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부터 읽어야 재미있습니다.^^ 열심히 물어보고 공부했지만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흡연 삼매경에 빠진 그녀
배에서 내리자마자 카쉬 탐색에 나선다. 이곳은 작은 도시고 유적이 많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천천히 돌아봐도 걸어서 3~4시간이면 족하다. 일행이 목표로 잡은 곳은 구시가지. 구시가지라고 해서 대단한 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다. 자그마한 골목에 전통가옥과 기념품가게, 카페들이 늘어서 있다. 서울의 인사동쯤으로 생각하면 되는데 여름이 지나서인지 관광객의 발길이 거의 끊겼다. 시끌벅적 호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좌판이 나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소풍 간 날 학교 운동장처럼 조용하다. 이런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행복이다. 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여행이란 완급을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 달려가서 봐야 할 것도 있지만, 음미하듯 느껴야 할 것들이 있다. 관광과 여행이 다른 점이 그것이기도 하다. 외국에 나가 보면 한국인의 고질인 ‘우르르병‘을 심심찮게 목격한다. 깃발을 따라 우르르 버스에서 내려 우르르 기념사진 한 장 찍고 다시 우르르 버스를 타고 떠나는 과정의 반복. 그러고서 집으로 돌아간 뒤에 사진을 보면서 아! 내가 이런 곳을 다녀왔구나…. 어느 땐 그놈의 우르르병 때문에 볼 일도 제대로 못 보고 우르르 버스를 타고 떠나는 해프닝도 벌어진단다. 가이드 역시 고객이 원하는 빡빡한 일정을 채우려면 양떼를 모는 목동처럼 우르르 끌고 다음 행선지로 떠날 수밖에. 본전 생각이 나서 그럴까. 그러려면 왜 떠나는 것일까. 집에서 달력사진이나 보고 있는 게 훨씬 경제적일 텐데.
잡설이 길어졌다. 저마다 취향이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하거늘. 골목을 걸어 올라가다 2층집의 발코니에서 흡연 삼매경에 빠져 있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발견한다. 일행의 눈길이 힐끔힐끔 그곳으로 향한다. 그저 사내들이란…. 그러는 너는? 사실 그만큼 매혹적이다. 터키인들은 담배를 무척 즐긴다. 믿음 씨도 버스가 서면 달려 내려가 담배부터 빼문다. 터키의 흡연자는 대부분 체인 스모커다. 세계 7위의 담배소비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흡연에 대한 터부가 거의 없다. 한마디로 흡연천국이다. 실내는 물론 정류장이나 공원에서조차 쫓겨 다녀야하는 대한민국의 흡연자들이 부러워할만 하다. 여성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23년 터키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여권(女權) 신장이 이뤄지면서 여성들도 담배를 피우게 됐다. 한 때는 흡연 여부가 사회적 지위를 상징했다고 한다. 여성들의 흡연은 우리처럼 은밀하지 않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성들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많지만 터키에서는 별 차별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발코니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당당해 보인다. 골목의 총 길이는 150m 정도? 카펫을 비롯한 기념품 가게들이 주종을 차지하고 있다. 골목의 끝 무렵에서 우뚝 솟은 리키아 석관을 만난다. 거리 한복판에 이런 석관이 있다니. 지금까지 본 석관 중에서 가장 우람하고 완벽한 모습이다.
