부터 그리스 신전에서 뜯어다?세운 거라고 하셨던 걸로 미뤄 볼때..
    메두사 역시 신전에 장식되어있던 조각이 아니었을까요..
    건축가가 반쯤은 심술궂은 생각으로 저렇게 굄돌?로 쓴게 아닐지 ..

    이스탄불은 아주 잠시?만난 곳인데도 잘 차려진 부페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볼만한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것도 많은..
    수도라 그럴까요? 터키의 도시들 중에서 가장 욕심많은?도시인 듯 합니다.

    웬지 다음주엔 후기가 올라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인사는 다음주로 패스~하렵니다 ㅎㅎ

    • sagang 2012/04/10 14:52  Addr Edit/Del

      그럴듯한 가설입니다. 건축가의 심술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애당초 저렇게 쓰려고 조각한 건 아닌 듯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꾸 궁금해지는 걸요.

      제가 글에서도 썼듯이 이스탄불은 참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는 곳입니다. 잘 차려진 부페란 말도 틀리지 않네요. 제가 워낙 간단하게 돌아다녀서 그렇지 제대로 보려면 숱한 시간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는 느긋하게 고등어케밥도 먹고 맥주도 마셔가면서 돌아다녀볼 생각입니다.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3. 성호 2012/04/10 14:56  Addr Edit/Del Reply

    제가 가장 부러운 것은 저 갈라타다라에서 하는 낚시입니다.
    우리도 강변이나 바닷가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저렇게 도심 속에서 바다낚시를 하는 건 무척 재미 있을 것 같습니다.
    물고기를 갖고 노는 아이의 표정이 천진난만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sagang 2012/04/10 16:33  Addr Edit/Del

      낚시를 즐기지 않는 저도 도심에서 저렇게 낚시질을 할 수 있다는 게 참 부러웠습니다. 그럴 수 있는 환경에 대한 부러움이겠지요. 한참 자리를 뜨지 못하고 구경했습니다. 아이도 참 예쁘지요? 큰 낚시꾼이 되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감사합니다.

  4. 정암 2012/04/10 16:03  Addr Edit/Del Reply

    인사동 거리에서 터키 아이스크림을 보고
    이 여행기가 생각났었습니다.
    그리고 케밥집을 지나다 또 생각이 났었습니다.
    중독입니다.
    훌륭한 여행기를 날로?받아먹기만 하니 죄송스러웠는데
    책으로 나온다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오는 즉시 소장목록 1호가 될것 같습니다.

    언젠가 이어질 작가님의 터키여행 2탄도 기다려보겠습니다.
    살다보면 만나질 날 오겠지요?

    • sagang 2012/04/10 16:35  Addr Edit/Del

      저도 인사동을 지날 때마다 예사롭지 않게 아이스크림 파는 사람들을 봅니다. 엊그제는 젊은이 두 사람이 열심히 팔더라고요. 이제 날도 따뜻해졌으니 많이 팔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 쇼는 할 줄 모르나봐요. 찰떡쇼처럼 재밌는데.

      고맙습니다. 읽어주시고 책도 사주신다니 저로서야 그만한 영광이 없지요.

  5. 금나나 2012/04/10 16:29  Addr Edit/Del Reply

    와 그럼 저 지하궁전 바닥이 진짜 수조고
    그 안에 물고기가 다닌단 말인가요? 신기하네요.
    그냥 보면 좀 젖은 대리석 바닥같기만 한데..
    고등어케밥, 어떤 맛인지 궁금. 드시게 되면 꼭 알려주세요!

    • sagang 2012/04/10 16:39  Addr Edit/Del

      그렇더라고요. 물고기들에게는 그곳이 우주겠지요. 단 한번의 햇빛도 보지 못한 채. 하긴, 우주를 작게 가질수록 행복할 수도 있어요. 바깥세상을 모르는 산골소년에겐 아주 작은 것도 행복하지요.

      고등어케밥은 저도 맛이 짐작 안가요. 그저 호기심이지요. 훗날 그 맛 알려드릴게요.

  6. 방문자 2012/04/11 00:40  Addr Edit/Del Reply

    좋은 여행기 잘 보고 갑니다~
    넘 늦게 알아서 아쉽~

    • sagang 2012/04/11 09:45  Addr Edit/Del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흔적 남겨주셔서 더욱 고맙고요^^

  7. mowol 2012/04/11 20:55  Addr Edit/Del Reply

    군옥수수 군밤 파는 장수가 거기도 있군요...근데 옥수수가 장난 아니게 크군요. 아마 찰옥수수가 아닌 듯싶네요. 메두사가 땅바닥에다 원산폭격하고 있는 건 일부러 그렇게 배치를 했겠지요? 갈라타 다리에서 낚시질하는 태공들을 보니 춘천 공지천 다리에서도 사람들이 낚시질하는 모습이 떠오르네요..하지만 물고기는 갈라타 다리 것이 훨씬 크군요..