또 하나의 리키아 석관
그런데 석관보다 먼저 눈길이 가는 풍경이 있다. 석관과 그 옆 거대한 나무에 눕다시피 기댄 채 이야기를 나누는 청춘남녀. 남자 둘에 여자가 하나다. 이들은 아예 전용 카펫을 깔아놓고 한낮을 즐기고 있다. 이방인들은 먼 길을 찾아와서 봐야 하는 이 고대 유적이 동네 청년들에게는 그저 으슥함이 보장되는 휴식처에 불과한 모양이다. 아가씨는 무척 매력적이다. 이 동네는 미인들만 사나? 아랍풍의 푸른색 상하의에 포인트를 줘서 염색한 머리, 화려한 팔찌와 목걸이, 어깨에는 문신까지….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여인? 옛날, 미국 드라마 중에 ‘내 사랑 지니’인가? 하는 게 있었는데 거기 등장하는 여주인공이 연상되기도 한다. 촬영팀이 카메라를 들이대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무슨 얘기를 저렇게 재미있게 나누는 걸까. 근처 상가에서 일한다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젊은이들의 휴식처로 바뀐 이 석관은 BC 4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기단 위에 석관을 얹은 전형적인 리키아 양식인데 기단 부분에 리키아 글씨들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무덤의 주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왕족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석관 상단의 둥근 부분에는 네 마리의 사자 머리가 조각돼 있는데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아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다. 나도 석관 옆 나무그늘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힌다. 해가 건물 뒤로 숨는 기색이더니 골목에 땅거미가 슬금슬금 기어 다니기 시작한다.
내려오는 길에 노천카페에서 맥주를 한 잔 주문한다. 하루가 저물 무렵 배낭을 내려놓고 마시는 맥주의 맛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1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걷는 건 제법 힘든 일이기 때문에 잠깐씩 찍는 ‘쉼표’는 달콤하기 짝이 없다. 터키의 맥주는 ‘에페스’라는 상표 하나뿐인데 내 입맛엔 잘 맞는 편이다. 하긴 맛이 없더라도 목마른 여행자에겐 감로수처럼 달 수밖에. 맥주의 이름이 된 에페스는 도시 이름이다. 성경 ‘에배소서(書)’로 잘 알려진 에배소가 바로 그곳. 꼭 가보고 싶은 곳이지만 이번 여행 코스에는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 에페스는 기독교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곳이다. BC 10세기에 이오니아인에 의해 건설된 이 곳은 알렉산더대왕 이후 로마의 주요 도시 중 하나가 되면서 번창을 거듭했다. 철학과 문학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예술가와 상인들이 몰려들어 한때는 인구 25만 명의 큰 도시로 발전했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로마의 집정관 안토니우스도 이 곳에 함께 들러 보석과 화장품을 샀다고 전해진다. 에페스는 또 서기 53년에 바울이 설교를 한 곳이기도 하다.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연설을 하는 바람에 아르테미스 신을 섬기는 군중들에 의해 쫓겨나기도 했지만 점차 기독교의 성지로 변해간다. 에페스가 유명하게 된 것은 성모마리아가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독교 성지 에페스
에페스에서 1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산에는 ‘성모마리아의 집’이 있다. 독일인 수녀의 꿈속에 나타나는 경이로운 과정을 거쳐 1891년에 발견됐다. 그 전에는 예루살렘에서 세상을 떴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성모마리아는 예수의 부탁을 받은 요한을 따라 에배소로 갔으며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어쩌다가 시원한 에페스 맥주 한 잔이 성모마리아 이야기로 비약했지만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노천카페에서 음료수와 맥주를 서빙하는 이는 노인이다. 한 70세쯤 됐을까? 마른 몸피에 하얀 수염과 눈가의 짙은 주름. 그래도 노인에겐 궁상의 기운은 전혀 없다. 당당하고 빠른 동작으로 심해어처럼 손님들 사이를 유영한다. 그와 언뜻 눈길이 스쳤는데 오래 마주보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깨달음을 얻은 성자의 눈이 저러할까. 일하는 노인, 아름답다. 일을 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게 아니라 당당해서 아름답다. 맥주를 거의 마실 무렵에 다큐팀의 멤버 한 사람과 엄상욱 씨가 신발가게 앞에서 흥정을 하는 게 눈에 띈다. 궁금해서 다가가보니 가죽신을 이것저것 신어보고 있다. 내가 즐겨 신는 캐주얼 형태의 신들이다. 나도 반 장난삼아 한번 신어본다. 비단처럼 부드러운데다 내 발에 꼭 맞는다. 옆에서 드디어 임자를 만났다고, 지갑을 열라고 충동질이다.
나는 외국에 나가서도 거의 물건을 사지 않는 편이다. 그렇게 산 물건이 유용하게 쓰인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덜컥 신을 사고 말았다. 엄상욱 씨를 중간에 내세워 흥정했지만 많이 깎지는 못했다. ‘거금’ 35달러가 지출됐다. 터키는 공업 수준이 그리 높지 않지만 가죽공예는 세계적 수준이라고 한다. 그 말에 솔깃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만큼 마음이 느슨해졌거나. 다큐팀과 헤어진 뒤, 땅거미가 더욱더 짙어진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내려와 아타튀르크 동상 아래 자리를 잡고 앉는다. 전에도 말했지만 터키는 경치 좋은 곳이나 공원에는 예외 없이 아타튀르크 동상이 서있다. 이곳도 코앞에 짙푸른 바다가 펼쳐져있는 아름다운 공원이다. 바다 위의 배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힌다. 약간은 쓸쓸한 표정이 되어 앉아있는 내게 청년 하나가 슬며시 다가온다. 역시 시선은 사람보다 카메라로 먼저 간다. 터키의 청년들이여! 제발 카메라 좀 잊어주시게. 한참 카메라를 요모조모 살펴보더니 손짓, 몸짓으로 뭐라 묻는다. 잘 못 알아듣는 표정이자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영어로 얼마 주고 샀느냐고 쓴다. 이상한 친구일세. 글씨를 쓸 줄 알면서 왜 말로는 못 물어봐? 혹시 말을 못하나? 얼마라고 가르쳐줬다니 아무소리 없이 가버린다. 싱겁기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한참 뒤 돌아오는데 손에 SLR카메라가 들려있다. 내게 오더니 그걸 자랑 하느라 침이 마른다. 어라? 이 친구 카메라를 손에 쥐니까 말 잘하네?
그의 직업은 웨이터
그래, 그걸로 사진 열심 찍어. 남의 카메라 부러워할 거 없잖아. 자랑이 끝났는지 또 아무 말 없이 가더니 이번엔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을 데려온다. 자기가 일하는 음식점의 요리사란다. 자기는 웨이터고. “I’m waiter!!!” 눈이 별처럼 빛난다. 자신의 직업에 저 정도 자부심을 갖는 사람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이쯤 돌아갔으면 아름다움만 남았으련만, 사진을 한번 찍어보겠단다. 그것도 내 카메라로. 그러라고 넘겨줬더니, 쯧!! 사진 실력이 엉망이다. 구도고 뭐고 깡그리 무시하고 모든 기력을 셔터 누르는데 쓰고 말았다. 공부 좀 해라, 공부해서 남 주냐? 청년이 돌아가고 난 뒤 슬그머니 사진을 지운다. 그가 떠난 자리에 예쁜 아이 하나가 지나간다. 손을 흔들며 하이! 하고 인사했더니 새침한 얼굴로 그냥 지나간다. 에구, 민망해라. 아는 척 좀 해주지. 그런데 그 상황은 순간적인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웬일인지 저만치 가던 아이가 돌아서 오더니 내게 손을 흔들며 하이! 하고 인사를 한다. 조금 불쌍해 보였나? 반갑고 예뻐서 껴안아주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유아 희롱죄로 걸릴까봐)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헉!! 이걸 어쩐담. 이 녀석, 온갖 예쁜 동작을 다 보여주며 춤을 춘다. 이게 웬 떡? 카메라 셔터는 혹사를 당하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서서 박수를 친다. 저만치 갔던 아이의 부모도 돌아와 웃고. 이건 선물이다. 터키가 내게 준 선물이다.