    • sagang 2012/04/12 09:38  Addr Edit/Del

      저도 저 군옥수수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군밤도 그렇고. 어쩌면 우리나라의 거리에서 파는 것과 그리 똑같은지. 거기서도 어느 정도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맞아요. 옥수수는 좀 더 큰 것 같습니다. 하나 사 먹어볼까 하다가 참았는데, 은근히 후회 됩니다.

      아, 공지천. 오랜만에 들어봅니다. 춘천에도 많지는 않지만 추억이 곳곳에 깃들여 있는데... 어느날인가 불쑥 한번 찾아가봐야겠습니다. 선생님 건강하십시오.

  8. 유명남 2012/04/11 23:14  Addr Edit/Del Reply

    오늘은 투표하는 날이라 좀 어수선 하네요. 지금은 개표로 더 그런데요. 아니 터키에도 옥수수 군밤 노점상이 있군요. 그런데 홍천 찰 옥수수보다는 맛이 덜 할 것 같네요. 예레바탄 지하 궁전은 정말로 굉장하네요. 하늘을 밟고 머리로 지구를 이고 있는 거꾸로의 메두사가 좀 딱해 보이네요. 바다가 하늘 같고 하늘이 바다 같이 푸르군요. 와 ~ 내가 좋아하는 낚시, 터키로 여행 가면 낚시하고 냄비는 꼭 가져가야겠어요. 매운탕에다 한 잔 하게요. 이스탄불의 풍경이 아름답네요. 오늘도 유명하신 작가님 덕분에 좋은 구경, 소중한 공부 많이 했습니다. 봄이 오나 했는데 벌써 초여름 같네요. 시원한 맥주 한 잔 간절하네요. 언제 연락 드리리다. 늘 감사하고 있지요. 강건 행복하시길...

    • sagang 2012/04/12 09:41  Addr Edit/Del

      선거의 후유증에 약간 시달리고 있습니다. 심신이 피곤하다고나 할까요. 입에는 혓바늘이 다 솟고... 이스탄불에 가시거든 저 지하궁전에 꼭 가보세요. 아주 시원하고 볼만합니다. 그 시절에 저만한 걸 만들어놨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머리 박고 있는 메두사를 좀 위로해 주고 오세요.

      그러잖아도 낚시질 하는 걸 보면서 한국의 태공들 부러워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세요. 냄비 가져가서 즉석 매운탕 끓여 드시고 오면 되겠네요.

      봄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여름이 오기 전에 대동번개 한번 하시지요^^

  9. 마이산 2012/04/12 01:49  Addr Edit/Del Reply

    기억이란, 또렷한듯 하다가도 이내 희미해지곤 하지만, 초여름의 한 낮에 이스탄불 어느 길거리에서 마주친 수박장수, 한 조각 딱 베어물고 싶어 혼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거기엔 그렇듯, 수박을
    조각으로 팔던 모습이었지요. 아름다운 이스탄불을 상기하며 작가선생님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 sagang 2012/04/12 09:43  Addr Edit/Del

      그렇게 날카롭게 어딘가를 뚫고 들어와 아주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이 있지요. 수박 한 조각이 그런 기억이 되었군요. 초여름이면 무척 더웠을 텐데 하나 사 드시지 그러셨어요.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10. 김이수 2012/04/12 16:52  Addr Edit/Del Reply

    다리위의 낚시꾼 풍경에서 우리나라 방파제가 보이고
    갈라타 탑의 줄서기 인파에서 남산타워를 떠올리고
    고등어 케밥집 사진에서 소래포구가 보이네요
    사람 사는 본질은 참 비슷비슷한가봅니다.
    비슷하면서 색다른 모습. 재밌네요. 감사합니다

    • sagang 2012/04/12 17:55  Addr Edit/Del

      아, 대단하세요. 그런 것들을 바로 떠올리다니.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방파제 낚시나 남산타워에서 바로보는 서울 시내, 그리고 소래포구의 그 떠들썩함. 맞아야 사람 사는 모습 어디나 비슷하지요. 더구나 터키 사람들은 우리하고 정서도 상당히 비슷해요. 바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고맙습니다.

  11. 전경미 2012/04/12 17:59  Addr Edit/Del Reply

    역시 발 빠르게 부지런히 다니셨네요. 예레바탄 지하궁전의 조명 받은 기둥들 참 아름답네요. 기둥이 제각각이라니 그게 더 신기하기도 합니다. 군밤과 군 옥수수 참 좋아하는데 이스탄불에서 보니 더 정겹게 느껴집니다. 거꾸로 선 메두사의 머리도 기억에 남고, 카페 거리에서 만난 우리의 동포(동포라는 표현도 정겹고. ^^)나 우리나라 글씨도 제가 다 반갑고요. 얼마나 크길래 제1정원, 제2정원, 제3정원이 있는 톱카프 궁전, 줄 서서 올라가 본 갈라타 탑에서의 이스탄불 전경, 갈라타 다리 위 낚시 모습도 잘 감상했습니다. 그 아이 정말 진정한 낚시꾼이 될 거란 생각이. ^^ 실크로드의 종착점이라는 그랜드바자르는 숙제처럼 남기고 오셨다고 생각해요. ^^
    이게 끝은 아니겠지요? 발 빠른 여행자의 땀 나고 무거웠을 발바닥에 새삼 감사하며 다음 후기도 기다립니다.