이제 어둠은 제법 짙어져 나무그늘 아래 머물던 빛을 거의 지웠다. 다큐팀은 어디로 갔는지 기척도 없다. 나는 아타튀르크 동상 아래에 또 다른 동상처럼 앉아 바다위의 배들을 바라본다. 그들도 이제 바다로 떠나고 싶은 열망을 잠시 접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동상도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아타튀르크. 같은 세기를 살았던 ‘위대한 독재자’를 생각한다. 아타튀르크 이야기를 모두 하자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하다. 그래도 우리는 그에 대해 겉핥기로라도 알고 갈 필요가 있다. 우리의 독재자와 이 나라의 독재자가 어떻게 달랐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아타튀르크의 본래 이름은 무스타파 케말이다. 아타튀르크는 아버지라는 뜻의 ‘ata'와 터키인이라는 의미의 ’tüurk'의 합성어다. 즉 터키인의 아버지, 국부(國父)를 뜻한다. 그밖에도 그는 케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그냥 아타튀르크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다. 케말은 1881년 지금은 그리스 땅이 된 살로니카에서 태어났다. 케말이라는 이름은 중학교 때 수학선생님이 지어줬다고 한다. 무스타파는 ‘완벽하다’, 케말은 ‘성숙하다’라는 뜻이다. 케말은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뒤 군사 중등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스탄불의 사관학교에 들어갔다. 어릴 적 군인의 뜻을 품고 정통코스를 밟은 셈이다. 이 땅에도 그런 이들이 있었다.
아타튀르크를 아십니까
케말을 민족적 영웅으로 만든 건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벌어졌던 갈리폴리 전투다. 영국 연방군과 프랑스군 20만 명이 독일을 공격하기 위해 갈리폴리 반도로 상륙을 시도했다. 이에 맞서는 오스만군의 숫자는 불과 1만4000명. 시쳇말로 ‘새 발의 피’였다. 하지만 사령관 케말은 군대를 갈리폴리 반대쪽의 차나칼레에 주둔시키고 연합군을 공격했다. 유리한 지형을 이용한 접전 끝에 케말은 결국 연합국 함대가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막아냈다. 20만 대군을 물리쳤다는 소식이 전국에 전해지면서 케말은 일약 영웅이 되었다. 이후 ‘이빨 빠진 호랑이’ 오스만 제국이 서구 강대국으로부터 침략 위협을 받게 되자, 터키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전쟁을 벌인 끝에 1923년 드디어 터키 공화국을 건국한다. 그는 공화국이 창건된 1923년부터 세상을 뜬 1938년까지 15년간 초대 대통령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가 그동안 한 일은 일일이 손꼽기 어려울 정도다. 무엇보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를 근간으로 서구식 근대화 개혁을 이끌어나가면서,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민의 긍지를 한껏 높였다. 또 새로운 문자를 도입해서 보급함으로써 문맹률을 제로에 가깝게 낮췄다. 이슬람 최상의 지도자를 나타내는 칼리프제를 폐지한 것은 물론 교육제도 개혁, 서양력 도입, 여성 참정권 부여, 라틴 숫자 도입 등이 모두 그의 시대에 이뤄졌다.
그그런 개혁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는 거의 전권을 휘둘렀다. 보는 시각에 따라 히틀러나 스탈린과 같은 독재자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세월이 흘러도 독재자로 불리고 아타튀르크는 여전히 민족의 영웅으로 남아 있을까? 나 역시 그 정답을 아는 건 아니다. 다만 그의 행적이나 개혁 과정을 되짚어 보면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따뜻한 인간미를 간직했고 문화적 소양을 갖췄던 것 같다. 그리고 모든 행동의 바탕에 순수한 애국심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부패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타튀르크주의라고 불리는 케말리즘은 터키 사회에서 최고의 가치덕목이다. 세상을 뜬지 7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아타튀르크는 민중에게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해마다 그가 숨을 거둔 11월10일 오전 9시5분이면 전국에 사이렌이 울린다. 모든 차와 사람들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그를 기리는 묵념을 한다. 그의 초상화는 어느 곳에서든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빠짐없이 동상이 세워져 있고 대도시의 큰 거리 대부분은 아타튀르크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아타튀르크, 이 위대한 독재자는 죽은 뒤에도 여전히 살아있다. 여행을 하는 내내 나는 그런 국부를 모셨던 터키가 부러웠다. 국민소득이 낮아도 삶의 만족도가 높은 건, 아타튀르크라는 영웅을 가졌다는 자부심도 한 몫을 하는 건 아닐까.
영웅전을 쓸 게 아닌 바에야 남의 나라 국부 얘기가 더 길어지면 재미없을 터. 남은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자. 그나저나 나는 지금 지치고 배고프다. 다큐팀은 어디로 간 것일까? 세상은 완전히 어둠의 그물 속에 갇혀버렸다.
추천(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타튀르크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얘기가 많군요. 이름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위대한 독재자라는 사실은 처음입니다. 여행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터키는 갈수록 정이 듭니다. 행복한 글 읽기 감사드립니다.
아타튀르크는 한국에 잘 알려진 사람은 아닙니다. 그럴 기회가 별로 없었지요. 하지만 터키에서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영웅이고 국부입니다. 터키인들의 자부심이지요.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선 추천 & 리플 후 감상합니당~~~~
추천과 리플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먹고삽니다^^
겨우 짬이 난 월요일, 출근하고 정신없이 달리던 손은
다섯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겨우 겨우 찻잔에 차 한잔 담아 앉았습니다.
뜨거운 차를 홀짝이며 읽는 터키의 여행기,
오늘은 카쉬의 한적한 마을 덕에 마음만이라도 담빡 한가해집니다...
어디선가 읽은 이야긴데, 외국에서 신발을 사면 언젠가 그곳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던데요
작가님이 카쉬를 다시 가게 되시면 이 말이 떠오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행복한 여행기 감사합니다. 덕분에 힘겨운 월요일에 낙이 생겼습니다.
다음주엔 설이라서 못뵈려나요, ㅎㅎ 명절 잘 보내시고 기쁜일 가득하시기를!
그런 전설이 있군요. 그곳에서 신발을 사면 언젠가 다시 돌아간다... 그렇다면 맘에 드는 곳에서는 꼭 신발을 사와야겠네요. 뭐 경비가 문제겠지만.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렇게 바쁘셔서 어쩌나요. 그래도 제 글이 잠시의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주에는 쉴 생각입니다. 읽는 분들도 생각해야지요^^ 함께 하는 여행 고맙습니다.
카쉬의 젊은 남녀들을 보니 터키라는 나라가 무척 자유로워 보이는군요. 그동안 터키에 대한 이미지는 조금 딱딱했거든요. 저 여자 아이의 천진한 춤도 재미있고. 터키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갑니다. 행복한 여행기 고맙습니다.
제도적 자유도 그렇지만 터키 사람들은 영혼 자체가 무척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몽골초원을 달리던 기마민족을 조상으로 두고 있어서 무척 급하고 각박할 줄 알았는데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제 글이 인식을 바꾸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니 행복한 일입니다. 고맙습니다.
우르르병 이야기에 괜히 찔리네요. 사무실에서 해외여행을 매년 가지만 패키지로 가는 거라 정말 우르르 어디 어디 갔다가 먹고 관광하고 그러고 돌아오니 그렇게 기억에 남는 여행은 없었던 거 같아요. 그래도 그렇게 바람 쐬고 오는 거에 위로받으며 살고 있기는 해요. ^^
오늘은 정말 우리나라의 인사동이 떠오르는 카쉬의 아기자기 골목길 이야기네요. 작가님마저 반해버린 매혹적인 그녀들이 있는 카쉬의 거리! 노천카페에서의 달콤한 맥주 맛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쉼터 같은 여행길이었던 같아요. 석관에 기대어 노니는 젊은 터키인들의 자유스러운 모습, 서빙 할아버지의 깊은 눈매와 해맑은 꼬마 여자아이의 춤.. 그곳 분위기가 자연스럽고 흥미롭게 전해지는 거 같아요.