    • sagang 2012/04/12 17:59  Addr Edit/Del

      사진으로 봐서는 잘 구분이 안 가지만, 정말 기둥이 제각각 다른 게 많아요. 저들도 머나먼 곳에서 타향땅으로 왔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더라고요. 창조를 위한 파괴의 현장을 본 것이지요.

      톱카프 궁전은 사실 제가 좀 많이 지친 상태로 찾아가는 바람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돌아보지는 못했어요. 워낙 넓기도 했고요.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좀 더 자세히 전해 드릴께요. 저는 황제의 여인들, 단 한번도 황제를 만나지 못하고 죽어갔을 그녀들이 가슴 아팠습니다.

      이제 마무리만 남았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하시느라 고생했습니다. 다음 주에도 꼭 들러주시기 바랍니다.

  12. 주영신 2012/04/13 17:27  Addr Edit/Del Reply

    메두사의 머리가 물구나무를 서 있는것도 신기하지만,,
    거꾸로 세워놓기 좋게 조각이 되어 있는듯 보이는게,,의도였는지 우연이었는지,,
    궁금증이 생기긴하네요.
    이스탄불이란 곳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배웠습니다.
    너무나도 볼거리가 많은 곳이었습니다..

    터키 여행기를 쭉 읽어오면서,,
    제 지식의 짧음을 느끼는 동시에
    사강님께선 직접 보고 듣고 느꼈던것을 저같은 사람들에게 글로 표현하시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을지
    그 열정에 진심으로 박수라도 보내드리고 싶어요..
    다음주엔 뽀~~너스가 기다리고 있을듯 싶네요,,맞죠?^^

    • sagang 2012/04/13 17:36  Addr Edit/Del

      그러게요. 저곳에 세우기 위해 돌을 깎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빼왔는데 저렇게 잘 어울리는(?)것인지 저도 궁금한데요. 본문에도 나오지만 저곳을 짓기 위해 여기저기서 기둥들을 차출했다니까, 혹시 메두사머리만 있는 사원 같은 곳에서 빼온 건 아닐까...

      사실, 읽어주는 분들이 생기면 더욱 신나서 쓰게 되지요. 공부도 더 하게되고요. 저도 공부하며 배우면서 함께 한 여행이었습니다. 함께 쓴 여행기지요. 그래서 더욱 고맙습니다. 다음 주 마지막 편으로 함께 하시지요^^

  13. 로사 2012/04/19 00:40  Addr Edit/Del Reply

    야금야금이라는 말이 무척 행복한 글자라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26회 여행기입니다. 터키로 여행하기 위해, 터키에 다녀온 후에 이러저러한 터키에 관한 책과 블로그 등을 보았지만 사강님의 글 만큼 정겨운 이스탄불은 만나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꿀단지를 숨겨놓고 야금야금 단맛을 보는 것 같습니다. ^^

    지하의 저 물궁전에서 굳이 붉은 등이 켜있지 않아도 음산함에서 비롯되는 신비감이 그대로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을 저는 했었습니다. 예레바탄의 저마다 다른 기둥들과 물 속을 유영하는 물고기들과 바라보기조차 두려웠던 메두사 조각상. 그것들을, 그때의 마음들을 한없이 그리워지게 하는 여행기입니다.

    참, 저기 '수공'을 보면서 한국인에 대한 그들의 예우인가 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이것들이 순 팔아먹을 생각만 하고 편의는 왜 안 봐주는 거야' 하는 생각에 닿아버려서 거기 직원한테 가서 말했습니다. '나 한국인인데 여기 물궁전에 대해서 한국말로 자세히 설명을 듣고 싶다. 그러니 한국어 버전으로 된 음성안내 서비스를 만들어달라' 고요. 왠 일로 그 사람이 쏘리, 쏘리 하더라구요. 그러니 저렇게 수공이라고 써놓은 건 기뻐할 일이 아닌 거였죠 저한테는. 한국 아줌마 이미지 확 버리고 온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

    이제 마지막 한 편을 다시 야금야금 읽으러 갑니다. 27회에는 어떤 감동이 놓여있을지 궁금합니다. 26회 여행기 감사히 읽었습니다. :)

    • sagang 2012/04/19 09:34  Addr Edit/Del

      터키, 특히 이스탄불을 여행하고 오신 분들 앞에서 이스탄불 이야기를 쓰는 건 참 낯 뜨거운 일이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보고 기록했다고는 하지만 워낙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소화를 시킬 틈이 없었거든요. 그래도 큰 질책을 안 받았으니 행복한 일입니다.

      전 역시 단세포 동물인 모양입니다. 저 '수공'이라는 글자를 보고 한글이라고 반가워할 줄만 알았지, 팔아먹을 생각만 하고 한국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생각까지는 못했습니다. 뭐 생각을 했어도 쫓아가서 음성안내파일을 만들어내라고 하지는 못했겠지만... 만약에 다음에 갔을 때 그런 게 생겼으면 순전히 로사님의 노력 덕분으로 알겠습니다. 한국 아줌마의 승리로 알겠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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