가죽공예가 세계적 수준이라는 터키에서 산 신은 잘 신고 다니시는지요? 언제 보여주세요!
아타튀르크는 전편에서도 짧게 설명해주셨었죠. 문자를 도입하고 보급하신 분! 아직도 잊히지 않고 존경받는 위대한 독재자이자 민족의 영웅이시군요.
오늘도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지치고 배고프셨다는데. 어디 맛난 만찬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기대해봅니다. ^^
맞아요. 그렇게 우르르 가서라도 기분을 전환하고 위로받고 사는 것도 한 방법이지요. 다만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짜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런 식으로 외국을 나가봤는데, 너무 일정이 빡빡하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카쉬의 골목에서 마시던 맥주맛은 영원히 못 잊을 것 같아요. 많이도 아니고 단 한 잔 마셨는데 얼마나 달고 시원하든지. 사실 소주파인데도 그런 땐 맥주가 최고지요. 특히 서빙하는 노인의 그 깊고 서늘한 눈매는 가슴 속에 각인돼 있습니다. 흐흐, 터키에서 산 신 오늘도 신고 왔습니다. 가볍고 부드러워서 참 좋아요. 한 10켤레 쯤 사올 걸 그랬어요.
함께 해준 여행 고맙습니다. 계속 함께 가겠습니다^^
저 노인의 눈빛이 정말 심해어의 그것처럼 깊군요.
끝을 알 수 없는 깊이에..무엇을 담고 있을지도 모르겠을 그런...
작가님의 사진 속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참 아름답습니다.
시선이 아름답기 때문일까요?
오늘도 즐거운 여행기 잘 감상하고 갑니다. 설 잘 쇠시길 바랍니다.
저 눈빛에 쏘이고 한참동안 운신을 못했습니다. 뱀 앞의 개구리라고나 할까요? 그 심연 속에 무엇이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찍는다는 건 참 두려운 일입니다. 그 '사람'을 찍어야하는데 '껍데기'만 찍기 일쑤거든요. 좋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베란다에서 흡연하는 여성을 보면서, 터키가 이슬람 국가가 맞나? 할정도로 여타 이슬람 국가들과는 달리 상당히 개방적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1923년 터키공화국 이후로 여권신장이 되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이해가 되었구요. 이슬람 문화의 특성을 고려해 볼때 여권신장에 앞장선 케말이 개혁가이며, 트인생각의 지도자임을 보여줍니다.
새로운 문자를 보급하고, 국민들의 문맹율을 0%에 가깝게 했을정도라 하니 터키인들이 케말을 아타튀르크라 칭할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사진속의 꼬마 아이가 마치 "아타튀르크 만세" 하며 춤을 추는것 같습니다.^^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어찌 이리 귀엽고 예쁠까요.
정말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이번회도 터키 역사 공부와 함께 터키인들의 평화로운 일상 모습에서 행복을 담아갑니다.
남은 한 주간 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
저도 이슬람국가라는 이미지와 현실의 매치가 어려울 정도로 큰 갭을 느꼈습니다. 무척 자유로웠고 국가나 제도로부터의 제약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종교라는 게 금기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터키가 그 전형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꼭 여성이 담배를 피우고 말고를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타튀르크에 대해서는 알면 알수록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사람을 낳고 키웠던 터키가 부럽기도 하고요.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행복한 명절 보내세요.
멋들어지게 끽연하는 아가씨, 서빙하는 노인, 인형처럼 귀엽고 예쁜 꼬마 숙녀가 참으로 인상적이네요. 그리고 남의 나라지만 아타튀르크 같은 영웅이 있었기에 지금의 터키가 존재 하겠지요.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그런 영웅이 없는지 안타깝네요. 영웅커녕 욕이라도 안 먹는 지도자라도 있었으면 하네요. 해맑은 미소와 고즈넉한 풍경이 잘 버무려진 터키, 낭만과 행복만 먹고 사는 것 같아 부럽기도 하네요. 오늘도 작가님 덕분에 카페에서 멋진 끽연, 맥주 잘 마셨습니다. 설 후 한 번 알현해야겠지요. 그럼 또 ~~
아타튀르크에 대해서는 저도 똑같은 생각입니다. 왜 우리에겐 그런 인물을 주지 않았을까. 정말 욕 먹지 않는 지도자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녁 풍경 속에 행복했지만 조금 쓸쓸했던 기억도 납니다. 따지고 보면 나그네라는 게 그렇게 쓸쓸한 맛도 있어야지요. 함께 해주신 여행 고맙습니다.
저 석관이라는 게 정말 사람의 시신이 들어가는 건가요? 사람 하나만 들어가기에는 너무 커보여서. 리키아 문자라는 건 무척 재미있습니다. 알파벳도 있는 것 같고 한자 비슷한 것도 있네요. 모든 문자의 원조는 아닐지. 잘 보고 갑니다.
저도 석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당연히 사람의 시신이 들어갔던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렇게 큰 이유는 일종의 신분 과시 아닐까요? 우리나라도 무덤의 크기로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려는 경향이 있었으니까요. 저도 홍은표님의 말을 듣고 리키아 문자를 자세히 보니 정말 다양하군요. 저는 한글 비슷한 것도 찾았습니다^^ 모든 글자의 원조라는 말 이해가 가는데요.
우리나라엔 저런 국부가 언제쯤 나타나 주실까요..
그러게요. 저도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능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정의로워서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 하지 않고 백성을 하늘처럼 위할 줄만 안다면...
한나라에서 독재자라는 이름을 가졌던 자가,,
저렇게 훌륭할 수도 있는거네요..
국부로서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갔던 마음이 먼저였을거라,,짐작만 해봅니다..
우르르 관광보다 소소한 여행을 좋아하지요,,저도..
그래서 여행갈땐 스케줄을 굳이 정해놓지 않고
대충 한두군데만 정해놓고,,
거기에서도 간 곳이 좋으면 그저 눌러앉아버리고 싶은
그런 여행을 좋아해요.
바위하나라도 마음에 들면 하루종일 앉아있고픈,,그런 여행이요..
너무 느리려나요?^^
설 명절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다음 여행,,기다리겠습니다^^
그래요. 독재자가 다 독재자가 아니더라고요. 근본에 뭐가 깔려있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제가 늘 꿈꾸는 여행이지요. 눌러앉는 거. 문제가 있다면 저는 늘 기록에 대한 열망에 시달린다는 것. 기록을 하려면 자꾸 움직여야 하고... 근본적인 모순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여행 할겁니다.
행복한 명절 보내세요.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답사기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통사람들의 진솔한 모습과 역사의 향기를 느끼게 해 주는 제대로의 답사기 인상깊게 읽고갑니다.
흔히 겉만 보는 여행을 하게되는데 말이지요~~
우리하고도 친숙한 (언어적) 공감대를 많이 가진 터키 더많은 좋은 글 기대합니다.
(국부)케말 파샤로 학교때- 세계사에서-배웠는데~단편적이어서 역사적 배경은 기억이 안납니다.소중한 사실을 함께 엮어 주시니 생생하게 전해옵니다.
(우연히 처음 들어와 읽었는데 계속 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2012.1.22
좋은 댓글을 남겨주셨는데, 답이 늦어 죄송합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고 뭔가 공유하는 분들을 만난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제 남은 일정 꼭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스탄불에서 끝나는 여행인데 아직 전해드릴 게 많거든요^^ 꼭 흔적 남겨주시고요. 고맙습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만사형통 건강하셔요^^
터키, 이 말조차에서도 가슴 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무한한 동경의 마음이 입니다.
터키 용사들의 무용담은 6.25전쟁을 통해서도 그 용맹함이 널리 알려진 바입니다.
사람들이 용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상술도 뛰어나고 호기심도 친절함도 몸에
배어 있어 여행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나 봅니다.
당당하게 담배 피우는 여성도 한 미모 하시고 남자들도 이목구비가 또렷하여
강렬한 인상을 느끼게 됩니다. 심해어 처럼 유영하시는 노인장의 달관한 눈매와
인상에서도 터키의 오랜 역사와 자긍심이 자연스레 드러나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끽연의 천국같아 무척 부럽네요.
저 또한 담배향을 무척 좋아해서 이른나이에 담배를 배웠다가
집사람 투병할 때 불가피하게 담배를 끊고나니 달리 기호품이 없는 실정이 되어
인생자체가 팍팍합니다.
금연한지가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지금도 담배향이 좋고 담배도 피고 싶습니다.
아무튼 터키 , 우르르 관광이 아닌 여행자로서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을 일게 하는 사강님의
맛깔스런 연재글입니다.
늘 고맙게 잘 읽고 있습니다.
새해 더욱 건필하시길 기원합니다._()_
반갑습니다.
이렇게 흔적 남겨주시니 더욱 고맙습니다.
새해에도 소망하는 모든 일 이루시기 바랍니다.
맞아요.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은 터키군인들이 얼마나 용감하게 싸웠는지 들어서 알고 있지요. 낯설고 낯선 땅에 와서 목숨을 걸고 싸운 그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이데올로기니 좌니 우니 모든 걸 떠나서... 여행하는 내내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담배라면 저도 할 말이 있지요. 저는 금연 7년쯤 됐는데, 끊기 전에는 누구 못지않은 줄담배였습니다. 지금도 가끔은 그 향수에 시달리지요. 담배 그 자체보다는 담배를 피우며 한숨 돌리거나, 조금은 관조하는 시간을 얻었던 그 기억 때문에. 훗날 도시를 떠나서 어딘가에 박혀 살 땐 다시 담배를 피워볼 생각입니다. 그게 사망의 길이라도, 얻는 위안이 있으니 크게 후회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알게 모르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서서 그만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한번의 글에 감사드리며
첫번째는 케말과 같은 영웅이 없는 것이 아니라 흠집내기에 바쁜 우리가 영웅을
파괴하지 않앗나 하는 반성이 먼저라는 생각이 듭니다.
청소년과 국민들에게는 반드시 역사적인 멘토가 있어야 하는데
없는사람을 만들지 못할지 언정 있는 사람을 흠집내고 과거사 뒤지고 하여
영웅을 흠집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터키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틀림없이 동상을 뒤집지 않았을까하는 노파심이....
약점이 있으면 약점이 있는대로 멘토가 될만한 인물이 부각되길 기대해 봅니다.
담배 ㅎㅎㅎ
조그만 상점에 들어갔다가 세분의 노인네가 피우는 담배에 너구리 소굴인줄 알았네요.
그래도 담배를 권하며 환영하는 인심에 반했습니다.
아~! 그리고 이국적인 눈매, 고혹적인 매력~!
나만의 흑심이 아니엇다는 동질감~!!!! 감사~!!!
그렇기도 하겠네요. 영웅이 태어나지 않은 게 아니라 우리가 파괴했다는 시각, 어느 정도는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이 그렇지요. 영웅은 상당부분 만들어지는 것일 테니까. 그래서 더욱 부러웠습니다. 영웅을 갖고 어려울 때마다 그를 떠올리는 그 나라가.
아, 그곳에 가셔서 담배천국을 보고 오셨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너구리 소굴을 떠올리는 풍경도 많지요. 그리고 고혹적인 매력, 저도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그립습니다^^